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상품 투자에 65세 이상 고령자 30% 육박
홍콩 ELS 이어 해외 부동산 펀드도 ‘일촉즉발’
“무분별한 단기실적 추구, 성과지표체계가 원인”

홍콩 ELS 피해자들이 지난 3월 규탄 집회를 갖는 모습 [사진출처=뉴시스]
홍콩 ELS 피해자들이 지난 3월 규탄 집회를 갖는 모습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이슈가 은행권을 강타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해외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부동산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매력적인 수익률이 기대되는 상품이지만 높은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설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계약상 절차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뒤늦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의 충분한 이해가 필요함에도 판매채널인 은행에서는 안전성만을 강조하고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 ELS 논란이 당국의 과징금 부과 절차를 남겨 놓은 가운데, 보상 처리에 불만을 가진 일부 피해자들은 형사 소송 등을 제기할 태세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새삼 관심 대상으로 다뤄지면서 해결 방안 모색에 관심이 모아진다.

끊이지 않는 불완전 판매

홍콩 ELS 불완전 판매 사태 관련 은행들이 자율 배상안을 내놓았지만, 해당 상품 피해자들은 원금손실의 전액 보존을 주장하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홍콩 ELS 사태 피해자들은 ‘금융사기예방연대’ 창립을 공식화하고 변호인단과 함께 향후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홍콩 ELS 총 판매잔액은 19조3000억원으로 이중 은행권 판매잔액은 약 16조원에 달한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이 8조원으로 가장 규모가 컸으며, 신한은행(2조4000억원), NH농협은행(2조2000억원), 하나은행(2조원) 등이다. 

당국은 지난 5월 주요 은행의 대표 손실 사례를 선별·심사한 분조위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별 배상 규모는 투자자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 배상률은 손실액의 30~40% 수준이다. 은행별로 다르나, 배상금은 판매액의 약 10%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보상 절차 이행은 “생각보다 많은 고객이 동의해 순조롭게 이행 중”이라면서도 과징금 등 추후 절차에 대해서는 “아직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사기예방연대 길성준 위원장은 “은행직원들은 해당 상품의 원금 손실 가능성 같은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위험 상품을 가입시키기 위해 투자성향을 조작해 가입시키는 등 이는 판매 단계부터 사기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금 전액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불완전판매 이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옵티머스 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로 적발된 불완전판매 행위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됐지만 약 5년 만에 재발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글로벌 부동산 시장 침체로 신한은행에서 판매한 4400억원 규모의 해외부동산 펀드 손실이 불거지면서 또 다른 투자자의 불완전 판매 민원이 발생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해당 불완전판매 민원 관련해서 금감원의 자체조사 요청을 받았고 지난 5월 말에 소명을 다 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불완전판매 이슈가 내부통제의 부족과 규제 당국의 감독 미비 등 구조적인 문제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9월 예정된 국정감사에서 은행권 화두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안전하다고 믿은 은행 왜 고위험 상품 취급하나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해 기준 이자이익은 4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대출자산에 주로 기인하며 이는 전체 이익 기여에 90%가 넘는다. 이러한 쏠림현상 완화를 위해 은행권들은 비이자이익 강화를 추진해 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해 비이자수익 내기에 과심을 기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ELS를 비롯한 파생결합상품은 주로 대출 수익에 의존하는 은행의 경우 수익 다각화 측면에서 놓칠 수 없는 사업이다. 

특히 원금보장상품(ELB 등)의 평균 수수료율은 0.5%를 하회하는 반면 원금비보장형 상품인 ELS의 평균 수수료율은 1.5%~3%의 수준으로 월등히 높아 은행권의 주요 판매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금융사 간 무분별한 비이자수익 경쟁이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특히 홍콩 ELS의 경우 은행권 전체 판매잔액 약 16조원 중 65세 이상의 고령 투자자에 대한 판매가 3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나타나 금소법 실효성에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10년 후반과 2020년 초반 당시에는 해외부동산이나 증시의 전망이 좋았고, 예대마진에 수익이 치우쳐 있는 시중은행들이 시장지위를 위해 파생결합상품이나 사모펀드 상품을 프라이빗뱅커(PB)들을 중심으로 판매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라면서 “경쟁 강도가 높았던 만큼 실적에 대한 압박이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실적주의...성과지표체계 개선해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기관인 금융경제연구소가 국내은행에 근무 중 고위험 상품을 판매했던 직원들을 심층면접한 결과 고위험상품 판매 과정에서 실적 압박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고위험상품을 판매했던 A 은행의 직원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한 판매업무 종사자에 조직적 강한 압박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다른 B 은행 직원은 “판매 건수와 액수 등을 성과지표에 반영하고 상품 다변화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고 털어놨다.

금융경제연구소 김상배 연구위원은 “고위험 금융상품의 판매를 통한 수수료 수익의 확대라는 국내은행의 목표와 이를 위해 임직원들에게 판매를 독려하는 행위, 적극적인 동참을 위해 판매실적을 성과지표체계에 반영하는 전략은 일관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으나 이는 고위험 금융상품의 본질적 특성과 판매자의 재량권 그리고 고객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심각한 이해 상충을 발생시킨다”면서 “이는 불완전판매를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조치”라고 진단했다.

은행권의 끊이지 않는 불완전판매의 원인이 무분별한 단기 실적 추구와 성과지표체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금융당국의 사후약방문적인 대처를 지적하고 책임과 처벌 규정을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의 감시 감독이라는 본연의 권한과 의무가 있음에도 손실이 현실로 드러날 때까지 효율적인 선제 대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에 따른 책임도 보이지 않았다”며 “현재 금융당국이 행사하는 강한 권한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요구자료에 따르면 김 후보는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그간의 제도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사들이 실제 판매규제를 형식적으로만 준수하고 현장 판매 관행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며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판매 가능 금융상품의 범위와 방식, 내부통제 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지켜보고 있다. 불완전 판매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무위 소속 한 의원실에서는 “올해도 큰 이슈로 부각될지는 모르겠다. 매년 국감에서 단골메뉴이긴 했다. 이제 겨우 (금감원) 첫 업무보고를 진행한지라 전반적 분위기를 확언할 때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가 금감원 국감을 계기로 은행권 소환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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