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과 탄식에도, 고요했던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
100여명 모인 광화문 집회, 스크린 중계로 진행돼
결과 ‘인용’ 예상하면서도... “한국 정치 바뀌어야”
언론 편향도 지적…"공평하고 진실될 필요 있어"

4일 오전 7시경 서울 광화문역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 참가자가 1인 시위 중인 모습이다. ⓒ투데이신문<br>
4일 오전 7시경 서울 광화문역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 참가자가 1인 시위 중인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회훈 인턴기자】 4일 오전 6시 30분, 많은 인파가 몰린 헌법재판소 앞과는 달리 광화문역 앞 동화면세점 인근은 한산했다. 동이 터오는데도 전일 탄핵 반대 철야 집회가 이어졌던 공간에 집회 참가자는 보이지 않았다. 특별 범죄예방 강화구역으로 설정돼 1500여명의 경찰이 배치된 것과 달리, 현장은 조용하기만 했다.

하염없이 주변을 배회하니 무엇을 그리 찾냐며 노령의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대화를 나눠보니 여성은 철야 집회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다. 오늘 처음 집회에 참석했다는 노인은 쓸쓸한 뒷모습으로 떠나갔다. 

빈 의자와 비둘기만 가득한 집회 장소를 벗어나 다른 집회 참가자를 찾아 나섰지만, 취재진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발걸음을 바삐 하는 행인들만 볼 수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Stop the steal’ 문양이 새겨진 모자와 스티커를 붙이고 주변에서 뜀걸음을 하고 있었다. 해당 구호는 202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사용한 문구다. 탄핵에 반대하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위시해 대대적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해당 문구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 

기자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남성은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돌리니 오히려 그가 다가와 몇 마디 말을 걸었다. 

그는 “나라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있나. 지금 헌법재판소 앞에 가면 종북 세력들이 가득하다. 취재하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던가, 아니면 한남동 관저로 가보라”고 조언했다. 그의 이야기처럼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대부분이 한남동 관저에 모여 집회를 이루고 있었다. 헌법재판소 앞 안국에는 탄핵 찬성 집회가, 한남동 관저 앞 한강진에는 탄핵 반대 집회가 자리잡아 마치 나라가 두쪽으로 나뉜 듯 했다.   

4일 서울 광화문역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의자를 제외한 집기들이 회수되고 있는 모습이다. ⓒ투데이신문<br>
4일 서울 광화문역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의자를 제외한 집기들이 회수되고 있는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오전 8시가 되도록 광화문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현장 관계자들은 철야 농성에 사용됐던 방한용품과 간이정수기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러 명이 모여 나누는 대화에 명함을 들고 끼어드니 주로 과거 대통령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거나,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를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떠나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당초 광화문에 3만여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현장에는 백 여명 남짓의 참가자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화를 나눈 이들 중, 한 부부만이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처음부터 대화에 함께 했던 이용녀(75)씨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미국 서부 여행을 하던 중 탄핵소추안 통과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국민이 뽑아서 대통령이 됐으면 뭘 하나, 아무것도 못 하게 매일 탄핵하고 방해만 하는데 대통령이 술을 먹다 폭발했다느니 하는 말도 이해가 간다. 오죽하면 계엄을 했겠나”라고 한탄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향해서는 희망적인 변화가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이씨는 “요즘 학생들이 점점 귀를 열고 듣는 모습이 보여 다행이다. 노인네들이라고 무시하던 분위기에서, 이제는 바른 소리는 바른 소리라고 듣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35년째 공연, 축제와 관련된 물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태극기와 탄핵 반대 집회 용품 등도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한 대학생이 전주에서 혼자 올라와 태극기를 사려고 하기에 돈을 받지 않고 태극기를 건네준 일화도 전했다.

4일 오전 11시경 광화문 탄핵반대 집회 인근에서 탄핵 심판 선고 중 소요사태를 대비하는 경찰의 모습이다. ⓒ투데이신문<br>
4일 오전 11시경 광화문 탄핵반대 집회 인근에서 탄핵 심판 선고 중 소요사태를 대비하는 경찰의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MZ 집회 문화’로 일컬어지는 응원봉 문화에 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이씨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어디 나가서 태극기 하나만 마주쳐도 가슴이 벅차다. 이 나라에서 태극기를 안 들으려면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요즘은 아이돌 응원봉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진 않다”고 말했다. 

이씨의 남편에게 오늘 탄핵 심판 선고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물으니 덤덤하게 “무조건 인용된다고 봐야지”라며 마른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만약 탄핵이 기각, 각하된다면 나라가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지금 여당도, 탄핵을 남발하는 야당도 모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 전 의원의 법률 문제들도 하루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지금의 언론들은 편향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 이런 것들을 벗어나서 공평하게 진실만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11시를 지났다. 선고가 진행되던 중, 이씨 부부는 안전이 걱정된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니 현장에는 방패를 들고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경찰관과 소방관들로 가득 찼다. 집회의 중심에는 군복을 차려입은 참가자, 승려복을 입은 참가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4일 오전 11시 23분경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이 중계되는 모습이다. ⓒ투데이신문<br>
4일 오전 11시 23분경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이 중계되는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판결의 순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돼 파면이 선고됐다.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은 탄식했다. 목 놓아 우는 이, 욕설을 퍼붓는 이, 주변의 경찰에 삿대질을 하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우려했던 대로 과격한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잠시 뒤, 스크린에선 전광훈 목사가 나타나 다시 분위기를 바꿨다. 전 목사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고 있었다”며 결과에 불복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이어갔다. 집회 참가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울한 분위기를 벗어나 환호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그 짧은 연설로도 현장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뒤바뀌었다. 

이날 광화문은 눈물과 고성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탄핵 반대 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강성 지지자가 아닌 정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자에게 자녀를 자랑하고, 나라가 무너지지 않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한다고 호소하는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기도 했다. 단순히 ‘극우’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려 악마화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터놓고 대화할 사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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