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땀구: 보이지 않는 헌신 ‘요양보호사’

3교대·1인당 8명 담당하는 고강도 노동 수행
어르신 이어 보호자 응대도…성폭력에도 노출
마음의 상처 큰 직업…“치유 프로그램 절실”
“모두가 필요한 돌봄…존중으로 변화해가야”

여성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허리를 숙여 청소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몰래 주무르며 목소리로 감정을 조절해 현장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들. 그러나 이들의 몸은 그만큼 상하고 여전히 소외돼 있다.

여성 노동은 단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쉬운 일’로 치부되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여성땀구생활] 기획을 통해 ‘일하는 몸’을 거울 삼아 여성 노동의 특수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밝은 미소 속에 감춰진 거칠고 버거운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며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요양보호사 이은복씨의 직장동료가 어르신을 케어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본인]
요양보호사 이은복씨의 직장동료가 어르신을 케어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본인]

본 기사는 요양보호사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취재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나 아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살아가는 인생이다. 나 이은복(60)은 8년 차 요양보호사로, 오늘도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돼 드리고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되는 기저귀 교체와 식사 보조 등 어느하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르신이 미소를 지으실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힘든 순간도 많지만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존중과 돌봄으로 함께한다는 사명감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땀의 기록 1.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삶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근무는 3교대로 돌아간다. 오전조는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이어지고 오후조는 오후 1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어르신 곁을 지킨다. 야간조는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근무한다. 

8시간의 근무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32명의 어르신을 요양보호사 4명이 함께 맡고 있다. 1인당 8명 이상을 돌보는 셈인데, 식사 보조부터 기저귀 케어, 목욕 지원, 프로그램 참여 보조, 산책 동행, 보호자 면회 응대까지. 어르신의 손발이 돼야 하는 일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침 식사 전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밤에 곤히 잠드는 순간까지 어르신 하루의 전 과정이 곧 우리의 업무가 된다.

하루 종일 어르신 곁을 지키다 보면 내 몸이 점점 무너져 가는 소리를 듣는다. 장시간 서서 몸을 부축하고 휠체어를 끌고 잠시라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어깨는 늘 뻐근하고 허리는 근육통이 자리한다. 팔목과 손가락 관절은 계속해서 힘을 쓰느라 저릿저릿하고 오래 서 있다 보면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종아리는 돌처럼 단단히 굳어 버린다. 특히 남성 어르신을 케어할 때마다 체구와 힘에서 차이가 나 체력적 부담이 훨씬 크다. 더욱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저항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많은 힘을 소비해야만 한다.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반복 속에서 결국 허리와 디스크 손상은 흔한 일이 된다. 올해만 해도 동료 세 명이 허리 디스크로 병가를 냈고 그중 한 명은 수술까지 받고 산재 신청을 진행 중이다. 나 역시 물리치료와 침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 회복할 여유는 없어 늘 치료와 근무를 동시에 이어가는 생활이 반복된다.

특히 요양보호사 초반 1~2년 차에는 부상 위험이 가장 크다. 몸을 어떻게 써야 덜 다치는지 미숙하다 보니 무거운 몸을 그대로 떠안다 부상을 입기 쉽다. 그렇게 다친 몸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통증은 고질병처럼 따라붙어 시간이 지나도 잔상이 남듯 꾸준히 치료를 요구한다.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을 온 몸에 새겨 넣는다.

요양보호사 이은복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요양보호사 이은복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땀의 기록 2. 정작 내 몸은 망가져 간다 

근골격계 질환만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요양보호사의 일터는 단순히 ‘돌봄의 현장’이 아니라 늘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 요양시설에서는 결핵 보균 어르신이 계셔 요양보호사들이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고 결국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보건소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전 직원이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했으며 언제든 잠재적 보균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또한 밀착 돌봄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옴(Scabies) 감염은 단순한 피부 가려움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인보다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옮길 수 있다는 공포가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그 위험이 극대화됐다. 센터 일부는 격리 공간으로 바뀌고 요양보호사들은 사실상 24시간 시설에 상주하며 어르신들을 지켜야 했다. 귀가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의료진의 헌신은 조명받았지만 요양보호사들의 고된 노력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됐다. 서러운 현실이었다.

더욱이 요양보호사들의 상당수는 50~60대다. 나도 그렇다. 이 연령은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젊은 층보다 떨어지고 한번 아프면 회복 속도도 더디다. 작은 병도 쉽게 지나가지 않고 오래 남는 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간까지 이어지는 3교대 근무는 몸을 더욱 지치게 하고 결국 우리의 건강을 한층 더 취약하게 만든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끊임없이 위험과 맞서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자 누군가의 삶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어놓는 고단한 여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땀의 기록 3. 가볍게 치부되는 ‘요양’의 무게 

나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몸의 고단함보다 마음의 상처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몸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회복된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고 더 깊어지는 듯하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된다.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 속에 전문성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서럽다. 그러다 보니 보호자뿐 아니라 종사자인 나 스스로도 이 일을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언론은 대부분 ‘노인 학대 사건’ 같은 자극적인 사건만 비춘다. ‘학대’와 ‘폭력’이라는 단어 뒤에 숭고한 헌신과 눈물은 감춰진다. 우리가 쌓아온 노력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오히려 왜곡된 시선은 상처로 돌아온다.

현장에서는 인권 침해 또한 비일비재하다. 피부가 약하고 혈관이 쉽게 터지는 어르신들의 특성상 작은 멍은 흔히 발생한다. 하지만 종종 보호자들은 그조차 학대로 의심하며 CCTV 확인을 요구한다. “우리는 어르신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부모는 멀쩡하다”는 말로 책임만을 전가받는다. 그럴 때면 ‘우리에겐 인권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우리는 몸을 쓰는 노동자이자 동시에 감정을 쓰는 노동자다. 나는 동료들의 변화를 자주 목격한다. 예전엔 온화하고 다정했던 사람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진다. 그것은 곧 마음이 다쳐가는 과정일 것이다.  몸이 힘들 때는 서로 기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플 때는 혼자가 된다. 꾹꾹 눌러 담아도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마음을 돌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요양보호사도 결국은 사람이다. 우리가 무너져간 채로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돌봄을 줄 수 없다. 제도적 지원이 마련돼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우리가 건강해야 어르신들의 삶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나의 간절한 호소가 사회와 제도 속에 닿길 바랄 뿐이다. 

요양보호사 이은복씨 동료의 병원 소견서. [사진제공=본인]
요양보호사 이은복씨 동료의 병원 소견서. [사진제공=본인]

땀의 기록 4.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현실 

마음의 상처는 비단 사회적인 시선만이 아니다. 우리는 성폭력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특히 여성 요양보호사들은 남성 어르신들로부터 당하는 성적 추행이나 폭언, 폭행 앞에서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과거 남성 어르신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려는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의도적으로 신체를 접촉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때의 수치심과 굴욕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더 힘든 건 이런 일을 겪고도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창피하다”는 생각 혹은 “말해서 보호자들의 반발을 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은 침묵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속으로 삼키고 잊으려 애쓰는 게 더 편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게 쌓이다 보면 마음이 점점 무너져 가기 마련이다.

일부 요양보호사들은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매일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고 애써 지워내며 또 다른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나도 기관 차원의 보호나 대응 체계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성추행이나 폭행 피해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고 심리적 충격을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결국 우리는 ‘감당하는 사람’으로만 남는다.

우리 요양원에는 요양보호사가 32명 있지만 그중 남성 요양보호사는 단 1명뿐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남성 어르신 돌봄까지 여성 요양보호사들이 맡고 있다. 여성 요양보호사가 성별 상관없이 여러명을 돌봐야 하는 구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체적 위협에 더 쉽게 노출되고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운 현실 속에서 수많은 요양보호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일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다.

땀의 기록 5. 보상도, 휴식도 부족하다 

돌봄이란 단순히 손발을 움직여 하는 일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존엄을 지켜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의 마음과 헌신에 비해 처우는 너무나 열악하다. 제도적 지원도 부족해 늘 “이 일이 과연 존중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우리의 임금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만 겨우 따라 올라가는 구조다 보니 기본급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받는 건 야간이나 휴일 수당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노동 강도와 책임을 생각하면 너무 부족하다. 매일같이 어르신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하는데, 사회는 그 가치를 최저임금에만 가둬놓고 있다. 일부 큰 기관은 노동조합이라도 있어 매년 협상을 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더욱 열악하다.

인력 충원 요구도 오래전부터 외쳐왔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외주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간다. 오전·오후조에는 1시간, 야간조에는 2시간의 휴게 시간이 배정돼 있지만 언제든 호출에 대비해야 하기에 편한 휴식을 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몸은 의자에 기대어 있어도 귀와 마음은 늘 어르신 쪽으로 열려 있는 셈이다.

특히 야간 근무 때 인력 부족에 대한 고충이 크다. 근무 인원이 적다 보니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고 효율적이게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우거나 침대에서 옮길 때는 사실 두 명 이상이 붙어야 안전한데, 현실은 혼자 감당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늘 같은 마음이다. 내가 다치더라도 어르신은 다치지 않아야 한다라는 마음. 그래서 때로는 몸으로 어르신을 감싸 안고 함께 넘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나 자신은 늘 뒷전이고 안전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진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땀의 기록 6. 또 다른 이름의 ‘가족’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기술로만 되는 게 아니다. 의사나 간호사처럼 전문적인 치료나 처치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요양보호사는 그보다 더 깊이, 마음을 움직이는 돌봄을 하고 있다.

어르신이 내 손을 꼭 잡고 “고마워”라고 말씀하실 때 그 한마디가 하루의 피로를 다 잊게 해준다. 부모님 또래 분들을 돌본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더 가고 의식이 희미한 어르신을 뵈면 안쓰럽고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긴다.

사실 어떤 분들은 요양원에 계시면서 스스로 버려졌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를 가족 이상으로 여기며 마음을 열어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부심이 커진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사람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나누는 일이기에 그 가치를 사회가 더 인정해주고 우리 처우도 그에 걸맞게 개선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사실 돌봄은 우리 모두의 미래다. 언젠가 나 역시 노인이 되고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가 돼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이 목소리가, 우리의 삶을 바꿀 작은 시작이 되기를.

요양보호사의 질환을 나타낸 표. [일러스트제작=김민수]<br>
요양보호사의 질환을 나타낸 표. [일러스트제작=김민수]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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