계엄 여파, 석유화학업계 지원책 지연 우려
공급 과잉·환경 규제, 석유화학업계 부담 커져
이덕환 교수 “규제 완화·기술 개발 투자 절실”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석유화학 공장이 집중된 여수 산업단지 전경 [사진출처=뉴시스]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석유화학 공장이 집중된 여수 산업단지 전경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석유화학 업계가 글로벌 공급 과잉, 수요 감소, 원자재 가격 변동성, 환경 규제 강화 등 복합적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최근 비상 계엄령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장기화 됨에 따라 정부 지원책의 실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며 업계의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산업은 다양한 글로벌 요인과 환경 규제 강화로 인해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최근 탄핵정국이 대책 실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 부처 간 협의와 정책 집행이 지연되면서 업계의 친환경 전환과 사업재편을 위한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기업들로 하여금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투자를 보류하거나 기존 계획을 축소하는 등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4년 3분기 총 매출은 2년 만에 감소세를 보였고,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LG화학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3.6% 감소한 2400억원을 기록했으며, 롯데케미칼은 2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대산과 여수 공장의 일부 생산라인 가동 중단과 사업재편이 불가피해지면서 업계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 과잉, 수요 둔화, 원자재 가격 상승, 환경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인 악재가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적 부진은 단기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구조적 위기를 불러왔다.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져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급증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환경 규제는 추가적인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2024년 상반기 동안 한국 석유화학 업계의 원자재 구매 비용은 전년 대비 15% 상승했으며, 국제 원유 가격의 상승과 함께 주요 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도 10%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 경쟁력 부족과 원가 부담을 우려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기존 생산 수준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추진하려 해도 공정거래법상의 제약으로 인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친환경 소재로의 전환이 시도되더라도 기존 석유계 소재보다 가격이 높아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경쟁사 간 정보 공유가 부당 공동행위로 간주돼 협력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업재편 과정에서 기업 간 필요한 정보를 원활히 공유할 수 있도록 법적 제약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친환경 소재는 기존 석유계 소재보다 가격이 높아 국내에는 시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를 사용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해 가격 부담을 낮추고, 정부가 공공 조달 시스템에서 친환경 제품 비중을 확대하거나 사용 의무화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이 지난달 19일 서울시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석유화학업계 사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이 지난달 19일 서울시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석유화학업계 사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전문가들은 현재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자율적 사업재편 지원에 그쳐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의 규제 완화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석유화학 산업은 국가 경제의 핵심 기간 산업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정부는 사업재편을 촉진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을 아끼지 말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을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평법·화관법 등 기업을 압박하는 규제를 대폭 개정하고, 화학산업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캠페인과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에 정부도 석유화학 지원책을 모색해왔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수립 중이며, 이를 통해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지난달 26일에는 나성화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공급망정책관이 LG화학 여수공장을 방문해 업계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LG화학, 롯데케미칼, GS칼텍스, 금호석유화학, 여천NCC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 임원들이 참석해 업계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정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업계의 자율적인 사업재편을 유도하기 위해 정책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업활력법을 석유화학 업종에 적용해 설비 축소나 인수합병(M&A)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활력법은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에서 기업들이 스스로 설비를 줄이거나 인수합병(M&A) 등의 사업재편을 진행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제도다. 법에 따라 지원받는 기업들은 사업재편 절차 간소화, 공정거래법 규제 유예, 고용안정 지원, 세제 및 자금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달 중 지원책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탄핵정국이 이어지면서 지원 실행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계획된 일정에 맞춰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기업 건의사항들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석화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업부 안덕근 장관은 지난 7월 열린 간담회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 석유화학업계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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