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조은석 내란특검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힘 전 지도부를 향해서도 수사망을 넓히고 있다. 14일 <한겨레21> 단독보도에 따르면 내란특검팀은 ‘국힘 내란 방조 의혹’에 관한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특검팀은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몇몇 의원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계엄해제요구안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전담팀을 구성해 통신기록, 통화시점, 동선과 의사결정 과정 등 사실관계 재구성에 나섰다. 이에 국민의힘은 조직적 지시나 방해 의도는 없었다며 논리를 재정비하고 있다.
특검팀이 겨누는 칼에 국민의힘은 해명과 반박이라는 방패로 맞서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쟁으로 보기 어렵다. 내란죄 수사는 헌정체제 위협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며, 그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대응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특검팀과 국민의힘 대응 논리를 중심으로 정치문법을 들여다본다.
특검의 전략, ‘의혹’이 아닌 ‘구조’ 입증
특검팀의 수사 전략은 정치적 행위의 사법적 재구성이다. 내란 또는 내란 방조 혐의를 단순 의심이나 발언, 상황 해석에 의존하기보다는 절차와 권한 남용의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시점별 통신기록과 행동 분석, 지휘계통 연계 수사를 통해 사건을 통합적으로 구성하는 전략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민의힘 지도부에 지시 또는 요청을 했는지 여부, 이러한 지시에 따라 여당이 의도적으로 국회 계엄해제요구안 표결을 지연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윤석열-추경호·나경원 의원 간 통화 ▲의총 장소 수차례 변경 ▲국회의 계엄해제 본회의 참여 여부 등에 초점을 맞춰 내란 또는 내란방조 혐의를 종합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이첩받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방조 고발 사건,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이첩받은 나경원 의원의 내란선동 혐의 사건을 수사에 병합하면서 사실상 두 사람을 피조사자로 지목했다.
의혹의 중심에는 오락가락 의총 장소 변경과 ‘계엄해제 표결 시간 끌기’ 정황이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계엄해제요구안을 처리하기 위해 자정을 넘겨 본회의를 소집했고, 국민의힘은 의총 장소를 국회→당사→국회→다시 당사로 수차례 변경하며 혼선을 키웠다. 의결정족수를 넘겨 본회의 시각을 앞당기자, 추경호 원내대표는 “(우리 의원들이) 들어갈 시간을 줘야 하지 않냐”고 반발했지만, 의도적 시간끌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또한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간의 ‘비화폰 통화’도 의심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이들에게 표결 차단 지시를 내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12월 3일 밤, 추경호·나경원 의원과 각각 통화(1분, 40초)했으며, 통화 후 의총 장소가 변경된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청 특수단이 확보한 ‘비화폰’ 기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통화 이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6차례 전화해 “국회 들어가려는 의원을 모두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이 지시와 국민의힘의 표결 방해 움직임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 중이다.
특검은 단지 ‘의혹’을 나열하는 접근이 아닌, 정치적 결정과 물리적 행동이 헌법 절차를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구조적으로 입증하려고 한다. 단순한 개별 행위가 아닌, 대통령-여당 지도부-행정권력(경찰청) 간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정치적 명분보다는 ‘시간·지시·행위’의 축을 따라 실체를 재구성하고, 이는 향후 사법 판단의 기초 자료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란 혐의를 단순한 정쟁 의혹이 아닌 입증 가능한 절차 위반의 흐름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며, 그만큼 수사의 기술과 정밀성이 요구된다.
국민의힘 전략, ‘非고의성’과 ‘행위의 합법성’
국민의힘은 사법적 대응보다는 정치적 방어선 구축에 가까운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핵심은 ‘고의성 없음’과 ‘행위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이다.
첫째, 윤 대통령과 의원 간 통화에 대해 “계엄 선포 미통보에 대한 유감 표명 수준”이었다고 설명하며, 구체적 지시나 압박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둘째, 의총 장소를 세 차례 변경해 혼선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조직적 지연이 아닌 의원들의 동선을 고려한 행정적 판단”이라는 입장을 유지한다.
셋째, 계엄해제 표결에 불참한 의원들이 특정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각자 정치적 판단에 움직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조직적 방조나 공모 혐의를 부정하려는 논리로 보인다. 회피가 아닌, “절차적 숙의 부족으로 인한 혼선”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며, 의도적 방해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민의힘의 전략은 결국 특검이 입증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조직적 행위’ 프레임 자체를 무력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적 해석은 가능하되, 법적 입증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방어 논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입증할 책임” vs. “사법의 정치화”
특검과 국민의힘 사이의 실질적 쟁점은 ‘정당화’보다 책임 구조에 있다. 특검은 일련의 사건이 조직적 연계 아래 진행된 내란 방조 행위라고 판단하며, 이를 증거와 시간의 흐름으로 입증하려 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모든 의사결정이 개별 의원의 판단이었으며, 대통령의 직접 지시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사법의 정치화 프레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법적 책임 이전에 정치 행위가 헌법 절차를 무력화했는지 여부다. 특검은 그 절차를 재구성해 권력과 책임이 어떻게 분산되고 은폐됐는지를 추적하여 실체를 입증하려 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사실과 의도의 괴리를 강조하며 방어한다.
이번 수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정치권력과 사법권력 사이의 충돌에서 한쪽이 무너진다면 법적 책임 소재는 물론 정치적 부담까지 재편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