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불완전판매 중심 지표, 소비자 경험 반영 한계
디지털 전환 확산 속 ‘성과 중심’ 평가 필요성 부상
평가지표 개편 시 보험사 경쟁구도 변화 가능성↑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소비자 보호가 금융산업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지만, 이를 평가하는 제도는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험사별 소비자평가지표가 민원·해지·불완전판매비율 등 사후적 결과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어, 실제 소비자가 겪는 상담·지급·디지털 서비스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표 수는 늘었지만 비교와 활용이 어려운 구조가 고착되면서, 지표의 존재 목적 자체가 흐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소비자보호 평가지표 개선과제’ 보고서는 현행 보험 소비자평가지표가 구조적으로 소비자 경험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자인 김동겸 연구위원은 “지표가 많아 보이지만 핵심은 사라져 있다”며, 소비자가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서비스 품질은 평가 항목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사마다 산출 기준이 달라 비교력이 떨어지고, 개념 정의가 모호해 지표가 소비자의 선택을 돕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결과 중심 지표의 한계…실제 서비스 품질은 ‘사각지대’
현행 소비자평가지표의 가장 큰 문제는 평가 행위와 소비자 경험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원·해지율·불완전판매비율은 각각 의미 있는 지표지만, 모두 특정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결과일 뿐, 계약 유지 과정에서 소비자가 경험하는 실제 서비스 품질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불완전판매비율은 도입 초기에는 유의미한 변별력을 가졌지만, 현재는 보험사 간 수치 격차가 사실상 미미해 비교력 자체가 약해졌다. 게다가 해지된 계약만 반영해 실제 피해 규모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이런 구조는 지표의 목적성을 흐릴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과도한 정보를 제공해 오히려 혼란을 키운다는 점에서 문제로 꼽힌다.
김 연구위원은 “지표의 양보다 소비자 판단을 돕는 ‘핵심 신호’가 중요하다”며 “현재의 구조는 정보는 많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필요한 판단 기준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현행 지표만으로는 보험사가 어느 정도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소비자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 가속되는데…평가지표는 ‘정체’
보험산업은 최근 몇 년간 비대면 청구, 앱 기반 계약관리, AI 상담 등 디지털 기반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며 소비자와의 접점이 크게 달라졌다. 이처럼 서비스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지만 소비자평가지표는 여전히 과거 민원 중심 틀에 머물러 변화한 시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괴리가 커질수록 지표는 소비자 보호 장치로서 실효성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표 체계를 핵심 경험 중심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했다. 지표를 무작정 늘릴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신속성, 지급 절차의 투명성과 안정성, 상담 과정에서의 이해도 향상 등 성과(Outcome) 중심 지표를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앱 이용 편의성, 비대면 청구 성공률, 챗봇·AI 상담의 정확도 등 디지털 기반 서비스 품질 역시 평가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지표 제공 방식의 단순화·시각화도 필수적이다. 회사마다 기준이 달라 비교가 어려운 상태에서는 평가지표의 기능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표 정의를 통일하고 소비자가 한눈에 차이를 파악할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지표 조정에 그치지 않고 보험사 경쟁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흐름으로 보고 있다. 특히 소비자 경험 전 과정을 평가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지면, 보험사는 민원 관리 중심의 기존 전략에서 벗어나 내부통제 강화, 프로세스 개선, 디지털 서비스 고도화 등 보다 폭넓은 영역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정량·정성 지표가 통합돼 소비자가 실제로 겪는 전 과정이 평가되기 시작하면, 평가지표가 사실상 서비스 품질 경쟁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며 “지표가 향후 감독·경영평가와 연계될 경우 경영진의 우선순위도 단기 지표 관리에서 소비자 경험 전반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불완전판매나 민원에 치중된 기존 평가 기준이 바뀐다면 업계 전체의 전략과 조직문화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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