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지난해 3월, 성능개선 공사를 1년 전에 마친 서울 성산대교 남단에서 콘크리트 곳곳에 균열이 발견된 적이 있다. 서울시는 균열 발견이 알려진 뒤부터 줄곧 “안전성에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해 8월에는 전문가 합동조사 결과에서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성산대교 남·북단 성능개선공사의 진상은 지난해 12월 서울시 감사위원회 조사결과가 공개되며 드러났다. 하도급업체의 조잡한 시공, 부적합한 철근 배근, 납품자재에 대한 각종 품질시험 미실시, 보고서 허위 작성 등 온갖 문제가 그때에야 공개됐다. 심지어 시공사들은 균열을 발견했는데도 이를 보고하지 않은 채 임의로 보수했다.
취재과정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안전성에 문제 없다”고 강변하며 “무너지지 않는다.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말하는 ‘안전성’이란 ‘붕괴만 안 되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을 포장하는 수식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 감사위는 서울시가 안전성의 근거로 제시한 전문가 합동조사에 대해 “조사 위치가 북단 일부 시공구간에 국한됐고 조사도 약 1개월간 실시돼 균열의 진행성 여부 등 구조안전성에 대해선 시공된 전체 PC바닥판을 대상으로 지속 관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하도급자가 철근을 부적합하게 배근해 PC바닥판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고도 명시했다. 서울시가 강변한 안전성은 감사 결과 보고서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성산대교 성능개선공사를 한꺼풀 더 벗겨보면 부실공사에서 빠지지 않는 재하도급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PC바닥판 제작을 하도급 받은 A사는 철근·콘크리트 공사업 면허도 없는 업체에 재하도급을 시행했다. 남단공사에서는 정작 PC바닥판을 A사도 재하도급 업체도 아닌 타 업체가 제작했다.
그런 사례가 어찌 성산대교만일까. 이제 공사를 마친 신축아파트들의 사전점검에서는 하자가 수두룩하게 나와 입주민과 시공사간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러나 하자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하자가 없을 수 없다’는 식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난 1월 충북 충주시의 한 신축아파트에는 하자사항을 붙여놓은 벽에 ‘그냥 사세요’라는 글이 적혀져 있는 것이 발견돼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판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적어도 안전 측면에서는 자정기능을 상실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은 1.5일에 1명, 그러니까 사흘에 2명 수준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건설업은 올해 1분기 동안 65명(63건)이 사망했다. 지난해에는 건설업에서만 341명(328건)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상 휴일을 제외하면 하루에 1명이 숨졌다.
목숨까지 걸고 위험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보니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평균연령이 53세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더 이상 건설현장에 인력이 유입되지 않자 외국인노동자들이 그 빈자리를 메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숙련도도 낮고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는데다 대부분 불법체류 상태지만 임금이 더 낮으니까 고용한다. 비숙련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현장은 더 위태롭게 운영되고 안전과 품질이 도외시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본보는 신년을 맞아 지난 1월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를 인터뷰한 바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건설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는 시기였다. 호경기때도 뒷전이었던 안전이 더욱 건설현장에서 방치될 우려가 높았다.
최 교수는 “건설현장은 총제적인 부실을 안고 있다. 사고만 안 터지면 넘어가고 사고가 발생하면 땜빵하고 넘어간다”고 진단했다. 어느 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발주부터 설계, 시공, 그리고 감리까지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심규범 전문위원 역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시공 자체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라며 “저가 수주와 다단계하도급 구조에서 안전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고 짚었다.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는 이 같은 분석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어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합동으로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91개 단지만 골라 조사했더니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이에 직접시공제와 적정임금제가 부실시공을 억제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건설현장에서 이들 대안을 도입해 실제 효과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실시공이 곳곳에 드러나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특단의 해법도 시급한 실정이다.
철근 누락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공사현장의 모든 시공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자고 제안했다. 그 다음날부터 건설사들이 앞다퉈 오 시장의 제안대로 모든 시공 과정을 촬영하는데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는 도급순위 상위 30개 건설사에 영상기록 동참을 요청했으며 30개 건설사 모두 동참 의사를 전했다고 공개했다. 7월 25일에는 설명회를 열고 동영상 기록관리를 이행하는 건설사에게 비용 지원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실시공으로 지탄받는 건설업계는 엉겁결에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생겼다. 건설사들이 영상기록에 앞다퉈 동참하겠다고 나선 것부터 이는 문제 해결과 동떨어진 방식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부득불 인센티브까지 챙겨준다는 말인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벡텔’을 아느냐고 물었다. 벡텔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종합건설사다. 이 전문가는 “왜 우리나라에서 벡텔이 공사를 수주하지 못하고 있냐”라며 “카르텔을 깨고 글로벌 건설사들이 국내 건설시장에 들어와 경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윤석열정부가 깨야할 카르텔이 건설업계에 있다는 뜻이다.
부실공사 파문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지난 9일 경기도 안성시 옥산동의 한 상가 신축 공사장에서 9층 바닥면이 무너지는 붕괴사고가 터졌다. 이 사고로 노동자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정기능을 상실한 건설업계의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부실공사는 다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그 심각성이 ‘묻지마 칼부림’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없다. 정부가 ‘묻지마 범죄’에 관한 처벌 강화에 나섰듯 부실공사에 대해서도 더욱 엄중한 처벌을 묻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중대재해에 따른 처벌은 아직 본격화된 상황이 아니다. 상당수의 중대재해가 아직 ‘조사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더욱 강화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반드시 그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또, 명백한 부실공사는 신속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는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을 더이상 묵히지 말고 내년 4월 총선 전에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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