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 그 너머를 말하다 –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주소와 과제’ 토론회는 청년 세대가 직접 발제자로 나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대학생들의 시선에서 도출된 문제 인식과 대안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단초를 던졌다. 투데이신문은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이번 논의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80년대 군부독재 이후 막대한 희생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것이 무색하게 십수 년 만에 다시금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계엄 직후 총학생회가 보내온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학우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비하겠다는 공지문은 그 다음으로 당혹스러웠다. 윤석열 불법계엄 규탄 및 퇴진 요구를 위한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에서 특정 ‘정치 단체’의 깃발 등 본 집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물품은 반입이 금지됐다. 탈정치를 표방한 대학의 행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고 대학의 이름값만 담긴 깃발만 나부꼈다.
학내 게시판에 붙은 계엄을 비판하는 자필 대자보는 훼손되기 일쑤였고, 그 속을 ‘전국 대학생 중립 연합’ 인쇄물이 갈음했다. 대학은 불법계엄 규탄 집회에 참여했음에도 혐오의 언어로 계엄을 옹호하는 탄핵 반대 시국선언에 별다른 대응도 하지 않았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동안 학내 인권자치기구들에 대한 공격과 백래쉬는 심화되었고 존폐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결국 조기 대선 이후 대학생에게는 ‘청년세대 극우화’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됐다. 2030 청년층 다수가 불법계엄을 옹호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극우 정치인 또는 안티페미니즘을 활용한 한국형 인셀을 대안으로 삼았다.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대학은 민주주의 공론장으로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평등을 약속한 탄핵 광장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꿔온 이들에게 파면 이후 더욱 거대한 질문들이 놓여 있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체감한 링커(링크로스 참가자)들은 연결되고자 했고 각자가 품은 질문에 응답하며 공동의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려 했다. ‘민주주의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최초의 아테네 민주주의를 돌아보며 민주주의의 조건들을 탐색했고, 현존하는 대의민주제의 한계와 딜레마를 짚어보며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적 장소들을 방문했다. 더 나아가 구조적 부정의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책임을 공부하며 이태원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세월호참사 국가 책임 판결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참여하여 연대하고자 했다. 최종적으로 링커들은 그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국회 토론회에서 각자의 문제의식과 대안을 풀어나갔다.
사실상 혐오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 공론장, 극우파시즘의 폭력, 공공연한 안티 페미니즘 그리고 대학에 찾아온 백래쉬를 비롯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극우화와 맞닿아 있다. 막연하게 우경화된 청년 세대를 타자화하거나 악마화하려는 시도는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정태일(2009)은 20대 탈정치화를 양극화와 청년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취약성과 대안정당 부재와 거대 야당의 독점적 정치구조로부터 야기되는 정치적 무력감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청년 세대의 탈정치화 현상 극복의 해답을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기반 마련으로 모색한다.
오늘날 유럽과 북미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주류화된 극우는 소수자 권리를 억압하고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약화시키며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저자 카스 무데는 그간 전형적인 극우지지자들이 저학력, 백인, 남성 그리고 그들은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게 화나있는 사람으로 정형화됐다면, 이제는 그 양태가 다양해져 극우지지자들이 반드시 경제적으로 소외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올해 실시된 시사IN·한국리서치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와 그 분석 또한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는 기존 통념과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불평등 심화에 불만을 지닌 하위 계층이 극우화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청년 남성들이 기득권을 빼앗긴 것에 저항해 극우화됐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과 혐오를 내세운 파시즘 정치는 경제적 불안정성에 의해 급증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마땅한 대안이 등장하지 않을 때 파시즘이 자리 잡았던 역사가 있다. 유럽의 경우 많은 우익포퓰리즘 정당들이 지리적으로 주변에 위치했던 농촌지역의 피해의식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있다. 범죄나 이민 같은 사회·문화적 문제를 주로 다루는 ‘틈새정당’으로만 여겨졌던 우익포퓰리즘은 이제 더는 비주류가 아닌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불안과 문화적 반발로 인한 그들의 박탈감을 해소해줄 진정한 대안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안티페미니즘을 등에 업은 정치인이 극우집단의 대안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리고 극우의 선전은 더욱 교묘해져 외국인 혐오와 이민 배척주의에 페미니즘을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페모내셔널리즘, 즉 페미니즘적 주제들(여성인권과 반성폭력)을 반이슬람 캠페인과 반이민 캠페인에 이용하고, 성평등의 이름하에 이슬람 남성들을 지탄하고 낙인찍는 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을 끌어들인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수용 당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난민 추방을 요구했던 사례가 이와 다름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혐오와 차별의 정치를 넘어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갈 대안이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냉소와 정치 혐오를 깨고 공동체와 연결되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에 관한 공유된 책임을 인정하고 함께 짊어지려는 청년들이 국회토론회 공론장에서 각자의 대안을 나누며 그 시작이 이루어졌기를 바라본다. 더 나아가 청년들이 나름의 해답을 얻고 장차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정치적 책임을 실천하며 연대의 지평을 넓히리라 믿는다.
[참고문헌]
정태일. (2009.03.). 20대의 탈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논의. 50. 한국동북아논총. 331-353
카스 무데(2021).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권은하 역). 위즈덤하우스. (원본 출판 2019)
시사IN. 2025.07.02. 2030 이준석·김문수 투표자는 무엇이 달랐나[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9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