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자회, 중국산 시멘트 수입 타진…정부도 대응 논의
건설업계, 가격인하 요구…시멘트업계 “지금도 힘들다”
“협의체 만들어도 공정거래법 저촉되지 않도록 해야”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건설업계와 시멘트업계가 시멘트값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가운데,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산 시멘트 수입이 논의되고 있다. 실제 수입이 진행되면 시멘트업계와 건설업계 모두에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 이목이 쏠린다. 이에 주요 건자재를 대상으로 가격과 수급 등을 협의할 수 있는 법적 기구 설립 등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 자재구매 담당자 모임인 건설자재직협의회(이하 건자회)가 중국산 시멘트 중개업체를 통해 시멘트 수입 방안을 타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건자회는 내년 즈음 평택항에 시멘트 저장시설(사일로)을 건설하고 오는 2026년부터 연간 78만톤을 수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도 시멘트 수입을 포함한 시멘트 비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시멘트 수입 및 비축 방안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국토부 건설산업과 관계자는 “민간 건설업계에서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검토한다고 해서 공공분야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지 논의하고, 실제 수입 관련한 절차는 무엇이 있는지 현황 파악을 한 정도”라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입 여부에 대한)방향을 확정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산 시멘트 수입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조만간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통해 총괄적으로 결정될 사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건설업계에서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최근 연간 인상된 시멘트 가격 부담 때문이다. 시멘트 7개사 평균 시멘트값은 2021년 톤당 7만5000원에서 2022년 하반기 10만5000원으로 올랐고 지난해 연말에는 11만2000원대까지 상승했다.
시멘트업계는 올해 상반기 건설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경영실적을 거뒀다. 한일시멘트는 상반기 매출 9097억원, 영업이익 1625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3.2%, 영업이익은 44.8% 증가했다. 쌍용C&E는 상반기 매출 8537억원, 영업이익 777억원을 거두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52.2% 늘었다. 이밖에 아세아시멘트는 전년 동기에 비해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42% 증가한 895억원(매출 5693억원)을 기록했으며 삼표시멘트도 동기간 영업이익이 70% 늘어난 579억원(매출 4028억원)을 올렸다.
건설업계에서는 시멘트값 인상의 주요 원인이었던 유연탄값이 인하한만큼 다시 가격 인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연탄값은 2022년 하반기 톤당 444.53달러까지 올랐으나 지난해부터 차츰 내려가 지난달에는 톤당 144.76달러를 기록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유연탄값이 내린데다 시멘트 수요도 감소했으니 시멘트값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시멘트값이 오르면서 레미콘, 콘크리트 타일, 벽돌 등의 가격에도 영향을 끼쳐 공사비에 주는 부담이 적잖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건자재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멘트업계는 유연탄값은 내렸지만 전기료 등이 인상되면서 가격을 인하할 여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상반기에 양호한 경영실적을 기록했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출하량이 감소하고 재고가 쌓이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각 시멘트회사의 상반기 재고자산을 보면 한일시멘트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약 6% 증가한 1376억원을 나타냈다. 쌍용C&E의 재고자산은 상반기 27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5% 상승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현재 시멘트 재고물량은 약 120만톤에 달하고 있다. 현재 검토 중인 중국에서 수입할 물량은 오는 2026년부터 연간 78만톤 남짓이다. 시멘트업계에서는 ‘국내에 재고가 쌓여가는데 수입까지 해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멘트협회 관계자는 독과점된 시장 상황 때문에 수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관련해 “시멘트업계가 독과점 카르텔을 형성해 가격을 주도하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을 만드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시멘트분야는 진입이 어려운 여건의 산업군이다. 기존 업체들도 과거 정부의 독려가 없었다면 진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멘트업체 관계자는 “중국산 시멘트의 품질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국내업체는 제조과정에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여러 시설투자를 해야하는데 중국은 상대적으로 환경규제가 덜하다. 또, 중국산 시멘트를 쓴 건물을 시민들이 믿고 이용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대다수 레미콘업체가 영세한 규모이기에 중국산 시멘트만을 위한 라인을 따로 구비하기 어려울 것이다.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산업통상자원부 철근세라믹과 관계자는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가격 결정구조에 정부가 개입하거나 할 수 없다”면서도 “이번에 준비 중인 공사비 안정화 방안은 건자재의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킬 여건을 만들려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중국산 수입 검토와 관련해서는 “국토부 등에서 검토한다고 하는데 아직 공식적인 사안은 아니다. 실무단계에서 논의되는 수준이라 언급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한편, 과거에도 시멘트 가격이 오를 때마다 수입 검토가 이뤄졌지만 실제 수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 중국산 수입 검토도 시멘트는 다른 건자재와 비교해 보관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국내 재고도 쌓여 추진 동력이 계속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물밑에서는 주요건자재를 대상으로 한 협의체 설립 논의도 거론되고 있다. 시멘트의 경우, 시멘트업계, 레미콘업계, 건설업계,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이 정기적으로 시장 안정화에 대한 협의를 하는 자리를 갖자는 얘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일방적으로 공급업체가 요구하는 가격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런 협의체가 있다면 상호소통이 되지 않겠냐”고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축산법 제32조의4를 보면 ‘가축 및 축산물의 수급조절 및 가격안정과 관련된 중요 사항에 대한 자문에 응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소속으로 축산물수급조절협의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한육우, 양돈, 닭고기 등 주요 축산물 품목별 수급조절협의회가 비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전영준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건설업계와 시멘트업계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업계간 협의가 잘 이뤄지도록 중재하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고 전망했다. 그는 대안으로 “건설공사에서 비중이 큰 시멘트, 철근 등의 자재를 대상으로 수급과 가격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는 기구 등의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걸로 안다. 이같은 장치가 마련된다면 갈등을 사전에 예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도 “업계 자율에만 맡기면 수급이 들쭉날쭉하며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업계간 의사소통과 정보 교류 등을 위한 협의회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 연구위원은 “공정거래법상 시장 담합은 금지돼 있다. 협의회를 만들더라도 그 기능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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