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계승자 이원(李源) 황사손 심층 인터뷰

종묘·사직·환구대제 주재...문화 행사에서는 ‘황태손’ 호칭 사용
정치적 복권 아닌 ‘정신적 복원’ 택해...자주독립 의지 살리고파
대한황실문화원, K-로열 컬처·K-문화 문화 콘텐츠 잠재력 지녀
다가오는 10월 낙선재 행사, 좋은 추억될 것...아름다움 느끼길
문화재 환수·우리 문화 알리기에 책임 가져...국제적 확산 원해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황제의 증손인 이원 황사손이 본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황제의 증손인 이원 황사손이 본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결국 문화와 예술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계승이 이뤄져야 합니다.”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황제의 증손인 이원(李源) 황사손이 최근 문화재 환수와 전통 문화 복원에 앞장서며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대한제국 황실의 법통을 잇는 자손으로서 우리 민족의 뿌리인 왕실 제례와 예술 문화의 현대적 계승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이원 황사손은 특히 일제강점기와 근대 격변 속에서 흩어진 문화재의 환수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잃어버린 유산은 곧 잃어버린 정체성’이라는 신념 아래 각계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해외에 산재한 왕실 유물의 반환을 추진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단대제 등 왕실 의례 주재자로써 조선의 정통 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원 황사손은 지금도 많은 국민이 고종황제를 ‘무능한 군주’로 기억하는 현실을 가장 안타까운 일로 꼽는다. 그는 이 같은 인식이 일제 식민사관과 해방 이후 정치적 시각에서 비롯된 왜곡된 해석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패배한 제국의 황제’라는 틀 속에 갇힌 평가가 고종황제의 진정한 뜻과 시대적 고뇌를 가려버렸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고종황제는 개혁과 근대화를 추진한 지도자이자 외세의 압박 속에서도 독립의 불씨를 지키려 했던 인물이다.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역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선언이 아니라 스위스처럼 스스로 서는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황사손으로서의 이원은 고종황제가 남긴 자주정신을 오늘의 시대에 다시 살려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고종황제가 추진했던 제도 개혁과 근대화 정책은 외세의 간섭 속에서 좌절됐지만, 그 의지와 철학만큼은 여전히 황사손의 역할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정치적 복권이 아닌 문화와 예술을 통한 ‘정신적 복원’을 선택했다. 문화재 환수와 문화유산의 재현, 그리고 궁중문화축전 같은 문화사업은 모두 고종황제의 이상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렇게 이원 황사손은 현재까지도 고종황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홀로 싸우고 있다. 그는 고종황제가 품었던 자주독립의 의지를 복원하고 그 정신을 오늘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형태로 전하는 일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새 관점을 구축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의 후손으로서, 우리 문화와 역사의 바른 뜻을 되찾으려는 이원 황사손의 신념을 경청해 봤다. 다음은 이원 황사손과의 일문일답.

지난 9월 27일 이원 황사손이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지난 9월 27일 이원 황사손이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Q. 황사손님 본인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계승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황사손(皇嗣孫) 또는 황태손(皇太孫)이라는 호칭을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에서는 총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우선 황실의 족보인 대한제국선원계보기략(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발행)을 보면 대한제국은 초대 고종 태황제를 잇는다는 뜻으로 사(嗣) 순종효황제, 사 의민황태자, 사 회은황세손 구, 사 황사손 원(源)으로 표기하고 있다.

의민황태자님은 영친왕 이은(고종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 회은황세손은 이구(이은의 아들), 그리고 저는 황사손 이원이다.

저는 이강(李堈) 의친왕의 아들이신 이갑(李鉀)님의 아들이다. 2005년 회은황세손께서 직계 후손 없이 돌아가신 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결정에 따라 양자로 입적돼 황사손이 됐다. 이후 낙선재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는 삭망제(朔望祭)로 삼년상을 지냈다.

또한 황사손으로서 전통 예를 이어받아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 등의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모든 제향(祭享)을 주재하면서 그 정신을 잇고 있다. 문화 행사에서는 황제의 적장자의 뒤를 잇는 손자라는 의미로 황태손이라는 호칭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Q. 이구 황세손께서 서거하셨을 당시 대를 이을 분으로 황사손에 입적되셔서 벌써 20년 가까이 제주(祭主)로 살아오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결정을 내리셨고, 지금은 후회는 없으신지요.

당시의 결정은 역사와 가문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버님이신 이구 황세손께서 갑작스럽게 서거하신 뒤 대한제국 황실의 법통과 전통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그때 여러 어르신들과 종친 어른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제가 황사손으로 입적하게 됐다. 

사실 많은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아닌, 한 황통의 명맥과 전통의 상징성을 짊어진다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고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더 큰 후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그로부터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선택 덕분에 저 자신도 역사와 전통, 한국 문화의 깊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낙선재에서 황실의 정신을 이어가며 시민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때 내린 결단의 의미를 증명해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Q. 황사손님께서는 계승하고 있는 제향(祭享)의 전통은 어떤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시나요.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은 단순한 전통 의례가 아니라 국가와 백성, 자연과 조상에 대한 예를 표현하는 우리 고유의 문화다. 황실의 법통을 잇는 사람으로서 이 전통을 후세에 정확히 전하고, 이를 통해 공경과 조화의 정신을 되새기게 하고자 한다. 전통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계승될 때 새로운 의미를 갖는 현재의 자산이라 믿는다.

지난 9월 27일 이원 황사손이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지난 9월 27일 이원 황사손이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Q. 대한황실문화원은 황사손님이 2017년부터 몸담고 계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대한황실문화원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성 회복과 정신의 계승 보존을 위해 설립된 단체로, 황실 문화(K-로열 컬처)를 포함한 한국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다.

Q. 대한황실문화원이 궁중문화축전에 적극적, 주도적으로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근현대사는 조선에서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에 수립되면서 역사의 장을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공화국이 수립됐으므로 왕조(제국)는 현실적인 정치 제도는 될 수 없었다.

다만 왕조와 제국은 우리의 역사이며 우리는 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대한황실문화원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정신적인 유산을 계승하고 현재에 맞게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K-로열 컬처(K-royal culture)는 K-문화(K-culture)의 핵심적인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무궁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현대적인 메트로폴리스에 잘 보존된 궁궐과 종묘, 그리고 서울 시내와 근교에 있는 왕릉에 감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 전경.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br>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 전경.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Q. 오는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창덕궁 낙선재에서 2025 가을 궁중문화축전 행사인 ‘낙선재 100년의 시간과 풍경’이 열린다. 이번 행사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면.

서울시내에는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들이 있지만, 창덕궁 낙선재는 1989년 4월30일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께서 서거하실 때까지 황실 가족들이 실제로 거주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곳이다.

낙선재는 ‘낙선재 권역’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석복헌과 수강재가 바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황실 세 여인인 순정효황후(순종의 둘째 부인), 의민황태자비, 덕혜옹주가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석복헌, 낙선재, 수강재에서 살았다. 1966년 순정효황후께서 서거하신 뒤로도 의민황태자비님과 덕혜옹주님이 1989년까지 거주했다.

이번 행사의 공간별로 소(小)주제를 낙선재는 의민황태자비의 ‘따뜻한 사랑’, 석복헌은 순정효황후의 ‘의연한 품격’, 수강재는 덕혜옹주의 ‘다정한 마음’으로 잡았다. 각 소주제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유물과 회화와 전통 회화와 현대 회화 작품, 존영(초상화), 조각, 사진 등 전시도 이뤄진다.

Q. 이원 황사손님께는 낙선재가 아주 특별한 장소일 듯합니다.

어릴 때였던 1970년대에 부모님 손을 잡고 낙선재에 종종 와서 의민황태자비께 인사를 드리곤 했다. 덕혜옹주님은 편찮으셔서 직접 뵙지는 못해도 문안 인사만 전해 올리곤 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낙선재에 와서 회은 황세손(李玖)님의 삼년상을 지냈다. 때문에 낙선재는 효의 정신과 전통의 깊이, 그리고 시대를 담은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황실 후손으로서의 책무와 정체성을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Q.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이번 축전의 주제는 황실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황실의 역사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은 역사 속에 자리했지만 그 정신과 품위는 여전히 전통 의례와 공간을 통해 흐르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맥을 오늘의 사회에서 다시 조명하고 계승하는 일은 과거에 대한 예우이자, 미래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제11회 궁중문화축전 ‘낙선재 100년의 시간과 풍경’ 포스터. [이미지제공=대한황실문화원]<br>
제11회 궁중문화축전 ‘낙선재 100년의 시간과 풍경’ 포스터. [이미지제공=대한황실문화원]

Q. ‘낙선재 100년의 시간과 풍경’에 오시는 관람객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역사는 책이나 자료로 배울 수 있지만, 역사적 인물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공간에서 풍경과 표정을 느끼고 체험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낙선재에 살았던 사람들, 특히 황실 세 여인(순정효황후, 의민황태자비, 덕혜옹주)의 삶과 경험을 생각해 보시고 낙선재의 아름다움도 느껴보시기를 권한다. 그동안 보고 경험하신 적이 있는 분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낙선재가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낙선재에서 보내시는 시간이 길지는 않더라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Q. 황사손으로서 향후 계획 및 비전은 무엇인가요.

황사손으로서 앞으로 꼭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시기에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유산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국민과 세계인에게 알리는 일이다.

처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의 오구라 콜렉션이었다. 그 안에는 조선왕실과 대한제국의 유물이 700여 점 있다. 특히 고종황제께서 쓰시던 투구와 갑옷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다는 걸 알고 직접 일본을 오가며 조사하고 특별열람까지 이끌어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인해 일본에 문화재를 직접 청구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민간 차원에서 해외에 ‘대한황실 재단’을 설립해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향력 있는 나라에서 법인 자격으로 환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해 볼 계획이다. 예를 들면 해외 자산운용사나 기업과 협력해 자금을 마련하고 되찾은 유물을 공동 전시 및 연구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도쿄 아카사카에 위치한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영친왕 저택) 환수도 추진 중이다. 이 건물은 일본 세이부그룹이 관리하다가 최근 미국 블랙스톤 자산운용사에 매각됐다. 황사손으로서 이 공간을 양국이 과거를 마주하고 화해할 수 있는 장소, 문화예술 교류의 장으로 되살리고 싶다.

낙선재에서 순정효황후와 의민황태자비, 덕혜옹주의 발자취를 느끼듯 아카사카의 클래식 하우스에서도 의민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의 희생과 사랑, 역사를 우리 국민들이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에 주재 중인 대사관 중 아직 왕국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황사손으로서 문화와 예술, 문화재 환수의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이들 나라의 대사들과도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고 해당 국가의 왕실과 협력 관계도 직접 구축하고 있다. 11년 동안 이어져 온 궁중문화축전을 우리 조선왕실의 전통 행사로서 해외 왕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국제 문화유산 축제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지난 9월&nbsp;27일 이원 황사손이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지난 9월 27일 이원 황사손이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사직대제(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황실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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