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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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로 문제가 드러난 사모펀드 발행사와 판매사들에 대한 조치가 가닥을 잡고 있다. 금융당국의 제재가 지난해에 이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제재 수위가 아쉽다.

지난 11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해외 매출채권을 기초상품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공모 규제를 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쪼개기 발행이 있었다고 판단, 발행사인 NH투자증권과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에 대해 각각 6억691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사모펀드는 지난 2017년 7월부터 2019년 9월 중 총 680명의 투자자로부터 약 2621억원이 모집됐다. 당초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두 회사에 대해 각각 40억1550만원을 부과하고 기관과 실질적 행위자에 대해 수사기관 통보 조치를 원안으로 삼았으나, 금융위는 3차 정례회의 수정의결에서 6억원대로 과징금을 대폭 하향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통보 조치를 제외시켰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에서는 해당 의결에 대해 증권사들의 쪼개기 행위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금융위에서 고의성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증선위 의사록을 살펴보면 증권사 임직원들의 진술을 두고 고민한 흔적이 있다. 

해당 DLS의 경우 동일한 Class를 기초자산으로 한 경우라도 각 회차별로 투자 시점과 기초자산·손익·투자위험이 달라져 상품의 동일성에 대한 해석에 따라 쪼개기 판매의 고의성 여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령에 따르면 증권의 기초자산이 별도로 있는 경우 기초자산, 투자위험 및 손익구조 등이 상이하다면 자금조달 계획이 동일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같은 증권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당시 펀드를 발행 판매했던 증권사 직원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문제가 된 해당 펀드의 기초자산 구성이 수시로 바뀌고 운용 또한 블라인드라는 점을 미루어 보면 시리즈로 다수의 회차로 발행 시 자산 변동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고의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금융위는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기관과 임직원에 대한 수사기관 통보를 조치하지 않기로 했는데 투자자 피해 범위 해석에 쉽게 공감되지 않는다. 당시 모집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이뤄졌고 환매 중단이 2020년 7월에 발생했다. 2021년 7월에 재연장되고 피해 고객들의 원성이 커지자 투자 원금의 40%를 가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은 추후 금감원의 분쟁조정 시 가지급으로 인한 감경을 대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해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지급이란 분쟁조정 결과에 따라 다시 토해내야 할 수도 있는 성격의 돈이다. 여러모로 증권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카드인 것이다.

또한 원금 100%를 보장받았다고 쳐도 최소 3년 이상 돈이 묶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의 피해를 과연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참고로 환매 중단으로 돈이 묶였을 당시는 부동산·주식·코인 등 모든 자산이 폭등하는 초인플레이션이 진행됐던 시기다. 

특히 사모펀드 쪼개기 판매는 방만한 업계의 ‘성과지상주의’로 금융 선진국들의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예로 지난 2012년 JP모건 채권펀드에서 공모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사모펀드를 85개의 작은 펀드로 쪼갠 사례가 있었다. 이에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JP모건에게 2000만달러(약 26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실제로 고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행태만으로 거액의 과징금 처분을 받는 사례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모펀드 기업 중 하나인 블랙스톤그룹(Blackstone Group)은 사모펀드 부문이 투자자들에게 편법적인 방식으로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이유로 2021년 SEC로부터 1억5000만달러(약 200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사모펀드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투자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편법과 위법의 경계에 놓인 상황을 자주 마주하기도 하고 엄청난 수익률과 인센티브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른바 ‘감옥행을 감수하고 한탕 크게 벌자’는 생각이 뿌리뽑히지 않는 이면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횡령·주가조작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자 금융의 핵심은 ‘신뢰’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금융사들 불법행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수위에 여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지난 사모펀드 사태 관련 취재 경험을 미루어보면 기나긴 분쟁조정 끝에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한패라고 믿는 피해자가 대다수다. 

신뢰는 말로 쌓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행동의 일관성으로부터 천천히 쌓이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결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함무라비 법전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명확한 권선징악에 목마른 사람들의 표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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