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t;콘클라베&gt; 스틸컷 ⓒ㈜엔케이컨텐츠<br>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투데이신문 최두진 객원기자】 교황이 서거하면 바티칸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비밀스러운 절차에 돌입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오직 ‘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서약과 함께 투표를 거듭한다. 그러나 영화 <콘클라베>는 이 과정이 단순한 신앙적 의식이 아니라, 인간의 권력 다툼과 정치적 욕망이 교차하는 무대임을 보여준다.

바티칸의 거대한 대리석 건물 속에서 붉은색 수단을 입은 추기경들이 앉아 있는 모습은 경건함을 넘어 위압적이다. 웅장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아래에서 벌어지는 투표 과정은 마치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펼쳐지는 정치 게임처럼 보인다. 추기경들은 교황이 될 적임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 인물을 세우기 위해 협상과 모략을 주고받는다. 과연 이 과정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인간들의 치밀한 권력 계산의 결과물인가.

콘클라베, 신앙과 권력의 경계에서

영화는 교황의 서거와 함께 시작된다. 바티칸 게스트하우스인 성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에는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이고, 철저히 차단된 환경 속에서 콘클라베가 진행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성한 절차처럼 보이지만, 투표가 진행될수록 추기경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벨리니 추기경은 가난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트렘블레이 추기경은 기존 교황청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또 아데예미 추기경은 젊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아프리카 출신으로,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각 추기경은 ‘신의 뜻’을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보는 정치적이다. 서로 연합하고, 경쟁자를 끌어내리며, 신념과 야망이 뒤섞인 교황 선출 게임이 벌어진다.

영화 &lt;콘클라베&gt; 스틸컷 ⓒ㈜엔케이컨텐츠<br>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인간적인 결정인가, 신의 섭리인가

콘클라베의 과정이 거듭될수록, 주인공인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원칙주의자로서 공정한 선출을 진행해야 하지만, 정치적 암투가 점점 더 깊어지는 현실 앞에서 흔들린다.

결국 예상치 못한 인물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신의 섭리는 인간의 정치적 욕망을 뛰어넘는가. 우리가 목격하는 신성한 결정들은 과연 순수한가.

로렌스 추기경은 마지막 순간,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신임 교황의 과거를 마주한 그의 표정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신앙과 현실, 도덕과 정치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영화 &lt;콘클라베&gt; 스틸컷 ⓒ㈜엔케이컨텐츠<br>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수녀들의 침묵과 교회의 현대적 도전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여성 수녀들의 존재다. 추기경들이 ‘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동안, 수녀들은 식탁을 정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뒤편에서 묵묵히 움직인다.

특히, 수녀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추기경들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으며, 이 비밀이 교황 선출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회 내부에서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그들의 존재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영화는 조용히 시사한다.

이는 곧 교황청이 직면한 현대적 도전과 맞닿아 있다. 수녀의 교회 내 역할 확대, 성 정체성과 동성애 수용 문제, 그리고 가톨릭의 보수성과 개혁 사이의 갈등이다. 영화는 수녀들의 조용한 존재를 통해, 교회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조명한다.

영화 &lt;콘클라베&gt; 스틸컷 ⓒ㈜엔케이컨텐츠<br>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권력과 나약함을 담아내는 시각적 연출

<콘클라베>는 단순한 종교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가 강렬한 이유는, 압도적인 시각적 연출을 통해 신앙과 권력의 대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바티칸의 웅장한 건축물과, 그 안에서 인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카메라워크, 거대한 시스티나 성당 벽화 아래에서 신 앞에 앉아 있는 인간의 나약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붉은색 추기경복과 바티칸의 대리석 톤이 대비되며 종교적 경외감과 권력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로렌스 추기경이 연못에서 빠져나온 거북이를 다시 연못으로 돌려놓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한 행동인지 아니면 콘클라베 과정에서 흔들렸던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는 의미인지 곱씹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콘클라베>는 종교 영화이지만, 정치적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진정으로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현실적 이익과 신념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인간의 결정이 정말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논란과 정치적 갈등이 빈번한 상황 속에서, 이 영화는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우리 시대의 신념과 권력,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할 지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 &lt;콘클라베&gt; 포스터&nbsp; ⓒ㈜엔케이컨텐츠<br>
영화 <콘클라베> 포스터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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