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각 분야 예술가들과 융합으로 기존 틀 벗어난 ‘재창조’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누군가에게 다가서려는 결심과 그 한 발짝의 보폭은 분명 큰 사건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인 엘리 위젤은 그의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무관심은 인간성의 반대편에 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무관심’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이며 ‘악’ 그 자체라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 밖의 타인에게 다가서야 하는 의무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다가선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숲을 지나가게 허락하는 일이다. 낙엽이 흩어지고 들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드러내는 일이다. 진심은 언제나 용기라는 일격이 필요하다. 구미연 대표는 말한다. 다가가는 순간은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그전까지는 가능성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머물러 있을 뿐이라고. 타인의 공간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오래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구미연 대표는 여러 분야 아티스트들을 모아 공동경영하는 ‘직원이 없는’ 새로운 개념의 회사 ㈜다가서서를 세운 설립자다. ㈜다가서서는 책방으로 시작해 책을 쓰고 읽고 만드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회사로 그들에게 새로운 꿈을 조력하는 수업(시, 글쓰기, 작사, 편집 등)을 운영하는 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화장품과 시, 화장품과 사진, 화장품과 음악 등을 통한 컬래버를 기획하고, 기존 브랜드를 다시 블렌딩해 유통까지 재구성하는 BBB(BRAND BLENDING BUSINESS)로 확장 중이다.
-㈜다가서서의 역사를 알고 싶다.
울산에 있는 동네 서점에서 처음 시작했다. 사람들 간 교류가 제한됐던 코로나 팬데믹 때 우울증을 겪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집 지하에서 조그마하게 오픈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운영하다 원태연 시인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도움으로 서울 홍대로 거처를 옮겨 작가들의 아지트를 기획했다. 지금은 새로운 신간들이나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북토크 등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가서서라는 사명은 직접 지은 것인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오래 고립된 시간이 있었다. 집에서만 거의 6년 칩거하면서 우울증 약을 계속 복용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눈빛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두려웠다. 그런 모습을 사랑하는 이에게 보이는 것이. “자꾸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그런 결핍의 삶으로부터의 구원 같은 문장이었다. 용기를 내 나의 낡은 몸을 열고 나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고립된 생활을 오래 하다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정작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 원태연 시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글을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망도 커지면서 ㈜다가서서를 확장하게 됐다. 현재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첫 비즈니스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는 무엇인가.
글, 그림, 사진 등 여러 장르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출판과 전시회, 콘서트 진행을 추진한다. 특히 장르의 융합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이 모여 컬래버를 진행함으로써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BBB(BRAND BLENDING BUSINESS) 즉, 기존 브랜드를 다시 블렌딩해 유통까지 재구성해 주는 일이다.
-벤치마킹하는 회사가 있나.
‘젠틀몬스터’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젠틀몬스터의 구성원들을 보면 각기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사람들이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다가서서도 직원 개념이 없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진 대표다.
-현재 구체적으로 진행 중인 비즈니스가 궁금하다.
향후 ㈜다가서서 코스메틱이 오픈 예정이다. 화장품 기획, 유통 및 에스테틱 프렌차이즈 운영 경력을 살려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주는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두바이 이란 등 중동 시장에서 브랜드 의뢰를 받은 상태다. 내년 런칭을 목표로 한다.
또한 내년 2월부터는 1인 브랜드 시대에 맞춰 본인의 노래를 만들어 사용하고 저작권까지 가질 수 있는 <원태연 시인의 작사작곡> 수업을 개강한다. AI의 생성기능을 잘 활용한 수업으로 이철원 작곡가&디렉터가 그 수업을 동참한다.
-지금 일에 대한 행복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너무 먼 곳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너무 희생하면서 산다. 이전의 내가 그랬다.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남의 돈을 벌어주는 일이었고, 수동적인 업무였다면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오늘보다 더 나아지는 내일을 꿈꾼다. 그리고 그다음 가장 가까운 세상에 다가선다. 일단 오늘 행복하고 볼 일이다. 지금의 나는 ‘워커하이’다.
-㈜다가서서는 어디를 향해 가고자 하는가.
애초에 큰 그림을 세워 놓고 시작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위한 일이면 좋겠다.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모여서 작업을 해보니 사람한테 영감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 아티스트의 역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재창조해 새로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우리는 천 번도 넘게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마음은 1센티밖에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데뷔작 ‘초속 5센티미터’에 나오는 대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으로 재단될 수 없는 공간이다. 때로는 눈앞에 있어도 닿을 수 없고,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손끝이 스칠 것처럼 가깝다. 이같이 알 수 없는 변덕에도 구미연 대표는 ‘다가서서’ 사람들의 문을 계속 두드린다. 혹여 그 문 뒤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