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이제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지금, AI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에 발맞춰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총서를 통해 교육, 의료, 산업, 사회, 예술, 철학, 국방, 인문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AI 담론을 폭넓게 조명해왔다. 인공지능총서는 2025년 7월 18일 현재 392종에 이르렀으며, 올해 말까지 630종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의 핵심 이론부터 산업계 쟁점, 일상의 변화까지 다각도로 다루면서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은 최근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AI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어떤 가치와 기준이 필요할까. 투데이신문은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AI 사회’를 향한 제언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지금 전 세계는 AI 기술 개발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은 물론 인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까지 치열한 기술 전쟁에 뛰어들었다. 과거에도 국가 간 경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거의 모든 나라가 단일 분야를 향해 동시에 전력을 다하는 장면은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물다. 이 경쟁은 단순한 산업 개발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 국가의 생존과 위상을 좌우할 거대한 미래 전쟁의 서막이다.

이미 주요 국가들은 오랜 시간 축적한 강점을 기반으로 AI를 접목해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로봇 공학과 자율주행, 우주 산업에서, 유럽은 제조·환경 기술에서, 중국은 대규모 플랫폼과 물류 시스템에서 AI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각국은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AI를 무기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에서 승부를 시작해야 할까?

그 답은 의료 AI다. 의료 AI는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이자, 이미 절반의 승기를 잡고 있는 무대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고, 전국 어디서나 균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의료 데이터의 정확성·표준화 수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전 국민 커버리지는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수준이다. 여기에 국내 의료진의 높은 역량과 IT 기술력, 빠른 디지털 수용 속도가 결합되면, 다른 나라가 수십 년을 투자해도 따라잡기 어려운 경쟁 우위를 만들 수 있다.

이 자산들이 AI와 결합될 때, 의료 AI는 단순한 진단과 치료의 도구를 넘어 국민 건강을 지키면서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이중의 엔진이 된다. 이는 다른 어떤 AI 분야보다도 성공 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표준을 주도할 잠재력이 크다. 지금 우리가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집중 투자한다면, 한국은 의료 AI에서 세계의 기준을 만드는 나라가 될 수 있다.

AI는 이미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본질적인 목표를 돕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세한 징후를 포착하며, 진단과 치료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은 인간 의료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AI와 함께라면 가능하다. 유방암 검진에서 숙련된 전문의보다 낮은 오진율을 기록한 AI 판독 시스템, 환자의 재입원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분석 모델, 원격지에서 당뇨망막병증을 단 10분 안에 판별하는 진단 알고리즘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의료 AI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의료 AI의 강점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판단과 역량을 확장하는 데 있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업무를 대신 처리해 의료진이 환자와의 대화, 창의적 임상 판단, 정서적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하고, 최신 의학 연구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환자별 최적화된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의료 AI는 인간과 기계의 협력을 통해 더 정확하고 따뜻한 의료를 실현하는 ‘디지털 동반자’로 기능한다.

더 나은 의료 AI 발전을 위해서는 데이터 접근과 활용 체계를 보다 유연하게 설계하고, 임상 적용 절차를 효율화하며, 연구 현장에서의 제약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이 마련되면 의료 AI는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며 환자와 사회 모두에 더 큰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의료 AI는 규모와 복잡성이 방대해 한 개인이나 기관의 역량만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분야다. 데이터 수집과 관리, 기술 개발, 임상 검증, 제도와 규제 마련까지 모든 과정이 긴밀히 맞물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학계, 산업계, 의료계가 각자의 강점을 결합하고,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의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거버넌스와 장기 비전 없이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의료 AI는 국민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지금이 바로 선택과 실행의 시점이다. 기술의 진보를 두려움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이고, 의료 AI를 ‘사람을 위한 기술’로 성장시킬 때, 우리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와 함께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다.
 

△ 윤규백

필자소개

이화여자대학교 인공지능대학 인공지능소프트웨어학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의료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다이내믹스(Dynamics) 및 컨트롤(Control) 분야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기계학회에서 매년 단 한 차례 수여하는 우수박사학위논문상을 수상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의료 영상 기반 인공지능 기술로, 다양한 의료영상을 활용한 질병 진단 및 예후 예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SCI 상위 5% 이내의 다수 논문 게재를 포함해 미국기계학회(ASME) 초청 세션, Global Dental AI Symposium, Harvard University에서의 강연 등으로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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