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대미 철강 수출액 3억2700만달러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절차 마무리
韓 철강, 美 시장 내 입지 축소 우려

지난 2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들이 쌓여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2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들이 쌓여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한국 철강산업이 연이은 악재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가 본격화된 데 이어, 일본제철이 미국 제2의 철강사인 US스틸 인수를 완료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가격·공급망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2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3억27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3% 감소했다. 수출 단가 역시 톤당 1295달러로 1년 전보다 9.4% 낮아졌다. 특히 5월 들어 수출 단가는 불과 한 달 새 14.6%나 급락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12일부터 25% 관세 부과를 재개한 데 이어, 이달 4일부터는 이를 50%까지 상향 조정한 영향이 본격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5월 대미 수출량은 100만톤을 넘기며 전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단가 하락으로 인해 전체 수출액은 감소세다. 특히 5월 수출 단가가 t당 130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업계에 뼈아픈 신호다. 이는 국내 철강업체들이 관세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마진을 줄여가며 수출 물량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한층 더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50% 관세가 현실화되며 미국 내 수요처들이 한국산 철강에 대해 대체 공급처를 찾기 시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 공백을 채울 후보로는 현지 생산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제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본제철은 지난 6월 US스틸 인수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고,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던 US스틸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총 인수 금액은 141억 달러.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에 황금주를 제공하고, 19조원이 넘는 추가 투자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이를 승인한 배경에는 대규모 투자를 통한 고용 및 공급망 안정 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제철은 US스틸의 기존 생산기지와 유통망을 적극 활용해 자사의 고급 철강 기술을 접목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는 곧 일본 철강의 미국 내 입지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한국 기업들로서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경쟁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국내 철강업계도 대응에 나서고는 있지만 시차의 한계는 뚜렷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이나, 본격적인 양산은 2029년부터 가능하다. 일본제철이 즉시 현지 생산 체제를 가동할 수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최소 4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불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이러한 격차는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공급 안정성, 납기 대응력 등 전반적인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국 내 주요 수요처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할 경우, 고율 관세를 감수해야 하는 한국산 제품보다는 현지에서 생산되는 일본제철 제품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국내 철강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며 “일본이 미국 현지에서 철강 제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되면, 자동차·가전·강관 등 주요 분야에서 고급강을 중심으로 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단순한 기업 간 거래를 넘어, 한국 철강업계 전반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고율 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앞세워 공급망을 선점하게 되면 국내 기업의 대미 수출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향후 시장 주도권은 현지 투자 속도, 주력 품목, 제품 경쟁력, 기술 고도화 수준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로 미국 내 철강 생산 기반에 자금 여력이 크게 확대된 만큼, 이는 한국 철강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현지 제철소를 완공하기 전 일본제철이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US스틸의 노후 설비를 선제적으로 교체하고 생산성을 높인다면 이미 관세 인상으로 어려워진 대미 수출 여건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시장은 고율 관세가 적용됨에 따라 전반적인 가격 수준이 높아지는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며 “US스틸을 인수한 일본제철이 자동차용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설 경우, 동일한 품목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본제철 역시 40조원에 달하는 인수 및 추가 투자 부담을 짊어진 만큼, 자국 내 설비 투자나 기술 개발 여력은 제한될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은 이 틈을 전략적 기회로 삼아 기술 고도화와 수요처 다변화 등 중장기 대응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전략 수립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수출 품목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정부와 협력해 통상 압력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관세 협상력 제고, 전기요금 현실화, 국산 철강 수요 확대 등 정책적 지원을 요청하며 정부에 도움도 요청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품목별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정부 관계 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하면서 통상 문제를 대응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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