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니스 바루파키스 지음 노정태 옮김 이주희 감수 | 396쪽 | 152x225 | 21세기북스 | 2만4000원
아버지는 어떤 마을로 전송되었습니다. 옷, 신발, 책, 노래, 게임, 영화 등 온갖 것들을 거래하는 사람들로 꽉 찬 마을이에요. 처음에는 모든 게 그저 평범해 보여요.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 옵니다. 모든 가게, 사실 모든 건물이 제프 베이조스라는 녀석의 소유라는 거죠.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은 제프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제프는 상품이 판매될 때마다 수수료를 받으며, 무슨 상품이 팔릴 수 있고 팔리지 않을지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소유하고 있어요. 이 이상한 마을에서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 심지어 볼 수도 없는 그 모든 것들이 제프의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요. 아버지와 제가 나란히 걸으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해보자고요. 그런데 우리의 눈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여요. 제프의 의도에 따라 알고리즘이 섬세하게 골라놓았으니까요. 아마존닷컴을 거니는 모든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제프가 기준을 정하고 그의 선택에 따라 조절하는 알고리즘에 따라야만 합니다.
_3장. 클라우드 자본 중에서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알고리즘으로 우리를 길들이고 공짜 노동으로 배를 불리는 돌연변이 자본의 비밀을 파헤친 책이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신간 <테크노퓨달리즘>을 통해 거대 디지털 플랫폼과 이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등장, 그리고 인공지능은 정말 우리에게 편의만을 제공하고 있는지 반문한다. 또한 그는 우리가 지금 자발적 노예상태가 돼 그들에게 절대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빅테크는 그들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봉건제의 영지를 꾸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를 자발적 데이터 농노로 만들어 새로운 봉건주의 시대의 영주가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Tech)와 봉건제도(feudalism)를 합친 테크노퓨달리즘(Technofeudalism)이라 부른다. 그는 자유 경쟁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를 죽이고, 개인을 무임금으로 노동하는 데이터 노예로 전락시켜 버린 빅테크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이 책은 지난 20년간 새로 등장한 돌연변이 자본인 클라우드 자본과 알고리즘 등의 디지털 혁명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몰락시켰는지 탐구한다. 더 나아가 정치·경제 시스템과 국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테크노퓨달리즘의 알고리즘은 가부장제, 편견, 기존의 억압을 강화하는 성향이 있다보니, 소녀들, 정신이상자들, 한계에 몰린 사람들,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가난한 이들까지, 이 모든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각자의 것으로 지키려면, 우리는 클라우드 자본의 집단 소유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그것, 클라우드 자본을 행태 조작 수단에서 인간적 협력과 해방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만국의 클라우드 농노,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클라우드 가신들이여, 눈을 떠라.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 채워진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노라!
_7장. 테크노퓨달리즘에서 벗어나기 중에서
또한, 호메로스에서 매드맨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그리스 신화와 대중문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혁명적인 변화가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노예로 만들고, 세계 권력 규칙을 어떻게 다시 쓰며, 궁극적으로 이를 전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제안한다.
저자는 테크노퓨달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시대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하며, 클라우드와 플랫폼을 공유화하고, 클라우드 농노와 프롤레타리아가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어 실질적인 연대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은 디지털 영지를 만들어 우리를 데이터 노동자로 전락시킨 클라우드 자본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며 “알고리즘으로 우리를 길들이고 공짜 데이터 노동으로 배를 불리는 돌연변이 클라우드 자본에 대처하는 첫 번째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