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세대 8216가구 여전히 무방비 노출
강제력 없어 집주인 미동의 시 설치 불가
‘반지하 일몰’정책 시행률 미진...수혜 가구 6.3%
“방지시설, 임시방편일 뿐...주거문제 해결돼야”

지난 2022년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반지하 침수 사고 직후 ‘반지하 퇴출’을 선언했지만 실제 이행은 요원한 상황이다. [사진=대통령실/투데이신문]
지난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는 반지하 침수 사고 직후 ‘반지하 퇴출’을 선언했지만 실제 이행은 요원한 상황이다. [사진 = 대통령실/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심희수 기자】 장마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전히 서울시 내 침수 취약 반지하 세대엔 최소한의 조치마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찾아간 신림동 현장엔 반지하 세대 창문 곳곳에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은 지난 2022년 8월 집중호우로 반지하 침수 사고가 발생한 지역이다.

신림동 인근 공인중개사는 “매년 요맘때 취재진이 찾아온다”며 “이제 차수판이 많이 설치돼 기자가 더 찾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침수방지시설 설치가 필요한 반지하 세대 2만4842가구 중 1만6626세대만이 설치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미설치된 8216가구는 여전히 침수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침수방지시설 설치에 강제력이 없어 집주인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설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설치된 세대에 대해서는 건물주가 희망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며 “시에서 연락을 세 차례 정도 취해도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설치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신림동도 상황은 매한가지다. 일부 집주인들은 시설 설치가 집값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해 설치를 꺼리고 있다. 침수방지시설이 해당 세대의 침수 위험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지하 세대 세입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침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일부 설치에 반대하는 집주인들을 부단히 설득하고 있지만 설치를 강제할 방안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침수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주차장 입구에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돼있다.&nbsp;ⓒ 투데이신문<br>
지난 2022년 침수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주차장 입구에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돼있다. ⓒ 투데이신문

침수방지시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기상이변에 따른 집중호우가 지속된다면 침수방지시설만으로 피해를 100% 예방할 수 없다. 신림동 반지하 침수 사고 당시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서는 시간당 141.5mm의 기록적 폭우가 내렸다.

2022년 침수 참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장을 찾아 침수 피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점진적으로 반지하를 퇴출하겠다며 반지하 매입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시민환경단체 ‘환경정의’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SH는 587호의 반지하 주택을 매입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한 건도 매입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LH 전세·매입임대의 반지하 가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8월 기준 수도권 LH 전세·매입임대 지하층 8579가구 중 지상층으로 이주 완료한 가구는 6.3%(538가구)에 불과했다.

환경정의 관계자는 “침수방지시설 설치나 주민 사전 예고 등으로 침수 피해를 단기적으로 예방할 순 있겠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고 결국 주거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공공임대 주택이나 매입임대주택의 지속적인 공급과 같은 장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장마철 한 때에만 침수 위험에 대해 간헐적으로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지하 침수 대비는 여전히 요원한 가운데, 올여름 장마는 예년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강우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돼 또 다른 침수 사고 피해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기상청이 지난달 발표한 ‘3개월 전망’ 따르면 이번달 강수량은 평년 101.6mm~174.0mm보다 대체로 많을 확률을 40%로 예측하고 있다. 장마는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약 31일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도가 가장 먼저 6월 20일경 장마에 진입하고, 남부지방은 같은 달 23일, 중부지방은 25일경 장마가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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