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근로일 줄고 공휴일 늘어나”
근로자 재해 손해배상액 산정 영향
한국노총 “노동자 고통 가중될 것”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일용직 노동자의 ‘월 가동일수(근무일수)’가 기존 22일에서 20일로 축소됐다. 대법원은 이를 근로기준법 개정 등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는데, 노동계를 중심으로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은 전날 근로복지공단(공단)이 삼성화재해상보험(삼성화재)을 상대로 구상금 지급을 청구한 사건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공단과 삼성화재는 지난 2014년 경남 창원의 철거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떨어져 숨지거나 다친 산업재해 사고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공단은 지난 2003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도시 일용노동자의 월 가동일수를 최대 22일로 보고 상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휴업·요양급여 등 보험료를 지급하고 삼성화재를 상대로 구상금을 요구했다.
1심과 2심, 대법원 모두 삼성화재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으나, 구체적인 배상금을 추산하는 과정에서 재해자의 일실수입을 얼마로 볼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됐다.
일실수입은 재해자가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경우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장래소득을 의미한다. 일용직 노동자는 대한건설협회의 시중노임 단가에 ‘평균 가동일수’를 곱해 월별로 산정한다. 근로자가 노동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최종연령인 ‘가동연한’ 또한 영향을 끼친다.
평균 가동일수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설정됐는데, 지난 1992년에는 월평균 25일, 2003년에는 22일로 계산돼 왔다.
1심에서는 재해자의 월 가동일수를 19일로, 2심은 22일로 판단해 각각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이날 대법원은 21년만에 판례를 뒤집고 월 가동일수를 축소했다. 대법원은 “과거 대법원이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를 22일 정도로 보는 근거가 됐던 각종 통계 내용이 많이 바뀌어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부터 1주간 근로 시간을 40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면서 현장 근로 시간과 근로자의 월 가동일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게 대법원의 분석이다.
대법원은 “대체공휴일이 신설되고 임시공휴일 지정도 가능해져 연간 공휴일 수가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는 등 근로 여건과 생활 여건의 많은 부분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근로일수는 20일을 초과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증명한 경우 20일을 초과해도 인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노동계는 “일용노동자의 실노동실태와 산업현장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단순히 형식적인 제도 도입을 근거로 월 가동일수를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대법원은 대체공휴일, 임시공휴일이 생긴 이후 일과 삶의 균형이 현실에 반영됐다고 하지만 일용노동자들은 해당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산업재해를 당한 일용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액수가 줄어들고, 월 노동일수 입증 책임까지 짊어지게 돼 육체적 고통에 이어 경제적·정신적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보여 심히 우려스럽다”면서 “대법원의 비정함에 안타까움과 유감을 표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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