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이용해 저출산 인구감소 관련 용어들을 조사해 보면 우선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한국의 언론은 초저출산 문제에 대해 경고음을 너무 늦게 울렸다. 한국에서 초저출산은 2002년 시작되었지만 보도가 활발해진 것은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진 2018년을 전후해서다.
인구학자들이 합계출산율 1.3을 기준으로 ‘저출산’과 ‘초저출산’을 굳이 구분하는 이유는 초저출산은 한번 발생하면 추세를 반등시키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체스판 쌀 한 톨이 한 칸씩 이동할 때마다 두 배가 되면 32칸을 지날 때 40억 개가 되고 63번째 칸에 이르면 재앙에 가까운 숫자가 된다는 우화로 ‘×2’의 위력을 설명했지만, 우리는 ‘÷2’의 위력에 대해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한국 언론은 스스로 현실에 이름을 붙이기보다 국외의 권위자가 명명한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언론에서 인구감소를 지칭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 ‘인구절벽’과 ‘인구소멸’이다.
‘인구절벽’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경제 평론가 해리 덴트가 쓴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출처로 한다. 이 책은 한국이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사회에 진입한다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2018 인구절벽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됐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최우선 추진 4대 복합·혁신과제 중 하나로 ‘인구절벽 해소’를 포함하면서 더욱 공식화된 용어로 언론에서 활발히 사용된 측면도 있다.
‘인구소멸’은 영국의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이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인구가 소멸할 첫 번째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면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작년 콜먼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 용어는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인구소멸 만큼 자주 사용되는 ‘지방소멸’ 역시 주요 출처는 2015년 번역 출판된 일본 관료 출신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이다.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우리가 인구감소 현실에 대해 사고하는 과정에 깊이 침투한다. 앞서 ‘저출산’이라 부를 것인가 ‘저출생’이라 부를 것인가를 두고 시민사회와 국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토론과 경합이 이루어진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지구가 직면한 환경 문제를 두고 ‘기후위기’라고 부를 것인가 ‘기후변화’라고 부를 것인가는 여전히 첨예한 토론 주제다.
‘인구절벽’과 ‘인구소멸’은 저출산 인구감소 시대를 맞는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어떤 행동을 유도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에게 지금이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시간이라면 이러한 은유를 통해 우리 사고 회로를 작동시키는 것이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되며 어떤 걸림돌이 될 것인가를 사유해 볼만하다.
2024년 한국의 출산율은 0.6명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을 정책 담당자라면 출산율 0.6의 현실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를 좀더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만약 당신이 언어가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이야기를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을 PR 전문가라면 현실에 도움을 주는 이름을 제안해 주었으면 한다. 당신이 나처럼 평범한 언론 독자라면 실제로 우리는 절벽에 서 있지 않으며 그리 급히 소멸하지 않을 테니 너무 일찍 자포자기 말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