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오늘의 주요 이슈를 사실-맥락-관점의 세 축으로 풀어드립니다. 음악에서 ‘피처링’은 협업과 도움을 뜻하고, 저널리즘의 Feature는 단순 속보가 아닌 깊이 있는 맥락과 스토리를 다룹니다. 〈뉴스 피처링〉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담아 뉴스의 본질과 함의를 알기 쉽게 풀어내 여러분의 뉴스 생활을 입체적으로 피처링 해드리겠습니다.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전격 구속됐습니다. 한 총재는 윤석열 정부와 통일교 사이 ‘정교유착 의혹’의 최정점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이 예상됩니다.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서울중앙지법은 7시간의 검토 끝에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김건희특검이 청구한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한 총재의 혐의는 매우 위중합니다.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난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등과 공모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건진법사 전성배를 통해 김건희에게 명품 목걸이와 가방을 건네며 교단 현안을 청탁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한 총재 측은 권 의원에게 청탁금지법도 적용되지 않는 수준의 세뱃돈을 건넸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윤 전 본부장이 김씨에게 금품을 건네는 데도 관여한 바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김건희특검은 관련자 진술과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에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일단 법원이 한 총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혐의의 주요쟁점은 유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번 사건의 파장은 단순히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인신구속에 머무를 것 같지 않습니다. 한 총재가 ‘세뱃돈’을 줬다고, 처음 돈 준 사실을 시인했던 그의 ‘카운터파트’ 권성동 의원도 이미 구속됐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통일교와 국민의힘 간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불법 대선자금 의혹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한학자 통일교 총재 구속으로 촉발된 이번 ‘정교유착 의혹’ 사건은 지난 2004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과 비견될 만한 중대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김건희특검은 일단 한학자 총재를 구속했기 때문에 일종의 ‘플리바게닝’ 기법을 통해 통일교측이 국민의힘에 건넨 불법 대선자금의 실제 규모를 파헤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실제로 국민의힘 정당 해산이나 대선 무효 논의까지 거론될 수 있는 초유의 정치적 국면과도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은 200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대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 액수의 불법 정치자금을 트럭(차떼기)으로 전달받은 사실이 2003년~2004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대형 정치 스캔들입니다.
2002년 11월 대통령선거 직전부터 이회창 후보 캠프가 불법 대선자금(총 823억 원 규모)을 삼성, SK, LG 현대 등 주요 재벌로부터 현금으로 직접 트럭이나 승합차 등에 실어 건네받은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주차장 등 외부에서 거액이 담긴 사과상자를 트럭째 받아오는 등 창의적이고 대범한 수법으로 ‘수금’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같은 대규모 불법 자금 수수는 당시 부패한 ‘금권정치’의 극단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대표적 정치 스캔들이었고, 그 후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이 오랫동안 따라붙었습니다.
사건 이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책임자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나 직접 구속되지는 않았고 불법자금의 수수와 운반을 직접 주도한 이 후보의 최측근 서정우 변호사 등 실무선에서만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800억 원대의 불법자금을 배상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당 소유의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는 등 재산상 엄청난 출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적 정치 불신과 혐오는 급기야 정당 해산 요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2003~2004년 차떼기 사건 당시 정치권에서는 정당해산 논의가 있었습니다. 정당 해산 심판 청구 권한은 ‘정부’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한나라당 정당해산심판을 공식 청구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차떼기 사건을 대대적으로 벌이긴 했지만 그 규모가 워낙 커서 대기업 위주로 상징적 처벌을 한 뒤 사태를 봉합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정권 내내 한나라당 말살 수준의 수사를 할 경우 ‘야당 고사 작전’이라는 후폭풍에 직면할 수도 있고 불법행위의 위헌성 정도에 대한 판단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야 관계 회복 등의 ‘정무적 고려’를 한 뒤 실제 정당해산청구 절차를 공식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일교와 국민의힘간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차떼기 사건은 대기업들이 단순히 특정정당에 ‘보험금’ 성격의 불법 자금을 할 수 없이 준 측면이 강하지만 통일교 정교유착 의혹은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함께 통일교 관련 당원 10만~12만명이 국민의힘에 집단입당한 정황까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차떼기 사건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헌정질서 파괴행위입니다.
지금까지 정당과 기업 간 ‘정경유착’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관행이었지만 이번 통일교 사태처럼 노골적인 ‘정교유착 사건’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특검 수사 결과 통일교인이 국민의힘 당원으로 입당한 규모가 10만~12만명 규모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중 상당수가 2023년 당대표 경선이나 대선 즈음 집중 입당한 것으로 파악돼 통일교가 정치에 불법 개입한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종교집단이 한 정당의 당내 의사결정과 후보 선출, 공천 등의 당무 전반에 개입하는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차떼기 사건의 정치자금 스캔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헌정사상 최악의 정교 커넥션’이라 규정하며 명백한 정당 해산 사유, 그리고 더 나아가 대선 결과 무효소송의 핵심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공직선거법 264조는 당선인이 해당 선거에서 정치자금법상 범죄를 저질러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그 당선의 효력은 무효가 된다고 명시합니다. 대법원 판례(2004수54, 2020수30 등)에 따르면 선거무효의 사유란 “선거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 사실이 있고 그로 인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때”로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되고 규정 위반이 없었으면 당락이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전체 재선거(대선 무효)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선 무효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선거 결과가 외부의 부당한 개입이나 불법적 자금을 통해 왜곡되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통일교가 대선 자금을 제공했다거나 후보 선출 및 공천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입증되면 대선 무효소송의 핵심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법원은 자금의 규모나 선거 결과에 미친 실질적인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자금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거나 공천에 개입한 정도가 미미하다면 법원은 대선 무효를 선언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통일교 ‘정교유착 사건’이 국민의힘 정당해산과 대선 무효소송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하지만 ‘야당 붕괴’라는 초유의 정치적 사변에 따른 후폭풍과 ‘법적 입증력’이라는 두 벽을 모두 넘어야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김건희특검의 수사가 어느 수준까지 깊숙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그리고 민주당이 ‘야당 탄압’이라는 보수층의 극렬한 저항을 얼마나 지혜롭게 뚫어내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정치자금 스캔들로 끝날 수도, 아니면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비화할 수도 있습니다. 한학자의 구속이 국민의힘 붕괴의 또 다른 나비효과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