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개입 성과는 이어지지 못한 채 치료 중단으로 연결
실손보험 ‘F코드’ 면책과 특수교육 진입 장벽의 이중 구조
공교육 내 완충장치 부재…일반학급 속 ‘보이지 않는 배제’
정부 지원 늦고 적어…결국 치료는 가계 책임으로만 전가
치료 단절이 초래하는 장기 사회비용…구조 개편 목소리↑

발달지연 치료 중인 아이의 모습 ⓒ투데이신문
발달지연 치료 중인 아이의 모습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7세 하준이는 3세부터 언어·감각 통합 치료를 주 3회씩 받아 왔다. 치료사들은 꾸준히 하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또래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 했고, 부모는 매달 상당한 비용을 감당하며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실손보험사는 실사를 요구하며 F코드(정신과 질환 코드)가 나온다면 면책 조항에 따라 보장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설상가상 아이는 학교 단체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결국 하준이 엄마는 초등학교 진학을 미루게 됐다. 

우리나라 발달 지연 아동들에게 학령기 진입은 치료의 끝을 의미한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버티기 공간이 되고,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점점 작아진다. 하준이 사례와 마찬가지로 발달 지연 아동 다수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까지는 민간 치료와 보험에 의존해 치료를 이어 간다. 

그러나 F코드 진단에 따른 보험사의 면책 적용, 공교육 내 완충장치의 부재, 정부 지원의 후행성과 부족이 동시에 작동하며 조기개입의 효과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달러 투자에 17.9달러 수익…경제학이 증명한 조기 개입의 가치

조기 개입의 중요성은 경제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James Heckman)은 조기 개입이 단순한 복지가 아닌, ‘사회적 투자’임을 강조했다. 그가 정립한 ‘헤크만 커브(Heckman Curve)’에 따르면, 조기 개입의 수익률은 생애주기에서 가장 높다. 유아기(0~5세)에 1달러를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최대 17.9달러의 사회적 수익이 발생한다는 분석은 그의 장기 추적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다.

미국 페리 프리스쿨 프로젝트(Perry Preschool Project)는 1962년부터 저소득층 아동 123명을 대상으로 조기 개입을 실시했다. 40년 후 결과는 놀라웠다. 조기 개입을 받은 그룹은 투자 1달러당 12~17달러의 사회적 수익을 창출했다. 구체적으로 고등학교 졸업률이 77% 대 60%로 높았고, 월 소득은 1856달러 대 1308달러로 차이가 났다. 범죄율도 현저히 낮아졌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2021년 특수교육논총에 실린 김선경·황민아·최경순 저자의 ‘학령기 경계선 지능 언어발달지연 아동의 배경지식 유무에 따른 추론 능력’ 논문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BIF) 아동의 학습 능력은 일반 아동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언어 추론 과제에서 BIF 아동의 오답률은 일반 아동 대비 약 56% 높았다. 단순한 지식 암기는 가능하지만, 맥락을 추론하거나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의미다. 

학령기에 접어들며 치료 기회를 상실한 아이들은, 학습과 사회성에서 동반 실패를 겪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보육기관인 어린이집과 다음 스텝인 유치원까지는 발달 지연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지만 교육기관인 학교에서는 ‘학습 부진아’로 분류되거나 또래 집단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존재한다. 

헤크만 커브 이론을 통해 구성한 그래프. 영유아기와 학령기 초반을 기점으로 기회비용이 낮아지는 모습이 확인된다 [자료 제작=투데이신문]

보험의 ‘F코드 면책’…가장 필요할 때 끊기는 지원

대부분의 실손의료보험 약관은 F코드(정신 및 행동 장애)를 보장하지 않는 면책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초기에는 증상 코드(R코드)로 보장이 가능하지만, 치료가 장기화되고 정확한 진단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F코드가 내려지면 보험사는 즉시 보장을 중단한다. 치료가 가장 절실한 시점에서 경제적 지원이 끊기는 구조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F코드 진단 후 ‘면책 조항에 따른 보장 의무 종료’를 통보하며 치료비 지원을 중단한다. 이는 치료가 가장 필요한 시점에 경제적 지원이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월 수백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7세 하준이 부모 역시, 아이의 언어 표현력이 향상되고 교류가 늘던 시점에 보험사로부터 ‘보장 종료’ 통보를 받았다.

“치료사도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보험이 끊겼어요. 가장 희망적인 순간이, 가장 절망적인 시점이 됐죠.”

문제는 이후의 치료비다. 주 2,3회 치료를 유지하려면 월 200~3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국가의 지원은 평균적으로 이 금액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무른다. 일부 가정은 대출을 받아 치료를 이어가지만, 대부분은 치료 횟수를 줄이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다.

학령기 이후부터는 사보험 대신 본격적으로 공교육 시스템이 개입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이은영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민간 실손보험이 사실상 유일한 치료비 보전 수단인 상황에서는 F코드 진단이 치료 중단의 결정적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발달 지연 아동의 조기 개입 효과를 무력화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특수교육 진입 장벽…‘정상’과 ‘특별’ 경계에 선 아이들

느린 아이들의 특수교육 진입 장벽과 이중 배제 구조도 문제다. 특수학교는 전국에 174개교뿐이며, 서울에서는 경쟁률이 평균 2.3:1, 강남권은 4:1을 넘는다. 

입학 기준도 까다롭다. 단순히 F코드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특수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일반학교 적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특수학교 입학이 거부된다. 실제 국립특수교육원의 2023년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 10만9703명 중 73.3%는 일반 학교에 배치된다.

치료를 지속하려면 장애 등록을 선택해야 하지만 이처럼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낙인에 대한 우려, 향후 아이의 진학·취업에 미칠 영향 때문에 부모들은 장애 등록 자체를 꺼리게 되며, 아이의 적절한 치료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장애 등록을 고민하고 있는 일곱 살 하준이 엄마는 아이가 치료를 통해 좋아질수록 F코드 진단은 불가피해지고, 치료가 끊기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토로한다. 

“정신 문제로 판단되면 보험은 끊기고, 정부나 학교도 도와주지 못하는 3중 구조 속에서 부모와 아이만 고립되는 것 같아요. 배움의 터전인 학교에서 우리 아이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아홉 살 윤수 엄마는 장애 등록 이후의 지원과 상황을 보고 더욱 절망했다. 

“지연과 장애의 경계에 선 아이는 일반교육 적응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대상자에서 배제되기 일쑤예요. 부모가 F코드 등록과 보험 중단을 감수하고 장애 등록을 하더라도 나라에서의 지원에 기댈 수는 없는 현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일반학교에 배치된다고 해서 아이에게 맞는 교육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 6000여개 일반학교 중 특수학급이 설치된 곳은 30% 수준이며, 그마저도 학급당 평균 8~10명의 다양한 장애 아동이 함께 수업을 받는다. 자폐, 지적장애, 학습장애, 정서장애 아동이 한 교실에 섞여 있는 구조에서 ‘맞춤형 개별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특수교사는 “특수학급이 있더라도 인력이 부족하고, 다양한 장애 수준의 아동이 한 교실에 있다 보니 실질적인 개별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대부분의 느린 아이들은 일반학급에 배치된다. 초등학교 교실 평균 정원은 25~30명, 그 안에 느린 아이가 포함돼 있다고 해도 개별 지원은 불가능하다. 보조교사 등 아이들을 위한 어떤 완충장치도 없다. 그저 25-30명 중 한 명으로 앉아서 따라가지 못하는 수업을 견뎌야 한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말한다. “개별 지도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요. 다른 아이들 수업 진도를 맞춰야 하니까 결국 느린 아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죠.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기에는 ‘너무 정상’이고, 일반교육을 받기에는 ‘너무 특별’한 아이들이에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거죠”

치료 중인 학령기 발달지연 아동  ⓒ투데이신문
치료 중인 학령기 발달지연 아동  ⓒ투데이신문

학습 지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또래 관계에서 발생한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로 인식된다. 말을 더듬거나 반응이 느린 아이들은 놀림과 배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준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봤어요.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린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워낙 바쁘시니까 일일이 챙기지 못하시고요. 치료 받을 때는 몰랐던 고통이, 학교에 들어가며 현실이 됐어요.”

13세 준호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뒤 사설 치료를 꾸준히 받아왔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며 집단 따돌림과 정서 위축을 겪었다.

준호 어머니는 “아이 지능이 높은 편인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어요. 다른 애들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너무 잘 알아채요. 그러다 보니 상처를 많이 받고, 학교 가는 걸 무서워해요”라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 아동의 학습 실패는 자존감 하락, 행동 문제, 정서불안으로 이어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2023년 보고서에서 아동기 정서 문제를 경험한 이들 중 40% 이상이 청소년기 정신질환으로 전이된다고 보고했다. 이는 단순한 학습 문제가 아니라, 미래 정신건강 비용, 사회 적응 비용, 생산성 손실로 이어지는 문제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결국 느린 아동들은 교실 안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학습에서는 뒤처지고, 또래 관계에서는 배제당한다”며 “물리적으로는 교실에 있지만, 교육적·사회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된 ‘사라진 아이’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령기에 접어든 발달지연 아동의 악순환 [자료 제작=투데이신문]
학령기에 접어든 발달지연 아동의 악순환 [자료 제작=투데이신문]

치료 단절이 초래하는 사회비용 : 5.8배의 격차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명의 발달 지연 아동이 치료 없이 성인이 될 경우, 국가가 부담해야 할 평균 사회비용을 2억3000만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특수교육, 의료, 복지, 생산성 손실 비용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반면 조기 치료를 통해 일반 교육과정에 통합될 경우, 사회비용은 약 4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는 5.8배의 격차다.

미국과 유럽 다수 국가는 조기개입 이후 학령기까지 연계 치료를 제공하는 통합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전체 학생의 30%가 다양한 수준의 학습 지원을 받는다. 학습이 느리다고 해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분포 안의 차이로 받아들여지고, 그에 맞는 공적 자원이 제공된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영유아기 조기 개입 시스템은 일부 제도화됐으나, 학령기 연계 시스템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조기 개입의 효과는 무용지물이 된다.

치료가 필요하면 보험이 끊기고, 보험이 끊기면 치료가 중단되고, 결국 장애 등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때 받는 정부 지원은 이미 ‘늦은 지원’이 되어버린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악순환이라는 평가다.

이에 전문가는 치료를 복지나 선택이 아닌 아동의 권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6조는 아동의 생존권과 발달권을 명시하고 있다. 치료는 장애 등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든 아동이 최적의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기본권이다”라며 “조기 개입은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투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권리의 문제라는 점이다. 모든 아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권리가 있다. 학교 입학이 치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며, 느린 아이들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아동심리 전문가 또한 “결국 발달지연 아이들의 경우 연령과 관계없이 지속 가능한 발달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건강검진부터 학교검사, 상담, 치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며 “복지와 교육, 의료 간 통합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 부모가 혼자 동선과 자원을 연결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짚었다.

다음 5편에서는 느린아이의 치료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 법·정책 대안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