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충남 당진 침수 피해 현장
450mm 집중호우에 전통시장 ‘물바다’
“재해 아닌 인재”...미흡한 대응에 불만↑
‘불통’ 지적도...재난문자 늦고 행정 혼선
당진시 “2029 완공 예방사업 앞당길 것”

21일 오전 당진 전통시장 입구에서 화물 트럭이 침수 피해로 발생한 고물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투데이신문
21일 오전 당진 전통시장 입구에서 화물 트럭이 침수 피해로 발생한 고물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한두 번 수해 났다고 잠깐 보여주기식으로 처리하고 말 일이 아니라, 두 번 다시 문제 생기지 않게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해요. 절실합니다.”_철물점 사장 이모(61)씨

21일 수해 복구 현장에 나선 당진시 전통시장 주민들은 오전부터 내리쬐는 뙤약볕에 진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높은 습기와 공기를 달구는 열기에도 박살난 물건들을 옮기기 위해 두꺼운 장갑과 장화는 필수적으로 착용해야만 했다. 눈부신 햇볕에 잔뜩 찡그린 인상에서 착잡함이 묻어났다. 마른 아스팔트 위로 주민들의 무거운 걸음이 지나갈 때마다 진흙이 묻은 발자취가 진득하게 남았다.

충남 당진시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누적 강수량은 377.4mm에 달해 충남 15개 시군 가운데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정미면과 면천면 등 일부 지역은 강수량이 450mm를 초과했다. 당진시는 17일 새벽 4시 호우경보를 발령하고 출입을 통제했으며, 용장천 채운교 일대에는 홍수경보도 발령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극심한 폭염이었다. 오전에도 32도에 이르는 더위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당진 전통시장 현장은 침수 지역의 바닥의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고비가 찾아왔다. 저잣거리에 들어서자 마자 한숨 섞인 한탄이 들려 왔다.

“점점 더하네, 해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천막 가게를 정리하다가 나온 듯한 중년 여성이 옆 가게인 철물점 주인과 짧은 넋두리를 주고 받곤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폭우로 시장이 침수된 지 닷새가 지났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가게 앞에는 젖은 목재와 침수된 가전들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21일 오전 당진 전통시장에서 인부들이 비에 젖은 고물들을 건물에서 꺼내고 있다.&nbsp;ⓒ투데이신문<br>
21일 오전 당진 전통시장에서 인부들이 비에 젖은 고물들을 건물에서 꺼내고 있다. ⓒ투데이신문

폭우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던 현장이라곤 믿기지 않도록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주민들은 가게 앞으로 나와 쓰레기를 옮기거나 물건을 말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턱없이 많은 물량에 봉사자를 구하거나 용역업체 근로자를 고용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남편과 철물점을 운영하는 이모(61)씨는 “지난해에는 30cm 정도가 잠겼는데, 올해는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며 “가게 바닥에 아직도 물이 잔뜩 남아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해 입은 침수 피해를 전부 복구하지도 못한 채로 이번 수해를 맞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다른 가게는 청소하고 물건을 좀 버리면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지만 철물은 1년 동안 복구 작업을 해도 모자라다”며 “철물은 물이 닿으면 녹이 생겨서 쓸 수 없게 된다”고 울먹였다.

이씨의 남편은 연일 가게에 나와 철물점에서 사용하던 기계를 말리거나 기름칠을 하며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연중 행사처럼 침수 피해를 겪는다.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현실 도피를 하고 싶을 정도”라며 고개를 숙였다. 뺨에 흘러 떨어지는 땀줄기가 망연자실한 심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21일 오전 주택 침수 피해를 입은 김(65)씨가 못 쓰게 된 가구와 가전을 적은 메모를 보여주고 있다. ⓒ투데이신문<br>
21일 오전 주택 침수 피해를 입은 김(65)씨가 못 쓰게 된 가구와 가전을 적은 메모를 보여주고 있다. ⓒ투데이신문

시장 인근 건물에서 거주하는 김모(65)씨는 “이 집에서 5년을 거주했는데 이렇게까지 침수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냉장고 2대, 침대, 전자레인지, 벽지, 장판까지 다 물에 젖어 버렸다”며 “물이 들어오는데 압력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았고, 창문은 창살로 막혀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선뜻 집 안으로 기자를 들이며 벽지에 생긴 얼룩을 가리켰다. 물이 들이차 생긴 물자국이었다. 그는 “재난문자는 자정을 넘겨서 왔다. 이미 물이 차오른 뒤였다”면서 “6일째 여관방에서 자고 있는데 이 금액은 지원해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사를 가야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전통시장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지자체의 행정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도 수해 피해를 겪은 지역인 만큼 재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사전 예방 조치는 미흡했고 재난문자 역시 제때 전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피해 발생 이후에야 이뤄진 대응은 보여주기식 후처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21일 오전 미용실 앞에 젖은 채 쌓여 있는 나무 자재들. ⓒ투데이신문<br>
21일 오전 미용실 앞에 젖은 채 쌓여 있는 나무 자재들. ⓒ투데이신문

비가 쏟아진 지난 16일 침수 현장에 있었던 미용실 주인 김모(53)씨는 “가게에 있던 나무 재질의 물건들은 다 젖어서 버려야 한다. 옆 건물의 지하 공방은 벽체도 뜯고 짐을 전부 다 들어 나르고 있다”며 “지난해도 침수됐지만 올해는 더 심각하다. 그런데 대응은 지난해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현재로서는 무엇보다도 지자체와 소통이 안 되는 문제가 가장 불만스럽다”고 했다.

그는 “주민이 직접 시청 따로, 소방서 따로, 경찰서 따로 연락해서 호소해야만 일이 진행된다”며 “거리 차량 통제도 되지 않아서 짐이 잔뜩 쌓여 있는 거리에 차량들이 드나들었다. 전날도 장이 서는 날이어서 외부 진입 차량이 많았는데, 직접 연락해서 통제를 요청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진 전통시장은 3년째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당진천으로부터 역류한 물이 낮은 지대에 위치한 시장 거리로 흘러들어왔다. 김씨는 “이번 여름에 비가 많이 올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며 “미리 비상대책을 세우고 인근 댐의 수문을 열어뒀으면 이렇게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일 오전 침수 피해를 입은 철물점 안에서 자원봉사자가 바닥을 닦고 있다. ⓒ투데이신문<br>
21일 오전 침수 피해를 입은 철물점 안에서 자원봉사자가 바닥을 닦고 있다. ⓒ투데이신문

당진시 관계자는 전통시장 침수 피해와 관련해 “그쪽 근처가 지대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침수될 수밖에 없는 저지대”라며 “근처 당진천이 범람하면서 물이 흘러들어 침수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에서는 이미 2023년부터 읍내동 지역에 대한 도시 침수 예방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면서 “해당 사업은 우수관로 신설과 빗물펌프장 설치를 포함하고 있으나, 사업 기간이 장기화돼 오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에서는 올해 단기적인 대응으로 ‘차수 매트(토목 공사나 건축 현장에서 물이나 유해 물질의 침투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방수 시트)’를 도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차수 매트를 구입해 이번 폭우 시 실제로 활용했고, 덕분에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향후 대응 계획에 대해서는 “지난 20일 행안부 장관이 당진시를 방문했을 때 침수 예방사업을 조속히 추진해줄 것을 건의했다”며 “내년 장마철 전에 설치를 완료할 수 있도록 빠르면 6월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확한 일정은 보도자료를 통해 별도로 공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는 앞서 전통시장 등 침수 피해 지역의 진입을 통제하고 일부 주민에 대해 긴급 대피 조치를 시행했다. 지난 주말에는 수해 복구를 위해 시청 공무원 1100여 명과 군부대, 민간단체 등이 현장에 긴급 투입돼 배수 작업과 수해 쓰레기 처리 등을 진행했다.

오성환 당진시장은 침수 피해가 심한 전통시장을 직접 찾아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대피소를 방문해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현장 대응을 진행했으며, 김태흠 충남도지사 역시 전통시장 현장을 방문해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지원 방안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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