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투명성에 대한 고찰의 대가, 김행숙 시인
새·유령·귀신은 소재보다 인간의 한 ‘속성’과 가까워
주 관심사는 규정하지 않은 익명적 상태의 비한정성
카프카의 텍스트… 자유롭게 헤맬 수 있는 장소로 여겨
새로움을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면서 새로워지는 것

김행숙 시인이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행숙 시인이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어떤 존재로서 불리기 위해서 가장 선행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름’이다. 통성명, 즉 이름을 앎을 기점으로 우리는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의 이름을 외치고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 유명한 시도 있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숱한 사랑시가 대중의 이목을 끌고 각광 받을 때 김행숙 시인의 애가(愛歌)는 독보적인 정체성을 고수한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감언과 절절한 목소리 대신 한없이 중얼거리며 도처를 맴도는 목소리, 누군지 알 수 없는 ‘당신’을 하염없이 찾아 헤매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유령의 메아리, 영혼의 속삭임, 새처럼 가벼운 노랫말. 혹자는 음산하다고 평할 수 있는 그 음성으로부터 독자들은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온기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김행숙 시인은 ‘이름 붙지 않은 것’, 즉 익명성이 역할과 한정이 부여되지 않는 속성이기 때문에 선호한다고 말한다. 꼭 무언가로 거듭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지명되지 않은 상태로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도록 하는 초현실적 고찰은 우리 모두가 마음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유령성’에게 다정한 위안을 건넨다. 함께임에도 항상 고독한 우리가 지금 김행숙 시집을 만나야 하는 까닭이다.

- 최근 들어서는 인터뷰를 하신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동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원래 꺼리는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동기가 따로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한때 제 목소리가 몸 안에서 자물쇠가 채워진 것처럼 꾹 잠겼던 때가 있었고요. 몸이 안 좋으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일정 기간은 인터뷰가 조금 어렵기도 했었는데, 제가 의도적으로 피하고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 2020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마지막으로 출간된 개인 시집인데,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으신지.

시는 아주 천천히, 꾸준히 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카프카의 유령 작가’라는 콘셉트로 글을 쓰고 있어요. 그게 어쩌면 시집보다 먼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최근에 나남 출판사에서 카프카 타계 100주기 기념으로 북 펀딩을 하면서 여러 작가와 글을 쓰게 됐는데, 제가 카프카를 소재로 쓴 시도 많고 그러다 보니 시를 써 줄 수 있겠냐고 청탁을 받았어요. 

다만 제가 시를 쓸 때도 특별한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어서 현재로서는 장르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2014년 <에코의 초상>의 7년 후 출간된 작품인데, 시집과 시집 사이에 6년과 7년의 간격으로 꽤 넓은 휴지기가 있었습니다. 시집을 준비하지 않으실 땐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글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는 비슷하게 살고 있습니다. 휴지기가 길어졌던 시기들은 그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좀 많이 아팠던 시절도 있었는데, 가장 최근 작품인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이전 기간이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글쓰기가 어려웠고요. 제 몸이 허락되는 한은 성실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쉬어가는 때도 필요한 것도 같아요.

김행숙 시인의 문학과지성사 시집 목록 [그래픽=투데이신문]
김행숙 시인의 문학과지성사 시집 목록 [그래픽=투데이신문]

- ‘새’나 ‘유령’처럼 무게가 없는 사물들을 소재로 삼은 시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런 사물들에 대한 시를 쓰게 만드는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는지.

새와 유령, 귀신은 사실 소재나 어떤 대상이라기보다 ‘속성’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의 유령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도 제 일부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존재가 가진 여러 속성 중에 유령성이나 새와 같이 이질적이면서 낯선 지점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 유령과 새, 영혼 같은 대상은 죽음과도 깊이 연관되는데, 죽음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사실 죽음이나 사랑 같은 말들은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라서 어떤 말을 해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아마 <에코의 초상>을 쓰던 무렵부터일 텐데, 죽음과 더불어 시간에 대한 감각 자체가 제게 굉장히 중요한 생각거리가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나이가 들면서 죽음과 시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긴 것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제가 전신 통증을 앓을 당시 온욕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동네 목욕탕을 아주 천천히 매일 다니던 때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목욕탕에 가면 젊은 사람들의 몸이 보였어요. 건강하고 예쁜 몸들이 보였는데, 그때 목욕탕에서는 노인들의 몸을 보게 되더라고요. ‘저 몸에 내가 들어가겠구나, 저게 내 미래겠구나’ 하고요.

그러니까 젊은 몸들은 이제 제 것이 아닌 제게서 멀어진 몸이었죠. 기형도 시인님의 시 중에 노인을 이야기하면서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이라는 얘기를 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이 ‘저 몸이 내 몸이다’, ‘저 몸이 내가 곧 담길 자루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음은 추상적인 게 아니라 내 몸에 쓰여 있고 이미 내 몸에 들어와 있는 것. 그런 감각으로 죽음을 대했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 공간·시간적 정보가 비교적 뚜렷한 초기 시집과 달리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와 <에코의 초상>은 평론가들이 ‘어쩌면 김행숙은 이제 사라진 것 같다’거나, ‘모호성’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할 만큼 익명적인데요.

익명성과 모호성, 뭐 이런 말들은 사실 어떻게 보면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에요. 초기부터 꾸준히 들어 왔죠. 우리가 보통 익명성을 이야기할 땐 얼굴 없는 존재, 혹은 정체성을 지운 군중의 얼굴 같은 의미로 익명성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사실 제가 관심 있는 익명성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이름을 붙이거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음으로 한정되지 않는 존재, 우리가 이름이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이름이 한정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한정을 부여하지 않은 상태의 어떤 것, 그런 의미에서의 익명적 상태에 주로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모호성과도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모호성이라는 건 이렇게 가리켜서 지시하지 않았다는 거고, 지시하지 않으면 이름도 부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니까요. 모호성과 익명성을 연결해 말하자면 이런 것 같습니다.

김행숙 시인이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nbsp; ⓒ투데이신문<br>
김행숙 시인이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 전에 쓰신 시집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 같은 게 있으시다면.

(웃음) 잘 안 읽어서 모르겠습니다. 제 시집은 잘 안 읽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시인 분들도 그러신데, 시인들은 계속해서 본인을 바꾸려는 욕망이 굉장히 강하고 어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 보려고 하는 욕망 또한 강한 사람들이라 자기 시가 다른 사람 시처럼 되는 걸 이상적인 꿈으로 여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시가 너무 제 것 같아요. 아마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의 2부 ‘바보의 말을 탐구해 보자’는 프란츠 카프카를 소재로 쓰인 시가 많습니다. 올해 들어 프란츠 카프카 작가가 타계 100주기를 맞았는데, 시인님께 ‘카프카’란 어떤 의미를 지닌 인물인지.

말을 잘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을 고르고 있는 중이에요. 카프카는 같이 생각하기 좋은 작가인 것 같아요. 카프카의 글은 위로가 되면서, 동시에 헤맬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독자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카프카를 글 쓰는 기계 같은 존재 같다고 느껴요. 카프카에게 매혹되는 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냥 쓴다’는 점이 그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요. 출판을 생각하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이게 작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쓰는 것 같지도 않고요. 글의 양도 방대하고 거기에 들이는 시간도 한정하지 않죠. 카프카는 그냥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고, 그냥 계속 쓰는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그런 글쓰기는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거죠.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고 글을 쓰지 않는 상태가 글을 쓰는 상태보다 더 힘들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인 거예요. 그러니까 보통은 글을 쓰는 고통에 대해 말하지만, 카프카는 글을 쓰지 않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이었던 거죠.

그런 존재를 생각하고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글이 잘 안 써질 때 카프카를 많이 불렀던 것 같기도 해요.

- 시에서 ‘k’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의 표제시 속에서도 소문자 k가 등장하는데, k는 작가님의 성에서 따온 철자인지, 혹은 카프카의 k일까요?

어느 날 아침 한국 노동자 김이 카프카의 침대에서 벌레가 되어 깨어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카프카의 침상에서>).  그 이야기는 카프카의 꿈인지, 김의 꿈인지 알 수 없지요. 그러니까 k는 한국 노동자 김일 수도 있겠고, 카프카일 수도 있을 거예요.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있는, 비어 있는 이름이자 붐비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시를 쓰게 만드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시가 시를 쓰게 한다’ 이런 말이 있는데요. 시를 쓰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했던 언젠가 했던 말이기도 한데, 지금은 그러지는 않지만 이제 초기나 그럴 때 저한테 많이 했던 얘기가 ‘시를 쓰면서 새로워진다’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움을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면서 새로워지는 거죠.

시를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무언갈 쓰고 싶다는 마음을 또 불러내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이어져 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시를 하나 고르신다면.

매번 다르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인간의 시간>이라는 시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순식간에 쓴 시이기도 한데, 이 시는 써놓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보통 ‘인간의 시간’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죠. 시간을 의식하는 동물 자체는 인간밖에 없기도 하고요, 인간은 현재를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에 대한 지평을 놓고 사유하는 존재니까요. 쓰고 나서도 이 시로 인해 생각하게 된 많은 것들이 또 다른 시를 불러왔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오늘은 <인간의 시간>을 골라보고 싶습니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물결처럼

 

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인간의 시간> 전문

-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사실 제가 요즘 제 책이 아닌 다른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너무나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요. 연극배우였던 주선옥은 연극연습 도중 쓰러져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였으며 극작가이기도 했는데, 늘 시를 좋아했고 시를 썼습니다. 제게는 가까운 제자였고 좋은 친구였어요. 가족분들의 도움으로 선옥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우이자 작가 친구가 원고를 모으고 있어요, 선옥을 생각하면서 선옥의 마음이 되어보려 노력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책에 근접한 모양을 만들어 1주기에 맞춰서 내려고 합니다. 

선옥에게, 그리고 선옥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혼자 외롭게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책이 되길 바라면서요. 이 책을 반갑게 맞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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