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주 지방 출장을 끝낸 후 서울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앞서가는 오토바이를 향해 욕설을 남발했다. 평소 기사분과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조용히 승차해서 가는 편이지만 그날은 욕설의 이유가 궁금해 질문을 건넸다.
“새 차를 구매하고 이틀 만에 후진하다가 주차된 오토바이랑 충돌해서 수리비로 몇 십만 원을 지출했어요”
그는 사고의 원인이 후진한 본인이 아닌 오토바이 운전자가 고의로 주차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대화가 이어져 주제가 정치로 바뀌었고, 그는 필자와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고수했다. 그에게서 일종의 분노 조절 장애가 느껴졌다.
이는 단순 한 사람의 감정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분노의 기운과 이를 적절히 다스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면 주변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화병(火病), 한국 문화 속 분노의 상징
한국에는 분노와 관련된 독특환 질환이 있는데, 바로 화병(火病)이다.
1996년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발간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게 편람(DSM-IV)’에 문화 관련 증후군으로 등재된 화병은 화병이 등재되기도 할 정도로 한국 특유의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질환이다. 영문 표기 역시 한글 발음 그대로인 [Hwa-Byung]이다.
화병은 스트레스를 외부로 분출하지 않고 내면에 쌓아둔 결과로 발생한다. 이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고 참는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화를 참아서 비롯된 이 질환이 화를 표출하는 행동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분노는 마음의 병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
첫 번째 단계,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받아들여라. 타인의 행동이나 언행으로 화가 날 때, 분노의 기원과 감정을 촉발한 포인트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다음 단계,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라. 명상은 대표적인 방법으로, 과잉된 감정을 진정시키고 마음의 균형을 찾게 해준다. 이와 함께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 역시 필요하다. 화두에 언급한 택시 기사의 경우 사고를 단순 불운으로 받아들였으면 억울함, 분노 대신 향후 안전 운전을 위해 더 주의하자는 결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어령 교수의 기도문을 읽으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의 글은 복잡한 삶 속에서 평온함을 찾아주고, 개인이 날개를 펼쳐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의 기도문 한 구절을 살펴보자.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해야 합니다. 싸움 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들은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이 기도문은 각자의 삶 속 어려움을 비유적 표현으로 담아내고 있다. 서로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도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분노를 넘어 사회적 갈등 완화를 위한 영감 역시 주고 있다.
평화로운 사회를 향하여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인 분노, 하지만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마음이 불안정한 개인은 곧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반드시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명상, 긍정적 사고, 이어령 교수와 같은 선각자의 글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어느새 타인의 감정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소통 방식으로 분노의 사회가 평화로운 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기러기처럼 나는 법
기러기는 다른 새들처럼 한 마리의 보스가 지배하고 그에 의존하는 사회가 아니다. 먹이와 비옥한 땅을 찾아 4만km를 날아가는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유지하며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다.
가장 선두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의 양력을 만들어줘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온몸으로 바람과 마주하며 용을 쓰는 리더 덕분에 뒤따르는 동료 기러기들은 혼자 날 때보다 약 70% 정도의 힘만 쓰면 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 소리를 내는데, 사실 실제 우는 소리가 아닌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 소리다. 서로를 의지하며 날아가는 그들은 한 마리 기러기가 총에 맞거나 체력 소진 등의 이유로 대열에서 이탈하면 동료 두 마리 기러기가 그의 곁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킨다.
또, 리더 기러기가 지치면 뒤따르던 기러기가 리더의 역할도 바꿔준다. 이것이야말로 협동심, 배려심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의 의미도 깨우칠 수 있다.
나아가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까지 영원히 지킨다. 수명이 30여 년인 그들은 짝을 잃으면 결코 새로운 짝을 찾지 않는다. 위아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고, 서로 소리로 화답하며 예를 지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