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4월에서 6월은 한국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몰려있는 기간이다. 4월 3일 제주 4.3항쟁기념일을 시작으로 4.19 민주혁명기념일,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 6월 항쟁 등 한국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항쟁한 사건들이 이 기간에 몰려있다. 또한 6월 25일은 북한의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고, 6월 6일은 순국선열을 기억하고 명복을 비는 현충일이다. 그리고 5월 16일은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고,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날이다.
4월에서 6월의 주요 사건들 가운데 기념할 만한 의미가 있는 사건들이 발생한 날들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국가 차원의 행사가 개최된다. 기념행사와 같은 의례는 사건을 재생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사건에 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그날의 의미를 기억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념일 행사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기념일에 발생한 사건이 국가 차원에서 추념 되고, 그 사건이 가진 의미가 국가 차원에서 국민에게 장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념일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어떤 사람이 행사에 참여했는지, 그리고 기념사를 하는 정부 요인이 한 말에서 드러난다.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전문에 싣는지 여부였다. 기본적으로 헌법전문에는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 목적, 헌법 제정권자, 헌법의 지도 이념이나 원리 등에 관한 규정이 있다. 나아가서 헌법전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 나아갈 방향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5.18 기념사에서 헌법전문에 싣겠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전문에 싣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 요인의 참석 여부와 기념사의 내용이 정부가 해당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4.3 추념식과 5.18 기념식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당 기념식의 기념사를 파악해야 한다. 참석 여부와 기념사 내용은 윤석열 정부의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4.3 추념식을 살펴보면, 2023년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은 “통상업무”를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념사는 600자 정도의 분량이었고, 그 내용 중 절반은 '문화관광 활성화'나 'IT콘텐츠', '디지털 기업 육성' 등 4.3과 별다른 연관이 없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에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2022년과 2023년 5.18 기념사에서도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5.18 기념사에서 광주와 호남이 AI와 첨단 기술 기반의 산업 고도화를 이뤄내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4.3 추념사에서 제주에 문화관광 활성화, IT콘텐츠, 디지털 기업 육성 등을 언급한 모습과 비슷하다. 그나마 올해는 이런 발언은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기념사에서도 심각한 내용이 등장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오월의 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워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있다”라는 발언이었다.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 민주주의 지수가 후퇴하고 있고,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 책임 중 상당수가 대통령과 현 정부, 여당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른 곳도 아닌 5.18 기념사에서 늘어놓았다.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내에 5.18 기념식에 모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고 현재까지 참석 중이지만, 실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가짐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 아픔을 가진 광주와 호남, 제주가 경제적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약속하고 이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사적 잘잘못을 제대로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범죄를 돈으로 막으려고 한다.’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진상을 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혜택만 언급한다면, 피해를 입은 지역과 지역 주민을 거지 취급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제주, 광주, 호남과 지역 주민들은 돈이 아닌 진상 규명을 바라지 않을까?
제주 4.3 사건에 대하여 여전히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좌익 군인들이 일으킨 반란이라는 평가가 난무한다. 4.3 사건 당시 공권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살육을 벌인 단체인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지금 다시 소환하는 수구 단체도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헬리콥터 기총사격 문제, 발포책임자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5.18은 북한 간첩들의 소행이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 발전을 운운하는 것은 범죄 은닉이자, 또다른 범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