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정당해산’ 요구 청원 25만명 넘어...정치권 향한 ‘불신·분노’ 표현한 듯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2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한 변화를 겪었다. 난데없는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그리고 이어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에 이르기까지, 이 일련의 과정은 기자인 나조차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극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막장 드라마 같은 현 상황에 우리는 분노와 허탈감을 동시에 느낀다. 계엄령이라는 역사 속 유물을 현재 다시 마주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의 담장을 넘나드는 국회의원의 모습, 장갑차 진입을 막으려고 맨몸으로 나선 시민들의 용기, 하야와 탄핵을 외치는 각계각층의 함성은 결코 평범한 민주국가의 일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안 표결 당일 여당 의원들의 집단 보이콧으로 탄핵안은 아예 표를 세워보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그날 국회를 에워싸며 “탄핵하라”, “투표하라”던 시민들의 외침은 이제 “정당해산 심판” 요구로 바뀌어버렸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국민의힘 정당해산’ 요구 청원이 불과 이틀 만에 25만명이 넘는 동의가 몰린 것은,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고 민주적 질서를 뒤흔든 정치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불신과 분노의 표현일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탄핵 표결에 불참한 배경에는 이른바 ‘탄핵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층 내부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바른정당처럼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 정치적으로 소멸한 전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은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리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2016년 경험으로 입증했다. 당시 국가 헌정 질서는 파괴되지 않았고, 오히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귀중한 과정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정당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계산에 매몰돼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행위는, 명백히 헌법이 부여한 ‘정치적 책무’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힘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채 민주적 책임을 방기하는 낡은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회법이 강조하는 “양심에 따른 투표”라는 대원칙을 되새기고, 국민적 요구에 진정으로 응답하는 정치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탄핵 트라우마’가 아닌 ‘국민 트라우마’라는 심각한 정치적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
한 헌법학자의 말이 머리를 맴돈다. “대선, 총선, 지선 때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고 말했던 정치권이 이제 이런 말을 떳떳이 할 수 있을까?” 그 반문은 민주주의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정치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다시금 묻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길은 분명하다. 책임 있는 태도와 민주주의 원칙의 실천, 그리고 헌법 제1조에 천명된 ‘국민주권’을 단순한 문구 이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국민은 이를 지켜보고 있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의 뜻을 외면하지 말고,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에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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