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노 기자/투데이신문 미디어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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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전 세계가 폭력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의 네팔에 이어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빈곤과 불평등에 항의하는 폭력 시위가 급증하고 있다. 멀리 유럽의 최강국 프랑스도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정책과 복지수당 감축 등을 밀어붙이다가 폭동으로 번질 태세다.

이 모든 폭력 시위의 중심에는 청년과 특권이라는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결합돼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특징은 젊은층들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고위층 인사들의 특권에 박탈감과 피해의식만 느낄 뿐 미래를 설계하려는 희망조차 갖지 못한다. 또한 기성세대가 흥청망청 써댄 ‘공적자금’ 고갈의 뒤처리를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건 불평등을 넘어 일종의 폭력이다.

이 모든 문제의 본질에는 사회지도층의 특권 카르텔이 숨어 있다. 의사결정 구조에서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청년층이 빠짐으로써 불평등 구조는 심화되고 부의 세습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권이 특권을 낳고 흙수저 청년들은 그 특권의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밑돌’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정치는 이런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전혀 해결해 내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기름에 정치 무능이 불을 붙였고 결국은 민심이 폭발했다. 특권 카르텔이 조장한 불평등과 정치 무능의 연결 고리는 빈부 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구조적 폐해만 낳고 있다. 

현재 아시아 전역으로 번지는 ‘가난의 습격’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불평등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기성세대와 청년들 간의 세대 충돌이다. 여기에 경제적 약자까지 뒤섞여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데 눈을 돌려 한국을 보면 조직된 청년들의 폭력 시위 양상만 다를 뿐 한국의 청년들도 분노와 좌절의 그 어디쯤에서 고통받고 있다. 청년의 활동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실업률은 만성적인 정체 상태에 있다. ‘쉬었음’ 인구(구직 활동 없이 쉼)는 이미 5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청년들이 가장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쉬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역동적이기보다 기성세대의 현상유지에 매몰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불행한 징후다. 

한국의 국회의원 특권 지수도 전 세계 톱 수준이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혜와 특권은 약 180~200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헌법상 보장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비롯해 연 1억5700만 원 이상의 세비와 각종 수당, 보좌진 9명 채용, 교통 및 의료 복지 혜택, VIP시설 이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이런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특권에 대해 한국의 청년들은 순둥이처럼 착하기만 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사실 한국 청년들은 직접적 폭력이나 대규모 물리적 시위만 하지 않을 뿐 이미 기성세대나 정치와는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다.

2030세대는 표심이 진영 논리보다는 ‘개인 이익’과 ‘공정과 실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20대 남성의 보수화, 극우화 경향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청년들이 ‘짱돌’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그들의 손에는 기성세대와 특권층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꿈틀거리고 있다. 

아시아의 청년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불평등에 항거하는 작금의 세기말적 상황이 한국에도 얼마든지 도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커다란 파도에 맞설 사회 시스템이 있는가. 정치는 이미 보수와 진보의 진영, 이념 대결로 얼룩져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정치는 복잡다단한 사회의 각종 이해갈등 관계를 조정하고 결정하는 최후의 보루다. 특히 정치인의 역할은 더 이상 선동과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행정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이제 지도자의 새로운 기준점이 돼야 한다. 

동남아시아의 폭동 사태는 “지도자는 불평등을 어떻게 다루는가로 평가받는다”는 또 다른 시대정신을 일깨우게 한다. 불평등과 청년을 방치하는 나라는 모두 폭력 시위의 잠재적 당사자가 될 것이다. 가난의 습격에 국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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