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마무리 수순에도 전공의 반발 여전
상급병원 매출 악화, 연관 업계 도미노 영향
“의료 파업 장기화, 2분기 매출에 반영될 듯”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하는 등 의정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광주 동구 소재 모 대학병원 신경과 진료실이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하는 등 의정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광주 동구 소재 모 대학병원 신경과 진료실이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의정 갈등으로 의료진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수술·입원 등 병원 진료가 줄어드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승리로 끝났지만 전공의 복귀 등 남은 숙제는 여전한 상황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 24일 대학입학전형위원회 회의를 열고,  27년 만에 전국 의대 정원을 1509명 증원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의대 정원 문제가 사실상 정부의 승리로 정리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27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공의 복귀 등 남은 숙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의정 갈등 자체가 진화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 장기화가 병원은 물론 제약사와 의료기기, 임상연구(CRO) 회사 등 의료 연관 업계에까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대목이다. 이번 의료진 파업을 주시하고 있는 업계는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오는 2분기 실적부터 가시적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불안을 토로하고 있다. 

대형 병원, 수술 반토막 사태 직면 

27일 의료업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수술 및 진료 업무가 대폭 축소되는 상황이다. 국내 가장 큰 규모의 ‘빅5병원’인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의 경우 하루 수술 건수는 100건 초반대로 지난해 200여건에서 반토막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활동이 줄면서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경영 상황 악화도 뒤따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인 2월 마지막 2주부터 3월 한달 동안 500병상 이상의 수련병원 50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료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약 2조6645억에서 올해 2조2406억원으로 4238억원(15.9%) 줄었다. 이에 따라 현재 일부 병원에서는 인력 감축, 무급휴가 등의 구조조정도 이뤄지는 상황이다. 

의료 공백으로 생긴 여파는 제약사, 의료기기, 임상연구 등 연관 업계로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수액제나 마취재, 항암제 등 원내 수요가 높은 제품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액제를 취급하는 한 회사의 관계자는 “입원 환자 수가 줄다 보니까 수익 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의사 파업이 2월 중순부터 시작돼 1분기는 영향을 덜 받았으나 상황이 지속될 경우 2분기부터는 매출에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약품을 판매하는 한 회사 관계자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 제품의 경우 아직 판매에 문제는 없지만 향후 신규 처방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항암제 같은 종합병원 취급 품목은 매출이 어떻게 될지 추이를 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약, 병원 상대 영업 위축 외에도 원외의료품 조제까지 된서리 

이런 가운데 제약사의 마케팅이나 영업 활동에도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제약사의 경우 전문의 등을 대상으로 학술대회나 세미나, 대면 방문 등의 방법으로 마케팅과 영업 활동을 주로 펴고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학회 같은 경우 의사들의 외부 활동이 줄어들다 보니 확실히 위축된 분위기”라며 “병원 방문 또한 어려워지면서 영업 활동에도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수술 제품, 항암 쪽 취급하는 회사의 경우 매출 영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나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대병원 계열의 간접납부업체는 “의료 공백 장기화로 심화하고 있는 자금 압박”을 이유로 의약품, 의료기기, 소모품 등의 납품대금 지급 기일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미루기로 했다. 간접납부업체는 의료기관과 납품업체 사이에서 구매 업무 등을 대행하는 곳이다.

전공의 이탈로 원외의약품 조제량이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달 25일 한국아이큐비아가 국내 원외의약품 시장 분석을 위한 약국조제내역 조사 자료인 KNDA를 활용해 지난 2월 하순부터 시작된 전공의 이탈이 원외의약품 시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25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전체 원외의약품 시장은 전년동월 대비, 조제건수(-6.4%)와 조제금액(-3.9%) 모두에서 감소했다.

의료기기 타격, 임상시험도 일손 부족 등 관련 영역 모두 붕괴 우려

상급병원 경영 상황의 악화하면서 의료기기 등에 관한 투자심리도 얼어붙을 전망이다. 국내 대형병원 관계자는 “수술이나 진료 등 병원 업무가 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황으로 매출 또한 전보다 주는 상황이라 투자 여건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도 또한 “종합병원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향후 2~3년은 의료기기 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전공의 이탈로 교수들의 업무가 과중되는 등 임상 건수가 줄거나 환자 모집이 지연되는 등 임상시험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한국임상CRO협회 지준환 회장은 “최근 바이오 업계 투자 규모가 줄어드는 가운데 의료 파업까지 겹겹이 난관을 만나 업계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임상시험 건수는 299건, 올해 같은 기간에는 242건으로 줄었다.

관련 영역이 의정 갈등 여파로 전체적인 영향을 받고, 당장 피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투자 위축과 경쟁력 약화로 장기적인 펀더멘탈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의료 및 바이오 등 영역은 글로벌 경쟁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차세대 먹거리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민복지의 근간을 맡는다는 점에서 의정 갈등 해법이 난항을 겪는 상황은 큰 우려를 살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국 의료 바이오 영역에 퍼펙트스톰이 어느 정도 강도로 덮칠지, 이를 어떻게 비껴갈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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