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최근 석유화학업계를 둘러싼 재편 논의는 익숙한 말들로 채워지고 있다. 자율적 구조개편, 고부가 제품 전환, 수출 판로 다변화.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 문장들이 과연 지금 상황에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을까.
한때 한국 석유화학의 최대 수출처였던 중국은 이제 공급 과잉의 진원지로 바뀌었다. 자급률을 끌어올린 뒤 남은 물량을 저가로 해외에 풀고 있고, 여기에 중동 국가들까지 초저가 설비를 앞세워 경쟁에 가세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은 수익성을 방어하려 일부 라인을 줄이고 있지만, 산업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렇듯 기업들은 각자도생하고 있지만 정책은 여전히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버틸 것인가’에 머물러 있다.
석유화학은 단지 ‘화학제품’만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다. 자동차, 전자, 반도체, 의약품,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조업이 석유화학 소재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기초소재 산업의 대표 격인 이 분야가 흔들리면, 연결된 산업의 기반도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업황 문제로만 보기 어려운 구조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말하기 쉽지 않다. 사회적 여파도 크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긴 더더욱 부담스럽다. 하지만 방향 없는 재편은 결국 ‘버티는 기업’만 남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장기 투자 산업일수록, 이런 식의 조정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물론 책임이 정부에만 있는 건 아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장기간에 걸쳐 구조조정을 미루고, 단기 수익성에만 집중해온 면이 있다.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가 반복되는 가운데에서도, 미래 산업구조에 대한 준비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민간의 자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만으로는 구조 전환의 질서를 만들기 어렵고, 바로 그 지점을 설계하는 것이 정책의 몫이라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 최근 산업계 전반에서 들려오는 가장 절실한 이야기는 전기요금이다. 한두 해 전만 해도 에너지 비용은 단지 ‘부담’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경영의 지속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제조업 기반이 강한 산업일수록 이 체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들 사이에선 ‘탈(脫)한전’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말도 나온다. 에너지가 산업을 흔들고 있다는 말이 이제는 과장이 아니다.
물론 정부가 모든 해법을 줄 수는 없다. 다만 ‘방향’을 제시하는 건 정책의 몫이다. 민간이 알아서 구조를 조정하고, 정부는 뒤따라 지원하는 구조는 이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금처럼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율은 곧 방치로 읽히기도 한다.
어떤 산업도, 어떤 기업도 완벽한 처방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위기 앞에서 같은 해법만 반복할 순 없다. 기자 입장에서 취재하며 느끼는 건, 지금 필요한 건 단호한 결론이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방향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방향을 제시할 책임은 결국 정부에 있다. 민간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일수록, 정책의 역할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려면, 그 답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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