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상담소, 피해자 자매 입장문 대독
피해자 “일부 유튜버와 사전 협의 없었다”
“2차 피해 멈춰야”…꾸준한 관심도 촉구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된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된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 입장문 일부)

경남 밀양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일부 유튜버들의 가해자 신상공개 후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피해자 동의 없이 정보가 잘못 공개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 것에 이어 성폭력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을 촉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자 자매가 보내온 서면 입장문을 발표했다. 상담소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2004년부터 피해자를 지원해 온 단체다.

자매는 입장문을 통해 “(일부 유튜버의) 영상은 피해자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이 맞다”며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피해자 자매는 “사건 이후 늘 그랬던 것처럼 ‘잠깐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랐다”며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거 같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이 같은 관심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피해자는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과 검찰에 2차 가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받게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피해자 측이 일부 유튜브 채널이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 영상을 게재하고, 다른 유튜버가 피해자의 음성을 변조하지 않은 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사건이 재조명되자 밝힌 첫 입장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은 “지난 5일 모 유튜버는 ‘피해자 가족 모두와 소통이 끝나 동의를 받았고 동의에 따라 44명을 공개하겠다’고 공지했으며, 많은 언론이 이를 받아 보도했다”며 “그러나 피해자와 가족들 모두 동의한 바 없고, 이후 직접 유튜버에게 삭제를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확보하고, 확산하고, 피해자가 동의할 수 없는 내용과 방식으로 재현하는 문제는 지난 2004년 방송사와 경찰의 문제에서 올해 유튜버의 문제로 바뀌며 반복되고 있다”며 “지난 2004년 당시 피해자 지원단체인 가정·성폭력상담소에서 항의하며 일일이 수정 요청을 했으며, 올해에도 피해자지원기관인 상담소가 항의하고 수정, 삭제 요청을 했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는 ‘국민의 알권리’에 우선하는 생존권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자의 호소에도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 사건 관련 내용이 담긴 영상들이 곧바로 삭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은 “피해자가 자신에 대해 언급한 글의 삭제를 원하고 있다”며 “가해자 신상 영상을 올린 유튜버에게 보낸 판결문도 지워달라고 이미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제공=뉴시스]

피해자의 현재 상황에 대한 발언도 이어졌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는 “20년이 흐른 현재, 피해자는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정식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및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어 “거기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온라인에서의 가해자 신상공개가 시작되면서 피해자는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며 “피해 시 겪었던 인권침해 상황을 다시 마주하면서 피해자는 사막 한가운데 홀로 있는듯한 막막함과 외로움, 두려움, 분노를 겪고 있지만 그녀는 스러지지 않고 분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피해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이사는 “준엄한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인 힘과 물리적인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그러려면 그를 피해자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자기 삶을 존중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20년이 흘렀음에도 밀양 성폭행 사건이 계속 재조명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 이사는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반성,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한 인정이 있었는가라는 질문 때문인 것 같다”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 지원’이라며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짚었다. 

또한 상담소는 피해자를 후원하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자 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 누리집’에 기부금 모금 페이지를 개설했다.

모금액은 실시간으로 규모가 공개되며, 100% 피해자 생계비로 활용될 예정이다. 상담소는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기부자들이 투명하게 모금액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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