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땀구: 쾌적함을 만드는 ‘청소노동자’

업무 과중에 밤샘 청소…손목 등 근골격계 질환 호소
낙상 등 안전사고 위험에도 노출…“1인 근무 실태 여전”
노숙인 상대부터 주취사 오물 등 처리하는 ‘감정노동’
“깨끗한 지하철 홍보보다 처우 개선 먼저 이뤄져야”

여성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허리를 숙여 청소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몰래 주무르며 목소리로 감정을 조절해 현장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들. 그러나 이들의 몸은 그만큼 상하고 여전히 소외돼 있다.

여성 노동은 단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쉬운 일’로 치부되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여성땀구생활] 기획을 통해 ‘일하는 몸’을 거울 삼아 여성 노동의 특수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밝은 미소 속에 감춰진 거칠고 버거운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며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청소노동자 이경숙(가명·64)씨의 모습. ⓒ투데이신문
청소노동자 이경숙(가명·64)씨의 모습. ⓒ투데이신문

본 기사는 청소 노동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취재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사람들의 왕래가 끊기고 도시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그때야 비로소 하나둘 일터로 나서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집에서 쉬거나 잠든 시각부터 비로소 우리의 하루가 시작된다. 바로 청소 노동자들이다. 7년째 역사 내부를 쓸고 닦으며 하루를 보내는 나, 이경숙(가명·64)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오늘도 난 지하의 횡량한 공간을 쓸고 닦는 내 손과 팔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깨끗한 시설과 이를 이용할 승객들을 위해서다. 

땀의 기록 1. 모두 잠들 때 시작되는 노동 

나는 불면증이 있어 낮보다 밤이 나았다. 남편이 퇴직한 뒤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을 찾다 보니 우연히 야간 미화 일에 뛰어들었다. 나는 오후 9시 15분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6시 15분까지 9시간을 일한다. 아니, 사실상 출퇴근과 준비시간을 포함하면 10시간 넘게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휴게시간 역시 2시간 30분이라고 하지만 이마저도 쌓여있는 청소 업무, 점검을 하다보면 온전히 쉴 수도 없다. 더욱이 휴게시간 중에도 호출 시 즉시 업무에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 시간에 불과하다. 이러한 탓에 식사도 틈새에 밀어 넣듯 해결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사람 발길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역에서는 쉴 틈조차 없다. 그나마 한산한 역에 배치될 때만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다.

전철이 멈추고 셔터가 내려지면 텅 빈 역사 안에 나의 발자국 소리와 물이 바닥을 타고 퍼지는 척척한 울림만이 남는다. 상·하선 승강장, 미로 같은 통로, 구석진 계단까지... 바닥에 찬 물을 쏟아 붓고 거친 대걸레를 힘껏 밀어내면 묵은 먼지와 발자국이 희끗희끗 벗겨진다. 물비린내와 세제 냄새가 뒤섞여 코를 스치고 팔 전체와 허리에는 묵직한 힘이 걸린다.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식을 새 없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다.

나도 지하철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지하철이 원래 깨끗한 줄 알았다. 청소 노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땀 흘리며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용하는 지하철인 만큼 청소 역시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깨끗한 지하철 뒤에는 이렇게 묵묵히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오늘도 나는 사람들도 분주했던 공간이 조용해지자 빗자루를 쥐고 대걸레를 들어 올린다. 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청소는 계속된다.

서올 소재 한 지하철 역사의 모습. ⓒ투데이신문
서올 소재 한 지하철 역사의 모습. ⓒ투데이신문

땀의 기록 2. 고통으로 가득한 신체 

새벽의 공기를 가르며 나는 호스를 끌고 걷는다. 고된 청소 노동은 그대로 몸에 드러나기 십상이다.

빈 호스라면 모를까, 물이 가득 찬 호스는 내 팔뚝보다 굵고 역사 곳곳을 쏘다닐 수 있도록 길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어깨는 무겁게 처지고 팔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기 힘들정도 까지 굳는다. 손목은 금새 시큰해지고 호스를 버티는 다리는 후들거린다.

걸레질로 시작한 하루는 화장실 물청소, 스크린도어 안 기찻길 청소, 하수구 뚫기, 역 구석구석의 쓰레기 수거로 이어진다. 그 속에는 비누칠과 소독, 그리고 말로 다 못할 악취와 오물 처리까지 들어 있다. 냄새는 마스크를 뚫고 폐 속 깊이 스며들고 눈은 그 풍경을 거부하려 해도 도망갈 수 없다. 이 일을 한 주에 6일이나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다.

시간이 쌓일수록 몸도 함께 망가진다. 호스를 당기고, 바닥을 문지르고, 물을 퍼내다 보면 제일 먼저 어깨가 뻐근하게 경고를 보낸다. 하지만 어깨의 통증은 결코 홀로 머물지 않는다. 어깨가 무너지면 통증은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손목으로, 다시 손가락 마디로 번진다. 마치 물길이 아래로 흘러가듯 내 몸의 통증은 연결돼 줄줄이 아픔으로 가득찬다. 결국 손을 움직이는 일조차 버겁게 만든다.

거기에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도 있다. 무거운 호스를 끌고 한 발 한 발 딛다 보면 허리와 무릎이 쉴 틈이 없다. 좌골신경은 저릿한 통증이 이어지고 종아리는 늘 굳어 있다. 어떤 날은 다리를 옮길 때마다 몸 안쪽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병원을 자주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병원에 가는 일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돼버렸다. ‘근골격계 질환’은 내 노동에 떼려야 뗄수 없는 존재다.

주사 바늘에 의지하고 파스를 붙이며 버티는 삶. 그러나 그것은 치료라기보다 단지 ‘연장전’을 준비하는 행위다. 다시 현장에 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내 몸은 그렇게 고통과 노동을 맞바꾸며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땀의 기록 3. 아픔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야간 근무가 길어질수록 내 몸은 낮과 밤의 경계를 잃고 잠은 얕아지고 정신은 늘 흐릿하다. 집에 가도 깊이 잠들지 못한다. 근무 중 쉬는 시간마저 호출에 대비해 몸을 긴장시킨 채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일은 단순히 몸만 쓰는 일이 아니다. 체력과 인내, 그리고 끝없는 회복을 요구하는 몸 전체를 담보로 한 노동이다.

밤낮이 바뀐 삶을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집에서도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눈을 감아도 언제든 호출이 올 수 있다는 ‘대기 습관’이 온 몸에 배어버린 탓이다. 깊은 잠은커녕 얕은 잠으로 밝은 햇살을 애써 보지 않은 채 꾸역꾸역 잠에 빠지기 위해 애쓴다. 그 피로는 곧장 집중력을 갉아먹고 정신마저 무겁게 짓누른다. 심장이 덜컥거릴 때면 문득 두려움이 스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일렁인다. 

여름이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역사의 문이 닫히는 순간, 환풍기도 멈추고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 갇힌다. 공기는 뜨겁고 무겁다. 땀방울은 등줄기를 따라 쉼 없이 흐른다. 코로는 매섭게 먼지가 들어온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공간 속은 청소 노동자들의 거친 숨 소리로 가득해 진다. 

심지어 어떤 역사는 스크린 도어조차 열어주지 않는다. 물청소를 할 때 스크린 도어가 열리지 않으면 물은 갇혀 버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물을 억지로 밀어 하수도까지 보내야 한다. 양손에 힘을 모아 바닥을 밀다 보면 어깨와 손목이 비틀리고 심지어 도구가 꺾여 다치는 경우도 있다. 스크린 도어만 열어줘도 일의 효율은 높아지고 체력 소모는 훨씬 줄어들 텐데...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한 동료가 물 청소를 하다가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거나 팔목이 부러지기도 했다. 한순간의 미끄러짐, 한 번의 무리한 동작이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됐다. 

특히 여성 동료들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무거운 기계를 밀고 돌려 바닥을 청소해야 하는데, 다소 팔 힘이 약한 우리에게는 매사가 사투다. 예전에는 계단까지 그 무거운 기계를 들고 오르내리며 물청소를 했지만 지금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나마 금지됐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의 어깨와 허리는 매일같이 무거운 노동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관계자가 청소도구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관계자가 청소도구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땀의 기록 4. 누군가의 오물을 치우는 일 

지하철 청소는 단순히 역사 바닥의 먼지를 쓸어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손길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과 사람들의 발길이 지나간 흔적뿐 아니라 그들이 남기고 간 가장 지독한 잔해까지 치워야한다. 바로 각종 오물과 토사물 등이다. 

밤이면 술 취한 사람들로 붐비는 역, 특히 홍익대나 종로 같은 유흥가 인근 역사는 더욱 고역스럽다. 구토, 인분, 소변 등이 역 구석구석에 남겨지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다. 적은 곳은 하루 한 건 많은 곳은 여섯 건 이상 발생한다. 우리는 그 흔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코로 냄새를 견디며 장갑을 낀 손으로 긁고 닦아내야 한다. 아무리 두꺼운 마스크를 써도 악취는 천을 뚫고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장갑을 몇 겹을 껴도 손끝으로 전해지는 촉감은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노숙인이 머무는 역이라면 위험은 더 커진다. 술에 취해 욕설을 퍼붓거나 난동을 부리는 이들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노숙인들이 화장실에서 씻거나 음식 등 생활의 흔적을 남기고 떠난 자리까지 우리가 치워야 한다. 그 앞에 선 나는 미화원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감당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에 가깝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굴욕감도 극심하다. 우리가 앞에 있음에도 서슴없이 침을 뱉거나 무심하게 욕설과 폭언을 던지는 일부 시민들 앞에서 우리의 존엄이 흔들린다. 더 이상 청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문제다.

오늘도 보고싶지 않은 것을 봐야하고 이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 나는 묵묵히 빗자루와 걸레를 든다. “왜 우리는 존중받지 못하나”라는 노동자들의 탄식은 여전히 지하철 역사 곳곳에 울리고 있다.

땀의 기록 5. 고된 업무에도 열악한 환경 

극한의 감정노동과 신체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청소 노동자들의 보수는 낮고 복지 혜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나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같이 세금을 내는 같은 국민이지만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늘 설움을 삼켜야 한다. 또 극심한 노동 강도에 비해 경제적 보상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버텨내야 한다.

그렇다고 복지가 좋은가? 그것도 아니다. 서울시 지하철 1~4호선은 50년 이상 됐기 때문에 휴게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저 몸을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5~8호선 역사의 휴게 시설이 조금은 개선됐지만 편하고 안락하게 쉴 수 있냐고 물으면 당연 아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쉬기에 내부가 좁은 것은 물론 땀에 절은 몸을 씻어내고 오물을 치우느라 뒤덮인 냄새를 지워낼 제대로 된 샤워실 조차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좁은 공간에 모여 한숨 돌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남성과 여성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더 심각하다. 여성 휴게실은 그래도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된 경우가 종종 있지만 남성 휴게실은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곳이 많다. 냉방기, 정수기도 없는 방에서 편안하게 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남성 노동자들이 종종 여성 휴게실을 오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은 편히 옷을 갈아입거나 눕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휴식은 몸을 회복하는 시간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서로에게 미안해하며 눈치를 보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는 높은데, 경제적 보상은 제한적이고 복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무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긴장은 해소되지 못한 채 누적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오래된 역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일수록 이러한 불이익은 더 깊어진다. 새로 지어진 역사와의 격차는 결국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또 다른 차별을 만든다.

이씨의 급성통증 등이 담긴 진료비 세부내역서. [사진제공=본인]
이씨의 급성통증 등이 담긴 진료비 세부내역서. [사진제공=본인]

땀의 기록 6. 인식 개선부터 차근차근 

일부 선진국에서는 하수구 청소 등 기피도가 높은 노동일수록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위험하고 고된 노동일수록 저임금 구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지하철의 청결함을 홍보하기 전에 그 뒤를 지탱하는 청소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처우 개선을 위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일부 시민들은 청소노동을 공공서비스가 아닌 ‘하찮은 일’로 치부한다. 오물 처리와 야간 근무, 사고 위험을 동반한 고강도 노동임에도 정작 ‘위험한 노동’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시선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노동의 동력을 꺼뜨린다.

정신적 건강권 침해도 심각하다. 무례한 태도, 비하, 폭언은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단순히 몸의 고단함을 넘어 자존감을 짓밟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보려 해도 구조적 벽은 높다. 각 역마다 2~3명씩 흩어져 일하다 보니 의견을 모으기도 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관리자가 노동조합에 개입하면서 일선 노동자의 힘은 점점 더 약해진다.

청소 노동자 대부분은 퇴직 후 재취업해 이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50대 이후가 많다. 그래서 은퇴할 나이까지 “몇 년만 참으면 된다”는 체념이 퍼져 있다. 이런 자기희생적 문화는 발전을 가로막고 결국 미래 세대 노동자에게도 짐이 된다. 우리 스스로도 바꿔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무엇보다 인력 충원은 절실하다. 사측은 ‘3인 1조’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휴무와 기동 근무로 인해 절반 이상이 혼자 일하고 있다. 하루 10일 이상 역 전체를 혼자 맡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만큼 안전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쓰러져도 부를 이가 없고 구조도 기대할 수 없는 현실. “누군가 죽고 나서야 바뀔 것”이라는 말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로 인한 업무 과중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사람이 여러 화장실과 역사 내부를 책임지고 쓰레기, 오물 등 뒷처리까지 모두 감당한다. 외로움 속에서 싸우는 노동은 우리 목을 조이고 몸을 짓누른다.

그래서 우리는 호소한다. 최소한의 인력 충원, 2인 1조 체계의 정착이 절실하다고. 이외에도 야간 근무 수당과 급여도 현실화돼야 하며 안전한 일터를 위한 안전 장치와 응급 대응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시민들이 도시의 청결을 필요로 하기에 오늘도 우리는 어둠이 깔린 도시, 그 지하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제 더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깨끗한 지하철은 누군가의 땀과 고통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

우리도 사람답게, 존중 속에서 일하고 싶다. 사회가 “수고했어요, 당신 덕분에 도시가 빛납니다”라고 내 일이자 모든 청소 노동자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기억해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청소 노동자의 질환을 나타낸 표. [일러스트 제작=김민수] 
청소 노동자의 질환을 나타낸 표. [일러스트 제작=김민수]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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