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벌이는 대선 경선 후보들의 비방전이 점입가경이다. 특히 국민의힘 유력주자인 윤석열과 홍준표 두 후보의 ‘자질’ 문제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보다 못한 보수 일간지마저 두 후보에 대한 경고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야당 대선 주자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해 “(두 후보의 자질이) 뛰어나서 이런 지지율을 받는 게 아니다”며 자중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6일자 사설을 통해서다.
얼마나 심각하면 국민의힘에 우호적인 ‘일등신문’ 보수지조차 경고에 나선 걸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4일 부산에서 가진 당 행사에서 “민주당 정권이 우리 당 경선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준석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난 6월 이후 신규 가입한 당원 26만여 명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새로 유입된 당원 중 절반가량(43%)인 11만여 명은 20~40대다. 이들은 30대 당 대표인 ‘이준석 바람’ 때문에 가입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전 총장의 ‘위장 당원’ 발언은 신규 유입된 젊은 당원들의 관심이 강력한 당내 경쟁자인 홍준표 후보에게 쏠리는 것을 차단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새로 당원이 된 사람들을 향해 감사 인사가 아닌 ‘위장 당원’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공격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분별력을 드러내는 것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방증이다.
더구나 윤 전 총장은 그런 비난을 하면서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또 윤 전 총장은 최근 TV 토론에서 손바닥에 쓰여진 ‘왕(王)’ 자가 화면에 잡히며 논란을 빚었다. 윤 전 총장 측은 “지지자가 그려줬는데 미처 못 지웠다. 이전 토론회에선 없었다”고 했지만, 3·4차 토론에서도 ‘왕’ 자를 적고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거짓 해명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을 더 키우는 꼴이 됐다.
윤 전 총장 측 인사는 ‘손가락 위주로 씻어서 안 지워졌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임금 왕(王)자 여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5일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KBS토론에서 윤 전 총장 관련 역술인과 관상가 등의 이름이 언급되며 주술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추격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역술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윤 후보와 부인, 장모님까지 역술인이나 무속인을 자주 만나는 것 아니냐”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3일 부산지역 당원 간담회에서 함께 경쟁하고 있는 하태경 의원을 겨냥해 “(경선 투표로) 4강에서 떨어뜨려 달라”고 했다. 또 “저 X은 당 쪼개고 나가서 해체하라고 X랄하던 놈”이라며 “줘 패버릴 수도 없고”라고까지 했다. 홍 의원은 국민의힘 첫 TV 토론에서도 하 의원으로부터 ‘조국 수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과잉 수사, 잔인한 수사”라고 답해 조국 전 장관 편을 든다는 비판도 받았었다. 이에 하 의원은 홍 의원을 향해 "막말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다”며 날을 세웠다.
홍 의원의 이 같은 발언 역시 국가를 운영해보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대통령 후보로서 할 말은 아니다. 자신의 비판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것처럼 비치는 이러한 행태는 ‘대통령 자격’을 의심케 하는 불필요한 오해만 살 뿐이다. 국정 운영도 자칫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홍 의원의 ‘막말’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별다른 감정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대통령 후보들의 자질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국민 걱정이 크다. 청와대에 들어 앉아 주술을 동원하거나, 정책을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정권교체 여론이 아무리 높다 해도 현명한 유권자들은 이런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특히 국민의힘은 ‘국정농단’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이다. ‘탄핵사태’로 나라를 파탄지경에 빠뜨렸던 게 불과 5년 전이다. 그런 사태가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당 후보들 역시 대형 의혹과 막말 등의 비방전으로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번 대선이 어느 때보다 최악의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투표는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고르는 일’이란 말이 있다. 이는 최선의 인물을 찾을 수 없다는 ‘정치 불신’ 의식이 유권자들의 심리 기저에 깔려있음을 의미한다. 좋든 싫든 내년 3월 9일 우리는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 600조 원의 나라 살림을 5년 동안 책임 질 차악으로 누가 적합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