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토허제·그린벨트·용적이양제 부양책 발표
5일 시장 교란 행위 대응 위한 긴급회의 개최
때 늦은 긴급 대응...‘소 잃고 외양간’ 비판
【투데이신문 심희수 기자】 정부가 서울 내 국지적인 주택 가격 상승이 나타나자 지난 5일부터 올 6월까지 주택 이상거래에 대한 집중 기획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토지거래허가제(이하 토허제) 해제·그린벨트 해제 확대·용적이양제 등 정부와 자치단체의 건설경기 부양책이 일부 지역 주택 가격 상승시키고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9일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에 따르면 정부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김범석 제1차관과 국토교통부 진현환 제1차관 공동 주재로 기재부·국토부·금융위원회·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가 참석한 ‘제12차 부동산 시장 및 공급상황 점검 TF’를 지난 5일 개최했다.
국토부 측은 최근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 주택 가격 상승 우려가 제기되자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TF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서울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 원인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가 지난달 발표한 토허제 해제·용적이양제가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지난달 건설경기 부양책 잇따라 내놔
서울시는 지난달 13일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에 위치한 아파트 305곳 중 291곳에 대한 토허제 지정을 해제했다. 서울시는 해제를 통해 시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또 서울시는 지난달 23일 올해 상반기 ‘서울형 용적이양제’의 조례를 입법예고하고 이르면 하반기에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중복규제로 용적률을 활용하지 못한 지역의 재산상 손실을 덜고 서울 시내 균형발전에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에는 국토부가 15곳의 비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절차에 본격 착수하고 국가·지역전략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약 124조5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약 38만명의 고용유발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최황수 겸임교수는 “이번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해 일자리 창출 등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측면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번에 해제된 곳은 전부 비수도권으로 인구소멸 이슈와 직면하고 있는 지역들”이라고 말했다.
토허제 해제 후 특정지역 뚜렷한 가격급등
그러나 이들 부양책이 발표된 이후 강남3구와 용산 등 일부 지역의 뚜렷한 가격 상승이 발생하고 투기 거래 정황이 포착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의 일부 강남권에 대한 토허제 완화 이후 강남·서초·송파·용산과 강남권과 인접한 경기 과천 등에서 뚜렷한 가격 상승세를 보였다.
6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아파트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위 지역들은 지난해 주택매매가격 누적하락분을 올해 들어 두 달 만에 모두 회복하고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초구는 지난해 누적 하락률 –0.40%를 기록하고 지난 3일 기준 두 달 동안 1.19%의 상승률을 보였다. 강남구는 지난해 누적 하락률 –0.21%를 기록, 1.30% 상승했다. 송파구는 누적 하락률 –0.38%를 기록하고 현재까지 2.08% 상승했다. 과천 역시 지난해 –0.60% 하락 올해 들어 1.18% 상승했다.
특히 강남3구는 수도권 전체 평균 0.02% 상승할 때 서초 0.49%, 강남 0.53%, 송파 0.68% 상승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달엔 각각 0.06%, 0.03%, 0.13%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엔 토허제 해제가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토허제가 해제된 구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토허제 완화 등의 부양책 발표 이후 특정 평형수는 보름 만에 5억이 뛰었다”며 “가격 급등에 집주인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매물은 거둬지고 거래는 줄어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용적이양제·그린벨트 투기 대책 시기적절성·실효성 우려
아울러 용적이양제를 발표하며 용적이양제 선정 지역으로 거론되는 일부 지역과 용적을 이양받을 지역에 대한 투기 수요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정책에 대한 세부 사항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서진형 교수는 “거래가 허용된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해 투기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예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토부가 발표한 그린벨트 해제 확대 역시 정부의 적절한 투기 방지 대책이 없으면 ‘투기 벨트’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정부는 15곳의 그린벨트 해제 지역전략사업지 선정과 함께 해당 지역에 대한 토허제 지정과 이상거래 모니터링을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과거 그린벨트 해제 사례에서도 해제 지역에 대한 투기는 해제 시점 이전부터 진행되는 등 정부의 투기 수요 방지 대책 시기가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 8·8대책을 통해 그린벨트 해제로 주택공급을 확대한다고 발표했을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세곡동과 내곡동 토지의 소유주 현황을 분석한 결과, 42.1%가 민간 소유였고, 당시 공시지가는 1조2307억원에 달했다.
또 8·8 대책 발표 이전 5년간 그린벨트 지역 거래 내역에서 지분 쪼개기 흔적도 나타났다. 세곡동과 내곡동 그린벨트 지역의 거래 내역 169건 중 80건은 지분 매매였고, 특히 내곡동의 한 그린벨트 임야는 2023년 5월 30일 하루 20번에 걸쳐 지분이 직거래 됐다.
지분 쪼개기는 기획 부동산 업체가 매입한 토지를 웃돈을 얹어 쪼개 파는 것을 말한다. 투기 수요 자체도 문제지만, 토지 보유자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면 보상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져 공급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 부동산 중개업계관계자는 “정책이 발표되기 전부터 매수자들이 어떻게 알고 오는지 매물문의를 해온다”며 “항상 시장보단 정책이 늦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긴급 대책 내놨지만...업계 “적절한 시기인가”
한편 정부는 주택시장 상황과 가계부채 추이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심리 불안으로 인한 투기·교란 수요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현장점검반을 가동해 강남4구와 마포·용산·성동구 등 주요 지역에 대한 거래 동향 모니터링 및 합동 현장점검을 실시한다.
아울러 ▲부동산앱이나 오픈채팅방 등을 활용해 특정 가격 이하로 매물을 내놓지 않도록 유도하는 등 집값 담합 행위 ▲집값 띄우기 목적의 허위신고 ▲자금조달계획서 허위 제출 등 불법행위 정황이 확인될 경우, 국세청·금융위·지자체 통보 및 경찰청 수사 의뢰 등을 통해 불공정 행위를 사전 차단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는 정책 발표 시기와 투기 수요 예방 논의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장 혼란을 가중하는 정책을 폈을뿐더러 부작용이 명확한 정책을 펴기 전에 미리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업계관계자는 “이른바 ‘오쏘공(오세훈이 쏘아 올린 공)’ 정책들이 강남3구·마용성 등 특정 지역의 주택가를 너무 높여놨다”며 “부작용이 뻔한 정책을 먼저 발표하고 투기를 예방한다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함영진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 등 혼란 요소가 명확한 지금 같은 시기엔 특히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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