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앞에서 드러난 보험 시스템 사각지대
‘포용보험’ 논의…저소득·고령층 보호 장치로 주목
기후 리스크 대비 현실 과제…정부·민간 협력해야

산불로 훼손된 경북 의성군 [사진=뉴시스]
산불로 훼손된 경북 의성군 [사진=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최근 발생한 대규모 산불 등으로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기후 취약계층에 대한 보험보장 지원은 미흡해 관련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저소득층과 고령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포용보험(Inclusive Insurance)’ 제도 도입 필요성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보험을 통한 사회안전망 보강이 본격적인 화두로 떠오른 셈이다.

기후리스크는 특정 계층이나 지역을 가리지 않지만 그 피해의 강도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는 회복의 시간과 비용, 정보 접근성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실정이다.

한국리스크관리학회는 지난달 28일 ‘기후리스크와 보험보장 갭’ 국제세미나를 열고, 이러한 불균형을 메울 수 있는 방안으로 ‘포용보험’을 제안했다. 

남상욱 학회장은 이날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기후위기에 훨씬 더 민감하다”며 “단 한 번의 이상기후 발생으로도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삶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만큼 보험이 복구의 출발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용보험이란 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이 자연재해나 기후재난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설계하는 공공적 성격의 보험 제도다. 남 회장은 “스위스나 북미 등 선진국은 이미 보험을 통해 기후 피해의 상당 부분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국내 보험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시스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미 지역은 전체 기후피해의 43%를 보험으로 보상하고 있으며, 독일 등 유럽 국가는 60% 이상,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최대 80%까지 보험 보장으로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는 데이터도 제시됐다.

이러한 시스템의 공통점은 ‘재난의 우선 회복 대상’을 명확히 선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재원이 한정된 만큼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물리적 손실이 명확히 보이는 곳을 우선 지원하면 보험의 역할이 더욱 분명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리스크관리학회가 주최한 기후리스크와 보험보장갭 세미나 ⓒ투데이신문
한국리스크관리학회가 주최한 기후리스크와 보험보장갭 세미나 ⓒ투데이신문

기후리스크는 ‘예측’의 영역…현실적 한계도

기후 변화 여파로 인해 산불 리스크도 상승했다. 실제 최근 경북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인해 3만여 명이 넘게 대피하는 등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고 피해 규모 또한 조 단위가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포용보험의 확대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국내 보험사들 역시 기후리스크 대응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응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가장 큰 장벽은 ‘예측의 한계’다. 보험은 통계 기반의 예측산업이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손해율을 계산하고, 이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해 재무적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기후재난은 과거의 패턴으로 미래를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발생 주기와 강도, 지역이 불규칙하고, 복합재난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기존 수리모형이 작동하지 않는다.

리스크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으면, 적정 보험료 산정도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 보험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가입자 수요를 줄이며, 보험사 손해율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30년에 한 번 발생하던 폭우나 산불이 이제는 3~5년에 한 번 꼴로 발생하면서 통계 기반 모델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리스크를 반영한 특약 상품은 많지만, 실제 가입률은 낮은 편”이라며 “가격, 보장범위, 고객 인식 모두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이 위험을 외부에 전가하기 위해 의존하는 재보험 역시 기후위기 앞에서는 완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재보험 시장은 잇따른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 누적으로 인해 기후 관련 재보험 인수 여력을 축소하고 있다. 이에 국내 보험사들의 자체 부담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자본건전성 기준인 K-ICS(지급여력제도)에서도 기후리스크는 향후 중요 변수로 부각되고 있어 상품 개발 단계부터 위험회피 성향이 강화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에 기후위기처럼 반복적·확산적인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이 재정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남 학회장은 “보험사의 경영안정성 유지와 적정 보험료 수입 등을 감안한 최적의 보험상품 개발과 공급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민간의 협력과 선별적인 우선 보장 체계 구축 등이 함께 이뤄져야 포용보험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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