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지금 국무총리실 홈페이지(http://www.pmo.go.kr/)에 들어가면 팝업창이 하나 뜬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발언 동영상에 대해 일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편집으로, 마치 후보자가 우리 민족성을 폄훼하고 일제식민지와 남북분단을 정당화했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라는 문단으로 글이 시작된다. “따라서, 후보자의 강연 전문과 동영상 등을 게재하오니, 국민들께서 직접 판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글을 마치고 <온누리교회 수요여성예배>와 <마리아 행전 특강>, <크리스천 리더십 스쿨>, <동영상 전문>을 링크해놓았다.
국민들께서 직접 판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도대체 국민들이 무엇을 판단하라는 것인가? 바로 문창극 총리 후보자기 “우리 민족성을 폄훼”했다고 하는 주장이나 “일제식민지와 남북분단을 정당화”했다는 평가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일단 도대체 무슨 맥락에서 나온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는 일단 직업상 언론인이지만, 종교상 개신교인이다. 그는 교회의 ‘장로’, 즉 평신도 지도자이다. 한데 자신이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온누리교회에서 2011년에 특강을 맡게 되었다. 이를 수락하고 강연하는 중에 일제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한데 문제의 발언이 6월 11일에 KBS1의 9시 뉴스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6월 12일 현재 그는 문제의 “발언에 대해 사과할 계획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과는 무슨 사과할게 있나”라고 답변하였다. 문제는 이게 우발적 발언이 아니라 지속적 신념으로 보게 만들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에 있다. 가령 2012년에는 <크리스천 리더십 스쿨>에서 기독교인 최고 경영자들에게 강연하였다. 이때에 그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서 경제를 개발할 수 있었다”면서 “일본의 지정학은 하느님께서 축복의 지정학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이에 노회찬은 “일본의 아베 총리가 각료로 임명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라고 비판했다. 지금 청와대 측으로서는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게다. 아마 안대희 총리 후보 낙마 사태로 인해 재정적 점검에만 집중하느라 이를 간과한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알아도 문제 삼을 일로 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우리보고 직접 판단하기를 요청하겠는가. 사실 이것이 적절한 제안인 지는 잘 모르겠다. 국무총리 자질의 판단이 국민의 기본 의무인 건가?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필자도 국민 모두가 직접 보고 “직접 판단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베가 인선한 사람?
무엇보다 지금 청와대의 인선(人選) 시스템에 대해 국민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오죽하면 박근혜의 인선이 청와대판 데스노트라는 농담이 유포되고 있겠는가. 츠구미가 쓰고, 오바타가 그린 일본의 만화에 등장하는 핵심 소재인 데스노트는 누구라도 여기에 이름을 올리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사망의 시간과 방법을 조종할 수 있다). 박근혜가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지는 상황이다. 혹자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의도를 따져묻기도 한다. 문창극 후보는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를 위한 버리는 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현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아마 우리의 일반적 전망과 상당히 다른 관점 위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문창극 후보의 사관(史觀)을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에 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했다. 그의 발언 때문에 교회조차 반으로 갈라질 판이다.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교회가 반대 성명을 내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나 경이로운 것은 보수 측의 태도이다.
가령 한국기독교학술원장 이종윤 목사는 문창극 후보가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수준 높은 신앙인”이라고 옹호했다.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도 그가 “성경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강의”했다고 변호했다. 한국교회언론회(김승동 목사) 측은 문제의 강의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한 강연”이며, 이렇게 기독교적 언어를 사용한 것을 가지고 정치적 용어로 바꾸려는 시도가 견강부회라고 비판했다. 청교도영성훈련원장 전광훈 목사는 이런 상황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을 교계에 촉구했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문창극 총리 후보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일본 언론과 일본 네티즌이다. 일본 식민지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하는데, 일본 측으로서는 이에 대해 반기지 않을 리가 있겠나. 문제는 이런 발언의 당사자가 보수 인사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보수의 발언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우호적인 맥락에서 읽힌다는 것을 간과하기가 어렵다. 이는 군사 독재에 대한 우호적인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논쟁 때에도 이미 드러난 바 있으니 이에 대해 굳이 더 말할 것은 없으리라 본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의 게으름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외려 엉뚱한 점에서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이들 보수적인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입장이 정말 성경에 기초한 것일까? 정말 문 후보의 강연이 “성경적 역사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에 부합하는 것일까? 일제 강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구체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게으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하지 않나. 이것은 카트리나 참사를 동성애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김홍도 목사의 주장과 논리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취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해석도 그러하다(나라 침몰의 위기 앞에서 국민들에게 주는 각성의 기회).
한데 정작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들은 <출애굽기>를 주목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자신들이 노예로 전락하여 이집트의 압제를 받게 된 이유를 자기들의 타락이 아니라, 이집트의 탐욕에서 찾았다. 일제 강점으로 인한 역경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 기인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보수 기독교는 한 세기 전의 교회만도 못한 셈이다. 그들의 하나님은 과거 일본 제국과 함께 하셨고, 현재 청와대와 기득권층에만 머무시는 것 같다. 수구적인 교회가 동일시하는 대상은 힘을 가진 세력인 듯하다.
복거일이 문창극을 옹호하면서 함석헌을 언급했다. 그가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여기에서 민중의 시각을 견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그는 생애 내내 고난 받는 자들과 더불어 고난을 받았다. 문창극은 외려 박정희기념재단의 이사를 지낸 인물이다. 그의 시각에 대해서는 국무총리실의 제안과 마찬가지로 독자분들이 직접 강연 동영상을 들어보고 직접 판단하시길 바란다. 더불어 동영상에서 발견되는 교인들의 반응도 함께 살펴보실 것을 권한다. 여러분의 판단을 들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