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노아 기자】‘국보’ 안중갑 화가의 화폭에는 시간이 흐른다. 먹을 머금은 붓끝이 종이를 스칠 때, 천 년의 숨결과 고요가 번진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국보(國寶)가 그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 숨 쉰다. 먹의 번짐과 선의 올곧음 그리고 색채의 침묵이 빚어낸 한국의 미를 섬세하고도 정갈하게, 단단하고도 담담하게 화폭에 담아낸다.
“국보를 그리는 것은 단지 옛 조형을 따라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그 안에 깃든 인간의 염원,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온몸으로 받아 적는 일이죠.”
한국화가 안중갑의 말이다. 그는 국보와 전통문화재를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단순한 모사(模寫)가 아니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정신이고, 표면이 아니라 내면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 내설악백공미술관 관장 박종용 화백은 “운필이 숙련미에서 오는 농담의 해소, 구성의 간결성이 요구하는 과정이 돋보인다. 고답적이고 관념적인 산수화일수록 그 기법 전개에 있어 사실적인 요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화풍 자체가 고전적인 화론에 정착돼 묶여있기 십상이나, 안중갑의 작품세계는 처절한 검증과정과 정밀한 묘사로 일관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고 평했다.
전통이 삶이 되다, 한국화로 향한 길
안중갑은 어릴 적부터 전통문화에 자연스레 끌렸다고 말한다. 궁궐, 사찰, 서원, 불상, 탑 등 조상들이 남긴 손끝의 유산들이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고, 이는 곧 한국화로 이어졌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한국화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전통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느낀 감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졌고, 자연스럽게 한국화가 제 삶의 중심이 됐습니다.”
그는 전통이라는 단어를 낡은 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문화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미학’이 담겨 있다.
붓끝에 되살아난 천년의 숨결, ‘국보’를 그리다
안 작가의 작품은 국보를 모티프로 한 한국화가 주를 이룬다. 경복궁, 불국사, 송광사, 백담사, 석굴암 본존불과 사천왕상, 소쇄원 등이 그의 작품 소재들이다. 천년의 세월을 침묵한 국보들이 그의 붓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왜 국보인가, 그는 대답한다.
“국보는 단순히 오래된 유물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지켜온 생생한 증거입니다. 저는 그 국보들, 특히 석굴암 본존불처럼 천삼백 년 전 신라 장인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예술적 정수를 다시금 화폭에 옮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특히 석공들의 망치질 하나하나를 ‘붓질로 되살리는 작업’이라 표현하며, 단순히 형상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땀과 정성, 기원과 간절함까지 붓 끝에 다시 불어넣는 것이 자신의 사명감이라 했다.
“보여지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을 그리고 싶어”
안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무엇보다 ‘울림’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붓끝은 느리고 조용하지만, 그 여백은 오히려 큰 울림을 품는다. 감상자와의 깊은 교감이 그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어느 날, 제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이 다시 숨 쉬는 걸 보니 벅차다’는 말에 저 역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아,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구나, 느꼈죠.”
그는 단순히 '좋은 그림, 멋진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 시간과 사람, 그리고 문화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는 예술의 중재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는 붓
물론 그의 길은 언제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통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과거에 머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편견조차도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받아들인다.
“예술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묵묵히 그리는 것. 그것이 오히려 지금의 시대정신과 자세가 아닐까요.”
기억되고 싶은 이름
“전통을 현대에 숨 쉬게 한 화가.”
그가 바라는 평가다.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감성으로 과거의 정신을 되살려내는 작업. 그것이 안중갑이 걸어온 길이자, 앞으로도 지켜가고 싶은 화업(畵業)이다.
“지금도 제 붓은 1300년 전 누군가의 망치질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계속 그려지겠지요.”
시간을 초월한 울림을 품은 화가, 안중갑.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국보와 전통 문화재를 중심으로 작업을 계속 이어간다고 한다.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우리 문화의 깊이를 널리 알리고, 또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통의 맥을 잇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국보’ 안중갑의 예술 여정에 힘찬 응원 보낸다.
한편 ‘국보’ 안중갑 화가는 한국화를 중심으로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22년 제41회와 2023년 제42회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입선하고, 2024년 제43회에서는 특선의 영예를 얻는 등 국내 유수의 공모전에서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그 외에도 다수의 전국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전통회화의 저력을 현대 미술계에 각인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인제문화원 초대전 ‘한국의 미’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