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재 여파 속 유가 변동성 확대…업계 불확실성 가중
중국발 공급 과잉·수요 둔화로 수익성 압박 심화
업계,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시장 다변화로 대응 모색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석유화학 공장이 집중된 여수 산업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석유화학 공장이 집중된 여수 산업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국제 유가가 상승과 하락 요인을 모두 안은 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기준을 정하기 어려워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러시아·이란 원유 제재와 OPEC+의 2026년 말까지 감산 연장으로 유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거듭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원유 및 셰일가스 생산이 확대될 경우 유가가 안정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추가 상승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OPEC+의 감산 연장으로 유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전 주장과 미국의 원유·셰일가스 생산 확대 가능성은 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외교 정책이 국제 유가의 변동성을 좌우할 주요 요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OPEC과의 협상은 조율 가능성이 크지만, 이란 문제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이란 정책을 다시 펼칠 수 있어 원유 제재가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OPEC에 증산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외교·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율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이란 문제는 상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강경한 반(反)이란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수 있어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가 다시 강화된다면 국제 유가를 추가로 끌어올리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울산 석유화학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울산 석유화학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유가가 상승하면 원료비 부담이 커져 채산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유가가 하락해 원료비가 낮아진다고 해도 글로벌 수요 부진이 지속되면 제품 가격 회복이 어려워 수익 개선으로 이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중국의 대규모 석화 설비 증설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신·증설을 지속하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2565만톤에서 2023년 5174만톤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는 신규 가동 물량까지 더해져 추가로 900만톤이 시장에 쏟아질 예정이다. 공급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까지 커지면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경쟁력 확보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로 인해 ‘에틸렌 스프레드’가 하락해 국내 석화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석유화학업계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로, 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이다. 지난 6일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톤당 213달러로,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생산 원가보다 판매 가격이 낮아지면서, 팔수록 손해를 보는 것이다.

한 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유가 상승이 이어지면 원가 부담이 커져 채산성이 악화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 글로벌 시장은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어 유가 변동성으로 인한 영향보다는 전반적인 수요 위축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로 인해 석화제품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 내 석유화학 설비를 대거 확충하면서 한국산 제품 수입 감소하고 있고 건설·제조업 부진으로 플라스틱·합성수지 등 석유화학제품 소비가 줄면서 수출 물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국내 석화업계는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 재편과 신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단순한 원가 절감에 그치지 않고,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글로벌 시장 다변화,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마련한 석유화학업계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후속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장기 불황에 대응해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 매각, 인수·합병(M&A), 설비 폐쇄 등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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