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팀코리아 김재민 GK·이한별 감독
홈리스월드컵, 세상으로 돌아갈 매개체 돼
극복할 과제는 경기 이해도·언어적 소통
“다치지 않고 즐거운 추억 만들어 가고파”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축구의 본질은 단순하다. 골을 넣고, 골을 막는 것.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도 관중의 심장을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순간은 골대 앞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다. 공격수와 수비수가 맞서고, 골키퍼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여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문장과 그의 배후에서 팀을 지휘하는 든든한 감독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승리를 위해서가 아닌 더 큰 목적을 위해 축구공을 쫓고 있다.
이들이 함께 뛰게 된 계기는 바로 ‘홈리스월드컵(Homeless World Cup)’이다. 홈리스월드컵은 전 세계 홈리스들이 축구를 통해 자립을 꿈꾸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축구 대회다. 2003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이 대회는 지난해 미국을 거쳐 아시아 최초로 대한민국에서 열리게 됐다. 대한민국이 출전국 지위로 참여한 지 14년 만에 개최국으로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번 서울 대회는 9월 21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 간 49개국 64개 팀 500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총 396개의 게임이 펼쳐질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홈리스’는 ‘노숙인 시설에 등록된 사람’만을 지칭한다면, 해외의 ‘홈리스’는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 모두를 포괄한다.
올해 대한민국 팀 국가대표에는 자립준비청년, 위기청소년, 난민과 장애인이 포함됐다. 다양한 범주에 놓인 선수들이 참가한 만큼 언어적인 장벽에 부딪히기도, 소통에 버벅이기도 하지만 서로 조금씩 더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했다고 한다.
이처럼 홈리스월드컵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축구 경기를 넘어선다. 누구나 안전하게 살아갈 거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이다. 하지만 이 훌륭한 이상을 누군가는 불가능한 백일몽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은 축구장에서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몸을 던지며 묻는다. “우리 모두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세상인데, 안 될 건 없지 않나?”
지난 5일, 본지는 김포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팀코리아’의 2차 합숙훈련 현장을 찾았다. 골문 앞에 서기 위해 닫힌 방문을 활짝 열고 나선 골키퍼 김재민과 홈리스월드컵의 희망을 전파하고 싶은 15년차 감독 이한별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2024 홈리스월드컵에 뛰어들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김재민 선수(GK): 광주에서 온 김재민이라고 한다. 현재 대학교 1학년이고, 이번 대회의 포지션은 골키퍼다.
이한별 감독: 올해로 15년째 감독을 하고 있고, 네 번째로 한국 팀 감독을 맡은 이한별이다.
Q.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김재민 선수(GK): 제 주변에 지난해 열린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원래 활동적인 운동을 해도 즐겁다고 선뜻 말하지 않는 친구들인데,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하고 그 친구들 입에서 재밌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처음 봤다. 그런 점에 흥미를 느껴 직접 지원하게 됐다.
이한별 감독: 홈리스월드컵은 세상에 드러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기회를 만들어가는 대회라고 생각한다. 이 대회를 통해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들과 잘하지 못해서 어려움이 있었던 모든 부분에서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홈리스월드컵에 함께하며 홈리스들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힘들 때 언제든지 이야기를 털어놓고 연락해서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홈리스월드컵에 계속 참가하고 있다.
Q. 김재민 선수를 선발할 때 직접 면접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김재민 선수의 어떤 면을 보고 선발했나.
이한별 감독: 홈리스월드컵이 일단 경쟁을 기반으로 둔 대회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측면에서 골키퍼 출신이라는 점이 이끌렸다. 또 면접관으로서 3년 내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하곤 한다. 홈리스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특히 어렵지만 사람은 계획없이 살아갈 수 없고, 무엇보다도 꿈을 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과 더불어 인간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해 김재민 선수를 선발하게 됐다.
Q. 면접 때 감독님께 어떤 말씀을 드렸는지 기억하는지.
김재민 선수(GK): 기억하고 있다. 지금 대학생이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스포츠 관련된 과를 특기로 살려서 나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Q. 홈리스월드컵 참가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김재민 선수(GK): 축구를 오래 하지는 않고 잠깐 했었는데 함께 축구하던 친구들이 일단 도전하면 무조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무조건 뽑힐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줬다.
이한별 감독: 당연히 좋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준다. 감독으로 활동하며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도 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주변에서 보기 때문에 ‘이 일에 맞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 홈리스월드컵 준비 과정에 대해
Q. 홈리스월드컵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일생에 단 한 번만 도전할 수 있는데, 이 대회를 통해 이것만큼은 꼭 얻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김재민 선수(GK): 친화력을 기르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이번으로 2차 합숙 중에 있는데, 뭔가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준 덕분에 대부분 친해진 것 같다.
이한별 감독: 선수들과 라포를 잘 형성해서 이 대회 이후에도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사회 관계를 만들고 어른으로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남고 싶다. 대회 이후에도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다. 대회 성적을 내는 부분은 저희가 준비한 만큼 잘 하면 그에 맞는 결과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Q. 축구가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김재민 선수(GK): 보다 더 활동적으로 변화할 계기가 됐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거의 매일 집에서만 지내고, 방에서 책만 읽었다. 축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밖에도 많이 나가고 다른 운동들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이한별 감독: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쁜 길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유혹들이 많았지만 이 축구라는 운동을 통해 공을 차고 무리에 섞이며 떨쳐낼 수 있었다. 축구는 그런 의미에서 은퇴할 때까지 쭉 운동을 하게 만드는 어떤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Q. 대회 준비 과정에서 팀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김재민 선수(GK): 경기 룰이 축구와 다르다보니까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물어본 적 있는데 이번 대회 종목은 일반 풋살이랑도 아예 다르다보니 한 번씩 실수할 때가 있다. 특히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따라야 할 규칙을 잊어버려서 그 점이 어렵다.
이한별 감독: 이번에 한국 팀에 다양한 범주의 홈리스 분들이 함께한다. 청소년, 자립준비청년, 장애인, 난민이 포함됐는데, 출정식 때 말씀드렸듯 언어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다. 어떤 이슈를 이야기했을 때 그걸 모두가 한 번에 이해하는 일이 적고, 그러다보니 소통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하지만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아니라, 선수 한 명 한 명이 조금씩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즐겁게 감당하려고 하고 있다.
■ 홈리스월드컵, 그 이후의 이야기
Q. 홈리스월드컵이 끝난 후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김재민 선수(GK):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할 것 같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싶고, 자격증을 토대로 취업 준비도 해나가고 싶다. 아직 1학년인데, 다니고 있는 과가 스포츠 재활학과여서 그쪽으로 취업 준비를 할 것 같다.
이한별 감독: 저 역시도 일상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원래 베트남에서 스포츠 선교사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해야 하는 사역을 그대로 이어나가면서 맡은 일들을 해 나갈 예정이다.
Q. 감독님에게 한 가지 감사의 말을 전한다면.
김재민 선수(GK): 제가 가끔 가다가 혼자 빠지거나 튀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Q. 홈리스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이한별 감독: 홈리스월드컵이 홈리스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꾼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고, 홈리스에 다양한 범주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더 높은 성취를 하는 것은 노력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바닥을 친 사람이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전 그런 난관이 이 공을 차는 행위를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Q. 대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를 위한 다짐 한마디를 들려주자면.
김재민 선수(GK): 1차 합숙 훈련 때 홈리스월드컵을 다룬 영화 ‘더 뷰티풀 게임(The Beautiful Game)’을 다 함께 모여서 봤다. 생각보다 이 대회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고, 그때 본 영화처럼 다치지 않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이한별 감독: 저 역시도 선수들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고, 개인적인 성향으로 살아왔던 선수들이 이 합숙부터 대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함께’라는 가치를 알게 됐으면 한다. 선수들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는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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