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언젠가 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밀 얘기와 함께 하려고 한다. 쌀과 밀이 우리의 주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쌀은 90% 넘게 자급하고 있지만 밀 자급률은 1%도 안 된다.

같은 주식의 위치에 있는데 극단적인 자급률을 기록하는 쌀과 밀을 보면 우리가 왜 식량주권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선 최근 논란이 되는 쌀값 상승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자. 

쌀 소비자가격이 20㎏ 기준 6만원이 넘어서 너무 값이 올랐다고들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KAMIS 농수산물 유통정보를 보면 주요 농산물의 시세를 알 수 있다. KAMIS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쌀 20㎏의 소비자가격은 6만538원이다.

쌀 20㎏은 밥 1공기당 100g으로 계산하면 200공기를 지을 수 있는 양이다. 대략 4인 가족이 1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연간 쌀 소비량은 1인당 55.8㎏으로 1달에 4.65㎏ 정도다.

그런데 쌀 20㎏ 가격이 1년 전 가격 5만1000원대에서 6만원대로 올랐다고 가계에 심각한 타격이 있는 물가변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말 식당에서 밥 한 공기를 1000원이 아닌 2000원에 팔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인가. 밥 한 공기 원가 300원이 마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인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일부 언론의 얌체짓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농산물은 가격의 오르내림이 심하기에 전년도 가격만 비교하면 그 흐름을 잘못 읽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쌀값 통계인 산지쌀값을 살펴보자.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정곡 20㎏ 산지쌀값을 8월 25일 기준으로 보면 4년 전인 2021년 5만4572원이었다. 이후 2022년 4만112원, 2023년 4만9245원, 2024년 4만4157원을 기록하다가 올해 5만4630원이 됐다. 결국, 현재의 쌀값은 4년 전 가격을 이제 회복한 셈이기도 하다.

이제 밀로 넘어가보자. 쌀은 자급률이 매년 90%를 넘는다. 어느 때에는 100%를 넘기도 한다. 그러나 제2의 주식이라 할 수 있는 밀은 정반대로 1%대의 자급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간 밀 소비량은 2023년 기준 1인당 35.7㎏에 달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서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품목성질별: 2020=100)를 보면 밀가루는 지난달 135.68을 기록했다. 2020년과 비교해 35.68% 소비자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한 경제 유튜버가 소금빵을 990원에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를 열어 최근 논란이 된 빵은 같은 시기 138.61이었으며 국수는 146.07에 달했다. 

국제 밀가루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급등한 뒤 현재는 상승 추세가 꺾여 안정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99% 밀을 수입하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뾰족한 정책수단 없이 치솟은 밀 가격을 바라만 보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크게 올랐다는 쌀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얼마일까. 지난달 쌀은 109.69를 기록하며 밀가루와 비교해 상당한 안정세를 나타냈다. 정부는 국내 시장의 큰 손이 되어 쌀값이 하락할 때는 쌀을 매입해 시장격리를 하고 쌀값이 오르면 시장에 쌀을 푼다. 이를 통해 밥상 물가의 기본인 쌀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쌀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여러 정책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근간에는 높은 자급률이 있다. 자급률을 식량주권과 결부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급률이 받쳐줘야 정부가 의미있는 정책수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부의 농축산물에 관한 중장기 비전의 핵심은 자급률 확충에 둬야 한다.

쌀 자급률을 유지하려면 농민들이 벼농사로 안정적인 가계를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쌀이 남아돈다며 벼농사를 함부로 흔들었다가는 전체 농업의 근간까지 흔들릴 수 있다. 한편, 제2의 주식인 밀은 자급률을 끌어올릴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국산밀이 유통될 수 있는 안정적인 판로 구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판로가 있다면 밀 농사 확대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물가정책이라 할 수 있다. 고물가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자극해 인위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도록 유도한 뒤, 그 틈바구니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장사치들에게 정부의 물가정책이 휘둘리는 우를 반복하지 말고 제대로 된 식량 자급률 확충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