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 그 너머를 말하다 –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주소와 과제’ 토론회는 청년 세대가 직접 발제자로 나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대학생들의 시선에서 도출된 문제 인식과 대안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단초를 던졌다. 투데이신문은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이번 논의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12·3 비상계엄은 국회의 신속한 해제와 광장에 나선 시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자신들을 1980년대 독재정권의 후신인 백골단으로 지칭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등장했다. 일부 극우 세력은 서부지법에 난입해서 법원을 때려 부수고 기자, 경찰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거리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와 ‘윤어게인’을 주창하는 이들로 붐볐다. 한편에는 자신들을 ‘합리적 보수’라고 지칭하는 청년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조기 대선 기간 동안 자극적인 이슈로 지지층을 끌어모으려는 모 정치인을 지지했다. 해당 집단의 특징은 기존 사회를 비판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대신 대변자가 출몰하길 기다리며, 동시에 현 사회의 정책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의 양상에 대해 ‘대중의 열정을 끌어모아 국민적 집결을 강화하는 데로 돌리는’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백골단과 서부지법 폭동처럼 극단주의 정서를 가지고 정치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위에서 설명한 ‘합리적 보수’ 청년들 또한 존재한다. 두 집단이 시작된 뿌리는 다르지만, 현사회에 파시즘이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이 두 집단이 그 핵심이 아닐까? 더 이상 썩은 부분을 발굴하고 도려내는 작업을 미룰 수 없다. 하여 필자는 청년의 시선에서 이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근현대사박물관 박물관을 살펴보며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근현대사박물관 박물관을 살펴보며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파시즘의 조건들

파시즘은 어느 순간 느닷없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과 조건이 맞물렸을 때 비로소 등장한다. 파시즘이 등장하는 첫 번째 조건은 대중 정치다. 1848년 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성인 남성에게 선거권이,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됐다. 대중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설 곳을 잃게 된 좌파가 분열하고, 우파의 시민 정치 참여 관리 실패 등으로 명확한 정치적 대안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사회적 불안, 국가적 굴욕이 겹치면 성장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등으로 혼란했고, 정부는 사회질서를 바로 잡지 못했다. 그러자 지주와 자본가들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솔리니가 조직한 ‘검은 셔츠단’이라는 무장단체와 손을 잡았다. 이들을 좌파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상류층의 후원을 확보했으며, 무솔리니는 그 덕에 수상에 임명될 수 있었다. 엘리트들이 체제 안정을 위해 파시즘을 정치권에 수용한 것이었다.

보수 엘리트 세력의 묵인과 협력 역시 파시즘을 키운다. 히틀러와 나치도 유사하게 득세했다. 경제 대공황과 정치적 불안,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가 퍼진 독일에서 민족주의와 반공 메시지로 지지를 모았다. 이들을 도구라고 생각했던 군부, 정치적 파트너로 여긴 보수 정치인 등의 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성과 급진성을 묵인하고 협력하며 그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파시즘은 적을 규정한 후 동지를 규정하며, 지향하는 이념이 없다. 파시즘은 ‘순수한 공동체’를 향한 열망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인가’ 보다는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방식으로 공동체 내 인원을 솎아낸다. 그렇게 외부의 적을 만듦으로써 파시즘 체제의 유지라는 명목으로 강력한 통제와 폭력이 용인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시즘 운동은 다양한 사회 세력과 연합하며 제도 안으로 흡수돼왔다. 폭력적 장악에 앞서 기존 세력과 결탁하고, 그 언어와 행위가 ‘정상 정치’로서 제도 안에 자리 잡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은 지금 어떨까? 한국은 파시즘으로부터 안전할까?

한국 사회의 파시즘: 혐오의 정동 정치

우리 사회의 파시즘을 설명하려면 우선 ‘정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동이란 다른 특정 집단이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주장의 논리와 사실보다는 즉각적이고 강한 감정으로 각인시킨다다. 특히 보수 및 극우의 세력화 과정에서 이들은 부정적 정동을 활용해 외부의 집단을 타자화하고,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을 증가시켜 대중의 정치적 행동을 유도한다. 혐오의 정동이 개인을 넘어 대중의 집단의식으로 확산되면 파시즘의 토양이 마련된다. 필자는 본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혐오 정동으로 혐중, 안티 페미니즘, 성소수자 혐오를 꼽았다.

첫 번째는 혐중이다. 2017년 사드 사태, 미세먼지 확산, 코로나19 발발은 기존의 반중 정서가 혐중으로 치닫는 계기가 되었다. 김치, 한복, 연예인의 발언 등으로 시작된 한중 네티즌 간 갈등으로 인해 혐중 의식은 점차 청년 세대를 향해 확산됐다. 어느 순간 혐중 의식은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보편적인 혐오 정동 중 하나가 됐다. 우리는 SNS에서 젊은 세대를 타겟팅한 ‘젊고 트렌디한’ 혐중 콘텐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컨대 국내 의사들의 70%가 화교 출신이라거나, 대학의 화교특별전형이 있다는 가짜뉴스, 혹은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들이 화교 출신이라는 가짜뉴스 말이다. 중국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럴만한’ 현상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수령한 귀화 이주민이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리자 그에게 무수한 인종혐오적 사이버 불링이 쏟아졌던 사례가 있다. 누리꾼들은 “니가 뭔데 한국 세금을 써서 뿌린 걸 쓰냐”, “아까운 내 세금” 등의 댓글을 달았으며 욕설·비하와 인종차별성 발언들도 이어졌다. 이렇듯 혐중 정동은 정치적으로 악용되며 공동체 전반의 집단이기주의와 배제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안티-페미니즘 의식 역시 무시할 수 없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가 지속되면서 한국 사회는 백래시 물결로 흔들렸다. 안티-페미니즘은 주류 정치인들에게 실천적 전략으로도 이용됐다. 윤석열 역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이는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준석 역시 안티-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청년 남성의 대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6.3 대선 직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 법 규칙을 어기거나 무력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문항에 대해서 이재명 투표자는 8%가 동의한 반면, 김문수 및 이준석 투표자의 동의 비율을 20%를 상회했다. 안티-페미니즘 의식이 파시즘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혐오 정동이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동은 주로 성별 이분법과 가부장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안티-페미니즘과 결합한다. 보수 우파 뉴미디어 혹은 종교 단체에서도 핵심적인 정치적 동원 전략으로 선택되고는 한다. 한편, 최근 들어 청소년 및 청년 여성 집단 내에서는 다른 구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페미니즘적 실천의 하나로서, SNS를 중심으로 트랜스젠더 (및 성소수자)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언동들이 적잖게 보이고 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를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정신병자’ 취급하며 이들에 대한 분노, 공포, 혐오 등 부정적인 정동을 거리낌 없이 배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티-페미니즘에 대항하는’ 운동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상은 이 또한 혐오 정동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정동 정치의 재료들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극우 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극우를 표방하지 않는 미디어에서도 혐오 정동을 활용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며,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유통되면서 대중의 일상과 의식 저변에 확산된다.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중국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맞고 페미니즘은 공정하지 않은 사상이고 트랜스젠더는 이상한 존재라는 생각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합리화된다. 정치인들은 소위 '극단주의자'들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자신의 지지기반을 위해 이러한 정동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광기의 행동 체계에서 보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법을 배우는 식으로 변모를 거듭해가며 영향력을 키웠다. 합리로 포장된 혐오의 정동이야말로 파시즘적 경향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lt;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 주소와 과제&gt; 토론회에서 파시즘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br>
▲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 주소와 과제> 토론회에서 파시즘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공존을 넘어 대항으로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필자는 파시즘에 대항할 것을 제안한다. 파시즘에 대한 대항은 해당 세력을 척결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동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선, 혐오 정동의 먹이가 되는 혐오 표현을 끊어내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종교,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이유로 합리적인 차별을 받는 것을 막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모든 생활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모든 일상 생활 속 혐오를 막아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의 혐오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안전지대를 확보함으로써 혐오 표현을 끊어낼 수 있기에, 차별금지법 제정은 중요하다.

다음으로, 다당제 중심의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혐오 정동을 활용하는 정치세력이나 극단주의 세력을 고립시키거나 배제하는 전략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양당 구도로 고착되어있다. 양당제 구조에서는 정책 경쟁이 협소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중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하고 정치세력의 문제해결능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다당제를 촉진하는 결선투표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가 필요하다(하승수, 2025).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파시즘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은 경제적 위기와 사회 불안정이 닥쳐오는 때이다. 독일대안당(AfD, 독일의 극우 성향 정당당)의 등자과 트럼프의 당선 이유 또한 금융위기와 소득 감소라고 한다. 한국의 현재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경제적 불안도가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재분배라는 해결책을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를 먼저 느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통해 사회에 안정성을 부여하고, 최소한의 소득 보장을 권리로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생계의 안전은 공적 활동 참여로 이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만으로 파시즘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파시즘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 파시즘 대항의 핵심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서로를 적으로 상정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 인식하는 데 있다. 더 나은 삶과 공동체를 함께 그릴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혐오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파시즘에 단호히 대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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