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부진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삼중고’
“새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최소 25조원 이상 2차 추경 불가피”
“통화정책 뿐 아니라 정부 지출 확대로 민간소비 유도해야”
【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2025년 1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 쇼크를 기록한 가운데, 내수 부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도 전에, 민간소비와 투자, 고용 등 내수 핵심 지표들이 줄줄이 부진하며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5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지난달 24일에 발표한 ‘2025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잠정치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1% 감소했다. 이는 오락·문화·의료 등 서비스 소비가 줄고,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 소비도 위축된 결과다.
고금리와 가계부채 부담이 장기화되며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3.8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약 5개월 간 기준선(100) 아래에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투자 부문 역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투자는 건물건설을 중심으로 3.2%나 줄었고, 설비투자도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위주로 2.1% 축소됐다. 설비투자의 1분기 성장률은 2021년 3분기(-4.9%) 이후 3년 6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소비 역시 0.1% 줄었다.
가계부채·고금리, 소비 위축의 ‘덫’
지난 4월 17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이 741조50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738조5511억원)과 비교해 2조4998억원 늘어 증가폭 역시 3월(1조7992억원)을 넘어섰다.
내수부진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삼중고’ 영향까지 더해져 국내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또한 평균 0.51%를 기록하며 10년 만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달 30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신규 취급 기준 정책서민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는 전월 평균 1.38%포인트에서 0.092%포인트 오른 1.472%포인트로 집계됐다.
은행별 정책서민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는 농협 1.55%포인트, 신한 1.51%포인트, 국민 1.49%포인트, 하나 1.43%포인트, 우리 1.38%포인트 순으로 높았다. 5대 은행 모두 전월보다 예대차가 확대됐다.
한은의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8로 꾸준히 기준치인 100을 하회 중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생활형편,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현재경기판단, 향후경기전망 등 6개 지수를 활용해 산출한 지표다.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 100보다 높으면 낙관적임을 의미한다.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지표인 현재경기판단은 52로 비상계엄 이후 꾸준히 50선을 유지 중이다.
명지대 경제학과 우석진 교수는 “예비적 동기의 저축으로, 경기가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에 다들 돈을 더 안 쓰게 되는 것”이라며 “기업도 발주를 끊거나 해서 투자도 안 되고 소비도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한파, 내수 위축으로 이어져
소득과 소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인 고용의 증가세 둔화는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져 소비 위축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내수 부진과 투자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리뷰 2024년 12월호’에서 2025년 취업자 증가폭이 지난해보다 약 6만 20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며, 내수 부진과 맞물려 경제성장률 하락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청년층 고용난은 장기적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노동시장 구조 문제를 심화시켜 성장잠재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3월 기준 취업자 수는 2858만9000명으로 전년동기보다 19만3000명(0.7%) 증가했다.
3월 실업자 수는 91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만6000명(3.0%) 늘었으며 실업률은 3.1%로 지난해보다 0.1% 높아졌다.
경기 부진 속에 기업들이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어 청년층 취업의 어려움도 지속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60세 이상(36만5000명)과 30대(10만9000명)에서는 취업자가 증가한 반면 20대(-20만2000명), 40대(-4만9000명), 50대(-2만6000명)에서는 취업자가 감소했다.
재정·통화정책, 내수부진 탈출 양날개
내수부진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구조적 문제로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비·투자·고용의 선순환을 복원하는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비 부담 완화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25년 공공주택 6만 호 착공을 목표로 하고, 정부는 건설형 공공주택 14만 호 인허가, 7만 호 이상 착공을 추진 중이다.
이 부분에 대해 우 교수는 “선진국은 보통 15%에서 20% 정도가 공공주택인데 우리나라는 5%에서 6% 정도다. 공공주택이 20% 정도를 차지하면 민간과 경쟁하기 때문에 가격 통제가 가능하고 주택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며 “공공주택을 늘리면 내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수 회복을 위해서는 “추경안에 있는 50만원 크레딧보다는 이전지출이 필요하다”며 “민생 회복 지원금 같은 것들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부가 당초 국회에 제출한 12조2000억원의 추경안에서 1조6000억원 증액한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안 수정안 처리에 합의했다. 이중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이 4000억원 반영됐다.
중앙대 경제학부 류덕현 교수는 “기존 12조 추경안은 민생 회복이나 자영업자에 대한 것은 해결되지 않는, 집행하기 어려운 추경안”이라며 “잠재 성장률이 0.1%포인트 감소할 때마다 GDP는 2조3000억원 정도 감소한다. 새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최소 25조원 이상의 2차 추경은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재정 정책과 더불어 내수 회복을 위한 금리 인하 필요성도 대두됐다.
상명대 경영학과 서지용 교수는 “지난번 같은 경우는 환율 때문에 인하를 하지 못한 것”이라며 “5월 금통위에서 한 번 인하한 뒤 경우에 따라서 연말 하반기 쯤에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내수 진작을 위해 통화정책 뿐만 아니라 정부 지출 확대로 민간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가야한다”고 설명했다.
충남대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어떤 한 분야에 예산을 몰아줄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예산 자체를 많이 키워야한다”면서 “R&D예산과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늘리고 전력망 투자, 응급복지나 지역의료, 간호사 인력 충원 같은 복지 쪽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