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사자가 응시 거부…추가기회 필요성 떨어져”
“시험 전 문제 공개돼 국시 당락에 영향 없어” 주장도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의대생들이 의사면허를 따기 위한 국가고시(이하 국시) 응시를 집단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먼저 시험을 본 응시생들이 문제를 공유한다는 이른바 ‘선발대’ 문제가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의대생들은 의대정원 확대 등 의료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진료거부에 맞춰 국시 응시 취소 등 집단행동을 벌인 바 있다.
지난 8일 의사 국시 실기시험이 시작됐으나 첫 날 응시자는 6명에 불과했다. 전체 응시율은 14%에 그쳤다.
의대생들은 지난달 4일부터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수업과 실습을 거부해왔다. 그리고 같은 달 14일부터는 국시 응시를 거부하고 동맹휴학을 시작했다.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자 정부는 지난 1일 시작 예정이었던 국시 일정을 1주일 연기하고 국시 응시 접수 마감일을 4일로 연장했다. 이후 의료정책을 두고 여당-대한의사협회,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합의문 서명이 이뤄진 4일 정부는 국시 응시 접수 마감일을 6일로 한 차례 더 연기했다.
그러나 재접수 마감일인 6일에도 의대생들은 국시 거부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가운데 8일 국시 실기시험이 시작됐고, 정부는 국시 추가 시험은 없다고 발표했다.
결국 의대생들은 지난 13일 국시 거부 입장을 잠정 유보하고 14일 동맹휴학 중단을 선언했다. 의대생들 모임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14일 성명문을 통해 “이날 오전 보건의료정책 상설감시기구의 발족으로 협회의 목표를 달성했기에 모든 단체행동을 공식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의대협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함께 마련한 보건의료정책 상설감시기구는 △정부 합의안 성실 이행 확인 △보건의료정책 현장 목소리 반영 확인 △보건의료정책의 정치 논리에 따른 수립·이행 감시 △지역의료 불균형 및 필수·기피 과목 등 의료문제 해결 △의료 정상화를 위한 능동적 정책 제안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동맹휴학에 나섰던 예과 1학년생부터 본과 3학년생들은 휴학을 철회하고 학교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시를 치러야 하는 본과 4학년에게 재응시 기회가 주어질지는 미지수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당사자들이 자유의지로 시험을 거부한 상황에서 추가시험을 검토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손 대변인은 “추가 기회 부여는 국시를 준비하고 치르는 다른 이들에 대한 형평성과 공정성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국민의 동의와 양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정부로서도 국가시험의 추가기회 부여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선발대 전수조사·처벌’ 국민청원도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는 여론의 지지를 받는데 실패했다. 여기에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기된 이른바 ‘선발대’ 논란은 국시 추가기회 부여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한 이유를 폭로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실기시험은 그룹으로 보게 돼 있는데, 이미 선두그룹이 시험 볼 날짜가 지났다”며 “‘선두그룹’은 수석, 차석 보내서 다음 응시 그룹에 기출문제를 복원해주는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선두그룹이 선발대가 돼 시험에 나온 문제를 다음 응시자들에게 알려줘 시험을 쉽게 치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1차 응시자들의 시험은 지난 1일부터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로 1일부터 18일 사이 시험을 치러야 했던 응시자들의 시험 일정이 11월로 조정됐다.
해당 글 작성자에 따르면 시험을 가장 먼저 치러야 하는 선발대는 가장 마지막에 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선발대의 실체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게시된 “의대생 국가고시 선발대의 실체를 조사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자는 ”시험을 먼저 보고 시험 문제를 복기해 일종의 부정행위(컨닝)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의 시험 순서가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져 울며 겨자 먹기로 시험에서 떨어질까 봐 국시를 치르지 못한다는 내부 폭로를 듣게 됐다“며 ”공공의대는 공정성이 훼손된다고 줄기차게 반대한 의대생들이 정작 자신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국시는 부정행위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는 폭로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선발대 존재 여부와 선발대를 통한 부정행위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전수조사 △선발대의 실체가 확인될 경우 관련 의대생 및 의사가 된 이들에 대한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대학교 커뮤니티, 다수의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국시에 먼저 응시해 다음 응시자들에게 기출 문제 등을 공유하는 선발대는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계 전문매체 ‘데일리메디’의 지난 9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소재 한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재학생은 “선발대가 시험에 출제된 항목을 공유하고 다음 응시생은 소거법을 통해 시험을 더 쉽게 치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의대생은 “국시를 신청할 수 있는 의대생들은 이미 어느 정도의 공부량을 채운 학생들로, 국시 합격은 보장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일정 변경으로 새롭게 선발대가 된 학생들이 실기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시험을 보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선발대의 기출문제 공유가 다음 응시생들의 응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앞서 지난 7일 한 의과대학 커뮤니티에도 선발대는 존재하지만 당락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은 없다며 해명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글쓴이는 “선발대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주는 정보가 시험의 당락을 결정지을 족보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발대가 바뀐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출문제를) 알려줘서 문제가 생기는 시험이면 (국시원이) 무리를 해서라도 같은 날 시험을 치르게 했을 것”이라고 반론했다.
‘선발대’ 부정행위 해당 가능성
이와 관련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지난 8일 YTN <변상욱의 뉴스가 있는 저녁>과의 인터뷰에서 “실기시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논란”이라고 일축했다.
김 교수는 “정맥주사를 놓거나 기도 삽관을 하거나 의학적인 술기를 테스트하는 시험과 환자를 문진하고 진찰하고 진단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는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험이 있다”며 “두 가지 시험 모두 어떤 술기를 볼 것인지, 어떤 증상을 가진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볼 것인지 이미 다 공개가 돼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 홈페이지에 이미 약 86개의 문항이 공개돼 있고, 그 가운데서 12개 정도의 문항을 무작위로 선정해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먼저 시험을 본 학생들이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시험장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려주는 것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험문제 유출은 부정행위로 간주돼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국시원의 ‘의사실기 응시자 동영상’에 따르면 ‘시험 전, 후 또는 시험기간 중에 시험문제, 시험문제에 관한 일부내용, 답안 등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알고 시험을 치른 행위’는 부정행위에 해당한다. 때문에 국시 선발대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 처벌대상이 될 여지도 있다.
여론은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와 선발대 논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본과 4학년들의 재응시와 향후 국시 시험방식 등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