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형
▸팟캐스트 <이이제이> 진행자
▸저서 <와주테이의 박쥐들> <김대중vs김영삼> <왕의 서재>등 다수

화제 리에 방송되었던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지난 주말 마지막 방송을 내보내고 종영 되었다. 「응답하라 1994」는 “추억앓이”, “응사앓이” 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숱한 화제를 뿌렸는데, 90년대를 몸으로 체험한 3~40대에게는 “추억”이라는 선물을 10대와 20대 들에게는 호기심과 신비감을 건네주며 전 연령대에서 사랑을 받은 드라마였다. 지상파도 아닌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은 처음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방송이었던 21회는 11.9%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 이었다. -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응답하라 1994」가 이렇게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여주인공 남편 찾기에 대한 재미,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가 주는 다양함, 배우들의 명연기와 뛰어난 연출력, 시청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가들의 빼어난 글 솜씨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90년대로의 추억여행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경험한 유일한 세대인 당시의 신인류, 「X-세대」들이 40대가 된 지금, 그들에게 첫사랑의 추억과 향수를 전해주며 한국대중가요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하는 90년대의 숱한 명곡들이 BGM으로 깔리어 전해주는 감동은 「응답하라 1994」가 삶에 찌든 그들을 오랜만에 TV앞에 앉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94월드컵,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과거 이야기와 삐삐, 시티폰,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의 옷 등 소품의 사실적 묘사 등은 극의 재미를 한층 배가시키게 만들었다. 그러나 신선한 느낌을 주었던 초반과는 달리 후반부로 가면서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에 과도하게 치중한 점, 한국 드라마의 단골 주제인 삼각관계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몰입 감을 방해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극의 중심을 연기했던 쓰레기, 성나정, 칠봉이는 「응답하라 1994」최고의 캐릭터들이였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주인공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러브라인을 지나치게 엮으면서 셋의 사랑스런 캐릭터가 모조리 붕괴 되었다. 의리 있고 따뜻하고 유머러스 했던 멋진 남자 쓰레기는 연인에게 너무 집착하는 사람으로 갑자기 그려져 극 전반부의 훈훈한 캐릭터가 사라져 버렸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던 칠봉이도 성나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불편케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는 성나정 캐릭터의 붕괴이다. 이사람, 저사람, 모든 사람의 문제를 자기일 인양 봉사하고 희생하고 밝은 캐릭터였던 성나정이 삼각관계가 지나치게 부각되고 남편 찾기에 올인 하는 제작진의 의도에 어장관리나 하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을 버리는 캐릭터로 몰락하고 만 것이다. 객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남편 찾기”가 “추억앓이”를 넘겨버렸던 것이다. 제작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참사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비판하는 주장이 드라마가 후반부로 가면서 계속해서 지적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응답하라 1994」가 사전 제작된 작품이 아니기에 시청자들의 요구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보다 더 좋은 평판으로 종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제작진들의 “열린 귀”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이 드라마는 케이블 채널이라고 하더라도 작품성과 재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예계 대형 스타들이 케이블 채널에 출연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며 꺼려했다고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성공으로 이제 그런 일은 없을 듯하다.

「응답하라 1994」를 만든 제작진은 「응답하라 1997」의 제작진 이다. 전작을 능가하는 후속작은 있을 수 없다는 징크스를 깨버린 이 제작진들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올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캠퍼스에는 사랑과 우정과 추억만 존재 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대의 대학생들, 인권과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었던 그 시대의 대학생의 모습도 같이 그려 보면 어떨까 싶다. 시청자의 욕심일지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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