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팀 내 가혹행위를 호소하다 숨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故) 최숙현 선수가 숨지기 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제기된 진정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경주시청과 경주시체육회 등이 피해를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3일 경주시장과 경주시체육회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게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가 운동부 창단 시부터 이미 팀 관리감독과 선수보호에 필요한 제도·절차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팀 운영 전반을 감독 개인에게만 맡겨왔으며, 도(道), 도체육회, 문체부까지 오랜기간 자치단체가 전국체전, 도민체전 등의 성적만을 우선해온 것을 조장하거나 유지해준 관행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경주시는 ‘지방 체육 및 직장 체육의 활성화’라는 직장운동부의 본래 취지보다 타 지자체와의 경쟁적 성과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전국체육대회와 도민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10개월짜리 단기계약을 맺은 선수들을 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는 전국체육대회와 도민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한 예산 지원 및 선수 계약을 제외하고 직장운동부의 훈련, 선수 처우 실태, 적절한 예산 사용 여부 등에 대해 적절히 감독하지 않았다. 또 감독의 의사결정에 크게 의존하는 등 직장운동부가 감독과 일부 선수들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방치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의 방치로 인해 감독이 지원금을 부당하게 수령하고, 허가하지 않은 물리치료사가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성적이 우수한 일부 선수를 위해 타 선수들이 희생하고, 감독·물리치료사·선배 선수 등 구성원이 선수들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적발하거나 구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마련된 ‘경주시청 직장운동부 설치 및 운영관리 내규’는 경주시나 경주시체육회가 직장운동부를 관리·감독하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는 관련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예산과 관련해서도 편성·정산 등을 직장운동부 각 팀에서 제출하는 내역과 서류에만 의존했다. 재계약과 연봉 등급 평가 대부분도 각 팀의 감독에게 의존하는 등 관행적으로 직장운동부를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인권위는 경주시장에게 ▲구체적인 내규 시행방안 마련 ▲직장운동부 운영 점검을 위한 전담 인력 확보 ▲직장운동부 지도자와 선수의 신분상 처우 안정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경주시체육회장에게는 ▲경주시와 협의해 각 직장운동부 재정·인사·훈련·상황 등 점검 ▲지도자 평가에 점검결과 반영 등을 권고했다. 문화체육부 장관에게는 ▲지자체 직장운동부 운영이 성과나 경쟁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구체적 방안 마련 ▲시·도 합동평가를 통한 이행 점검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성적 중심으로만 전문체육을 육성하는 관행은 오랜 기간 계속돼 온 것이고, 관행의 전환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유사한 피해와 권리침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와 지자체의 직장운동부에 대한 인식 변화를 견인하는 권고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감독과 가해선수 2명, 물리치료사에 대해서는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점, 대한철인3종협회의 징계가 이뤄진 점, 대한철인3종협회와 경북체육회의 조치 미흡에 대해 문체부가 관계자 처벌과 책임을 요구하는 처분이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봤다.
인권위는 “최근 경주시가 트라이애슬론 팀 여자 선수들에 대한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고 여자 트라이애슬론 팀을 사실상 해체한 것과 검·경 등의 조사에서 피해사실을 진술한 선수들이 다른 지자체 팀에서 계약해지 되는 등 운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이번 사건과 연계된 추가적인 피해가 계속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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