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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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정하는 게 있다. 내겐 약속 장소보다 중요한 건데, 바로 ‘뭘 먹을지’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밥’이라는 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들만 봐도 명확하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린다’, ‘밥값 해라’, ‘그게 밥 먹여주나’에서부터 인사처럼 사용하는 ‘밥 먹었냐’까지.

밥 없는 삶 없고, 끼니를 챙기는 일이 사람 사이의 온기를 확인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밥상을 책임지는 농축산업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한 관세 협상 논의 과정에서도 농업계는 사실상 배제된 채 협상이 진행됐다. 관세 인하를 위해 농산물 시장 개방이 거론됐지만 정작 당사자인 농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값싼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는 순간 지역 농가와 농민들의 생계는 직격탄을 맞는다. 그 피해는 단순히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밥상 물가와 식량 주권, 더 나아가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협상에서 민감 품목인 소고기와 쌀을 제외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불안은 여전했다. 이는 비단 이번 한 번 만의 문제가 아니라, 테이블에서 제외돼왔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이다. 농민은 노인, 비수도권과 같은 키워드와 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국가 발전은 반쪽짜리 발전이다.

기후 위기 역시 코앞까지 닥쳐왔다. 단순히 ‘조금 더’ 더워진 수준이 아니다. 올여름에도 폭우와 홍수로 농경지가 침수되고 가축 수천 마리가 산채로 수몰됐다. 농민들이 1년 ‘먹고 살 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기후 재난으로 인한 농축업계 피해가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닌데, 매번 반복되는 재해 앞에서도 농업계 지원 대책은 미봉책 수준이다. 자연재해가 언제든 농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뻔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구조적 보완은 더디기만 하다. 

농민들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제초와 같은 농사일을 위해 논밭에 나가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비극 역시 실재한다.

농축산업과 같은 먹거리 산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다. 우리의 밥상과 직결된 생존 기반이자, 전통과 문화의 토대다. “밥 먹었냐”는 표현을 인사 대신 사용하는 사회라면, 밥을 짓는 이들을 존중하고 지킬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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