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급등 원흉 주담대 차단...신용규제나 중소기업 챙기기 투트랙 필요
한미 금리차, 불안한 환율 흐름에 영향...섣불리 금리 인하는 곤란 지적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떠받친다는 정책 기조는 이제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출범 뒤 급증한 가계빚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부동산시장 연착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만 매몰돼 정책의 방향성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이미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대출, 올해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자금 대출을 대거 공급해왔다. 여기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도입이 추진됐던 스트레스 DSR 추진이 연기되고,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무리수가 추진되는 등 부동산을 위해 경제 건전성을 포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편집자 주>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정부가 부동산 부양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높은 가운데, 정부가 사실상 키운 가계대출 거품이 우리 돈의 가치 즉 환율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관련 대출로 인한 가계부채 부담을 감안해 금리를 인하 조정해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정책이 우리 경제 건전성을 해친다는 우려 또한 대두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유동성 과다 상황에 노출돼 있다. 한국은행이 14일 내놓은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한국 광의 통화량은 4013조원으로 3월보다는 16조7000억원이 증가했고, 지난 2020년 4월 통화량 3000조원에 비하면 불과 4년 만에 1000조원가량이 늘어났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통화량은 국내총생산(GDP)의 151.5% 수준으로, 경제 규모 대비 통화량이 홍콩과 일본,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돈을 많이 푼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부동산 관련 정책과 시장 참여자들의 투자 과열 현상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임기 초 윤석열 정부는 과도한 통화량을 제어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막상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떠오르자 통화량을 늘려서라도 부동산 PF를 연착륙시키겠다는 카드를 택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추진 시점을 연기하고,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기로 하는 등 사실상 부동산 가격을 지속적으로 떠받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만에 6조원 증가한 1115조5000억원에 달했다.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 3월 1조7000억원 감소 이후 한 달 만인 4월 5조원 증가로 돌아섰다. 가계대출은 특히 주담대가 견인하고 있다. 주담대는 올해 상반기(1~6월) 누적 기준으로는 26조5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파악돼, 전체 유동성 증가분에서의 차지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5월 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잔액의 비율은 98.9%에 달하는 수준이다. 종합하면 과도한 부채로 인해 유동성이 지나치게 많이 공급돼 있는 상황이다. 

‘돈값(환율)’ 하락 위험 증가, 금리 올릴 때 아니다 쓴소리

과다하게 풀린 돈은 궁극적으로 화폐의 가치, 즉 외화 대비 우리 돈의 값어치인 ‘환율’에도 부정적 요소가 된다. 물론 그 부담은 국민경제가 지게 된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금리 인하에 대한 압박 목소리가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압박한 바 있다.  15일 국민의힘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에서도 참석 위원들 사이에서 금리 인하 주문이 있었다. 이는 대출이 많은 상황에서 국민들의 이자 부담을 감소시켜 줄 필요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에 맞서 한국은행은 신중론을 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장중 한때 1400원을 찍은 바 있고, 현재도 1380원대에 머물고 있다(16일 종가는 1385.5원이다). 경제위기가 아닌 상황임에도 매우 이례적인 가격대가 유지 중이라는 것. 유동성 과잉 등 경제지표 악화에 따른 것으로, 금리를 이자 부담 경감이라는 목적으로 섣불리 인하해서는 안 될 상황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도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금리와 환율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매우 신중한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총재는 과거, 한미 양국간 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로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환율 상승을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던 입장에서 실질금리(시장금리) 격차가 명목금리 차이와 비슷해진 점을 우려하는 쪽으로 입장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한미간) 명목금리가 200bp 차이가 났지만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질금리 면에서 우리가 높았던 기간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인플레이션도 거의 3% 아래쪽으로 내려와 명목금리 격차가 거의 실질금리 격차가 된 면이 있다”고 설명해 환율과 금리 문제를 진지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학계에서도 무분별한 대출완화로 인한 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산가격 상승을 통한 경기 부양은 이제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상황에 금리 인하로 불난 데 기름을 붓는 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현재 대출완화로 집값을 띄우는 건 이상한 정책”이라면서 “개인에게도, 금융기관에게도 폭탄돌리기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이 와중에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당장의 이자 부담을 줄여두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각의 금리 인하론은 옳지 않고, 금리는 동결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금리 수준으로도 유동성이 과잉으로 풀리고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아울러, “과거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우리도 충분히 고려를 했지만 금리를 적정선까지 올리지 않고 대출 거품만 키웠다”면서 디레버리지(부채 축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집값이 한 차례 조정됐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당국에서 빚으로 집값을 띄우는 이상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에 성공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미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7년 4분기 98.7%에서 지난해 2분기 73.7%까지 25%포인트나 감축됐다. 하지만 한국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같은 기간 69.2%에서 101.7%로 30%포인트 이상 급등하는 부작용에 직면해 있다. 

DSR, 연기 아니라 오히려 빠른 집행과 강화 필요 의견 설득력

한국금융연구원 이지언 선임연구원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소득 증가율 수준에 맞춰 관리하기 위해 DSR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차주별 DSR 규제 비율과 회사별 평균 DSR 규제 비율이 은행권과 비은행권이 다르다는 점을 짚어 “업권별로 상이한 DSR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 기준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정책목적상 필요한 대출 지원, 산업 구조조정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 동력원을 찾는 것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세종대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는 “금리를 내릴 때까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부담을 줄여주도록 따로 지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을 연장해 준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상명대 경영학과 서지용 교수는 “주택금융은 스트레스 DSR 시행을 통해 규제를 강화하되, 고금리에 고통받는 차주들은 가계신용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놨다. 

김상봉 교수는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가 가계부채 위험 관리에 맞춰져 있다고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며 “정책적 필요상 신생아 특례대출 등에는 예외를 두고, 이를 제외한 모든 대출에 DSR을 적용하는 등으로 집값 상승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부동산 DSR #PF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