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이제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지금, AI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에 발맞춰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총서를 통해 교육, 의료, 산업, 사회, 예술, 철학, 국방, 인문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AI 담론을 폭넓게 조명해왔다. 인공지능총서는 2025년 7월 18일 현재 392종에 이르렀으며, 올해 말까지 630종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의 핵심 이론부터 산업계 쟁점, 일상의 변화까지 다각도로 다루면서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은 최근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AI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어떤 가치와 기준이 필요할까. 투데이신문은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AI 사회’를 향한 제언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미디어 생태학이란 분야가 있다.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였던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이론을 계승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생태학이란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미디어 생태학이란 학문이 성립되려면, 미디어학과 생태학이 온전히 융합이 돼야 할 것이다. 이 당연한 전제가 반영돼 있지 않다.
시작은 텔레비전 비평이었다. 매클루언의 이론을 계승한 미국 뉴욕대학의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미디어를 생태적 환경이라고 보고, 그것을 미디어 생태학이라고 간주했다고 한다. 포스트먼은 ‘미디어 환경’을 메타포라고 했다. 결국 미디어를 메타포 차원에서 생태적 환경으로 간주하고 논지를 전개한 것을 두고 미디어 생태학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핵심은 오락 프로그램 위주의 텔레비전 비평이었다.
시작은 그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후로 반세기가 지났건만 미디어 생태학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스트먼의 영향으로 탄생한 미디어 생태학회가 활동하고 있는 현재까지 미디어 비평에 그칠 뿐 생태학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매클루언은 자신의 학문을 미디어 생태학이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용은 미디어 생태학이었다. 그의 이론의 핵심 키워드는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 ‘지구촌’, ‘미디어가 메시지다’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정의는 생물학, 지구촌은 상대성이론,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생소한 문장은 생리학 내지는 최근의 뇌과학과 연결된다.
미디어학계에서 미디어에 대한 정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 내지는 수단으로 통해왔다. 그러나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인간 신체의 확장으로 정의했다. 이때 인간의 확장물의 자격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게 해주는가의 여부에 있다. 그래서 바퀴와 도로, 기차, 비행기 등도 미디어다. 물론 청각 중심의 음성언어와 시각 중심의 문자, 인쇄술, 그리고 전자매체는 기본이다. 특히 매클루언이 주목하는 것은 중추신경의 확장인 전자매체다. 매클루언은 인쇄매체에 비판적이면서 전자매체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포스트먼의 텔레비전 비판과는 대비된다.
1964년에 출판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에서 천명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출판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와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에서 뒷받침된다. 도킨스는 나뭇가지를 모아 개울을 막아 집을 짓고 사는 비버라든지 흰개미집 같은 건축물을 대표적인 확장된 표현형으로 꼽았다. 매클루언은 다른 생물학자들의 이론을 앞세워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했다. 미디어학자들이 매클루언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난해하게 기술했다고 비판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지구촌은 매클루언이 유행시킨 말이다. 매클루언은 텔레비전을 중추신경의 확장물로 간주하고, 텔레비전이 전기의 속도로 메시지를 유통시킴으로써 광활한 지구가 하나의 촌락 수준으로 수축되었다고 설명했다. 전기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이동하면 시간이 정지하고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다. 이것이 지구촌이다. 인간의 중추신경이 전기의 속도로 지구의 구석구석에 닿아있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재치있게 설명한 것이다. 포스트먼의 메타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미디어학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따라서 수용하지도 않았으며, 다르게 해석했다. 미디어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틀렸다. 미디어 이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매스컴효과이론의 핵심은 메시지가 대중에게 미치는 효과에 있다. 그러나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미치는 효과를 우선시했다.
대한민국에 2009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해 순식간에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는가?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였는가, 콘텐츠였는가? 대답은 자명하다.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바뀌면 인간의 지각패턴과 감각비율이 바뀐다고 했다. 그래서 미디어가 메시지인 것이다.
인류의 두뇌 용량이 3000년 전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현생 인류는 13만5000년 전부터 초보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0만년 전부터 사회적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를 사용하면 기억하기가 쉬워지고, 자연스럽게 구성원들과 기억을 분담하게 되었을 것이다. 뇌의 부담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기억을 대신해주는 문자의 발명이다. 뇌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뇌 용량의 축소다. 그렇게 해서 현재 인간의 두뇌 용량은 평균 1.4kg이다. 고급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뇌의 용량이 줄어들면, 에너지 사용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남는 에너지는 다른 기관의 발달을 가져왔을 것이다. 미디어는 인간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생태학은 이렇게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하는 도구를 만드는 인간, 그 인간이 만든 미디어가 인간 신체와 나아가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라는 미디어는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공상과학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듯이 공연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신에 과학적인 설명에 역점을 두어야 할 때다. AI 생태학이 필요한 까닭이다.
필자소개
고려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일장신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한양대, 단국대, 전북대, 동아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한국AI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이며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미디어 이론으로 본 AI』, 『미디어 오디세이』, 『미디어 시간여행』, 『매클루언 미디어론의 자연과학적 해석』, 『미디어 빅 히스토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