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장식품으로 전락한 청년 정치인
청년 ‘과소대표’…국회·지방의회 한자릿수
‘청년 정치 1세대’ 명암, 제도권 안착은 소수
청년 정치 생태계 구축 위한 근본적 개혁 필요

‘청년 정치’라는 말은 특정 세대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1980~90년대부터 점차 자리 잡은 표현이다. 그런데 중년 정치, 노년 정치는 없는데 유독 청년 정치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회자되고 고유명사화된 이유가 있을까. 

사실 ‘청년 정치’라는 명칭은 청년들이 스스로 규정한 자기 호칭이 아니다. 이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그들의 시각과 잣대에 따라 청년이라는 세대를 갖다 붙여 기성 정치의 단점과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의미가 더 짙다. 

그래서 청년은 늘 변화와 미래의 상징으로 기성세대의 필요에 따라 소비돼 왔다. 기성 정치권은 그들이 곤궁에 처했을 때 청년 정치를 내세워 돌파구를 마련하곤 한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청년을 버렸다.

이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청년 정치인을 만나볼 수 없었던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결국 청년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구호와 장식물로 소비돼 왔을 뿐이다. 투데이신문은 심층기획 ‘청년팔이 정치’를 통해 청년 정치가 처한 구조적 모순과 현장의 목소리에서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지난 3월 20일, 국민연금 개혁안이 1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곧바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기금 고갈로 인해 미래세대가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자 비판이 쏟아졌고 특히 20·30세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배경에는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사실상 배제되다시피 한 청년 정치인의 부재가 자리한다. 이는 오늘날 청년 정치의 암담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만약 청년 의원들의 참여가 정책수립 과정에서부터 실질적으로 보장됐다면 논의의 방향과 최종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주권을 가진 시민이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작동하는 대표제(대의) 민주주의가 청년 대표성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현재 한국의 2030세대 청년 인구는 전체 인구 대비 약 24.59%지만 제22대 국회에서 청년 의원은 전체 의석 중 4.67%에 불과하다. 100명을 기준으로 볼 때 청년은 24명에 해당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고작 4명에 불과하다. 이런 기형적 구조는 청년의 미래를 암울하다 못해 참담하게 만드는 결정적 기제가 된다. 더욱 서글픈 것은, 그저 기성 정치인이 청년을 ‘위해’ 던져주듯이 받아먹는 그 ‘파이’가 커지기만을 앉아서 바랄 뿐이다.  

청년 정치를 향한 공허한 외침

청년 정치인은 언제나 ‘소수자’로 존재해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39세 이하 청년 당선자는 평균 3.83%에 그쳤다. 22대 총선(2024년) 14명, 21대 총선(2020년) 13명, 20대 총선(2016년) 3명, 19대 총선(2012년) 9명, 18대 총선(2008) 7명, 17대 총선(2004) 23명, 16대 총선(2000)에선 13명으로 선거 때마다 편차는 있었지만, 청년 비율은 늘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50대 의원은 평균 48.6%로 절대 다수를 차지해 청년 정치의 소외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다고 평가되는 지방의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제1회부터 제8회까지 지방의회의원 선거에서 39세 이하 청년 당선자는 광역의회의원 7.92%, 기초의회의원 7.94%에 그쳤다. 반면 50대는 각각 32.53%, 44.61%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지방의회 역시 청년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으로 남아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 청년 정치인은 ‘기근 상태’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보고서 2025’에 따르면, 22대 총선 기준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40대 미만은 4.7%에 불과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기성세대 중심으로 이뤄진 정치적 의사결정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인 합의와 정의를 훼손하고 세대 간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청년이 과소 대표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지금과 같은 왜곡된 정치 구조는 극단적 행태로 이어지고 정치 혐오와 무관심을 키우며 청년들을 정치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연구보고서 ‘청년 정치참여 현황과 개선과제’에서 이정진 입법조사관은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다른 연령층에 비해 정치참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인식돼 왔다”며 “이는 청년들이 사회 초년생으로서 취업이나 주택 문제 등에 직면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의회나 정부기관의 구성에서 청년 비율이 낮아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워 정치적 효능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3년 9월 12일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경북 경산시 대구대학교 웅지관에서 ‘대한민국 미래·청년 그리고 정치’를 주제로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3년 9월 12일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경북 경산시 대구대학교 웅지관에서 ‘대한민국 미래·청년 그리고 정치’를 주제로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1세대 청년 정치인의 기대와 몰락

이 같은 현실에서도 청년 정치는 세대교체의 시대적 요구이자 사회 통합의 상징으로, 비례대표·지방의회를 통해 명맥을 이어왔다. 이른바 ‘청년 정치 1세대’로 불리는 이준석, 김광진, 손수조, 류호정 등은 독자적 기반이라기보다 정당의 전략과 기성 권력의 역학 속에서 성장했다.

‘박근혜 키즈’로 주목받았던 이준석은 헌정사상 첫 30대 제1야당(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윤리위 징계와 당내 갈등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청년 정치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그의 행보는 청년의 대변자라기보다 갈라치기와 혐오, 갈등 유발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기성 정치의 반복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광진 전 의원은 당시 최연소 의원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군 복무·국방 관련 의정활동에서 꼼꼼한 자료 준비와 날카로운 질의로 이름을 알렸지만 재선에 실패하면서 ‘청년 정치인’으로서의 독자적 존재감은 점차 옅어졌고 당내 인사로 흡수된 전형적 사례로 평가된다.

같은 해 부산 사상구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손수조는 당시 27세라는 나이와 ‘문재인 대항마’라는 타이틀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참패였다. 이후에도 총선과 지방선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그는 장례지도사 자격을 취득하는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가 최근에는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으로서 다시 현장 정치에 뛰어들었다. 화려한 ‘청년 정치 스타’로 출발했지만 제도권 안착에 있어서는 어려운 여정을 겪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정의당 비례대표로 2020년 국회에 입성한 류호정은 IT 기업 노동자 출신으로, ‘청년 여성 노동자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국회 등원 첫날 원피스를 입고 출근한 모습이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의정활동보다 외모와 패션으로 주목받는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후 게임산업, 노동 관련 입법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지만 정의당 지지율 하락 속에 입법 성과도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청년’이라는 자산을 꾸준히 성과로 전환해온 사례로는 더불어민주당 전용기·장경태 의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제도권으로 진입해 기성세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 정치적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21·22대 국회 연속 최연소 의원으로, 학생운동이나 기성 인맥이 아닌 당내 ‘오디션형’ 청년 비례 선발로 주목받았다. 이후 낙선·배제의 전형을 비켜가며 꾸준한 의정활동으로 존재감을 넓혀온 드문 사례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도 대표적 청년 정치인으로 꼽힌다. 20대 후반부터 당 청년위원장·청년대변인을 맡아 조직 안에서 성장했고 2020년 총선 때 서울 동대문을에서 당선돼 30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청년 의제는 물론 교육·노동·사회정책 전반을 다루며 입지를 넓혔고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면서 청년이 당 권력 구조 안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에서 청년은 여전히 ‘예외’로 존재한다. 각 당의 전략 속에서 소비된 1세대 청년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 토사구팽되거나 용도폐기 되는 등 버림을 받는 게 예사였다. 이는 청년 정치가 독자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지난 8월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외곽 토르 베르가타 광장에서 열린 '젊은이의 희년' 미사 행사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미사를 집전하는 동안 한국 청년 순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nbsp;<br>
지난 8월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외곽 토르 베르가타 광장에서 열린 '젊은이의 희년' 미사 행사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미사를 집전하는 동안 한국 청년 순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청년 정치 멸종 혹은 기회의 시대

청년에게 정치판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훈장’을 가슴에 붙이고 정치권에 화려하게 진입한 586세대와 달리 지금의 청년 세대는 정치를 밑바닥에서부터 경험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만큼 제도권 진입의 벽이 높다. 

기탁금과 선거비용의 장벽, 기성세대 중심 문화와 권력구조의 배제, 미비한 법·제도와 정당 시스템 속에서 청년 정치인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청년 정치인의 생존은 기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처럼 “청년은 필요할 때만 불려나오는 들러리”가 되기 쉽다. 선거철에는 ‘간판’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 위기를 단순히 청년 정치 ‘멸종의 시대’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청년 정치의 실패와 좌절을 반복적으로 목격한 만큼 이제는 이를 토대로 독자적인 청년 정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정당과 기성세대의 들러리가 아닌 청년 스스로 성장하고 실패를 흡수할 수 있는 탄탄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 정치 1세대가 ‘토사구팽’과 ‘용도폐기’의 역사로 남았다면 이제 2세대 청년 정치는 독립과 자기정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단발적 이벤트로서의 영입이 아니라 청년 정치인이 장기적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그 출발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근본적 개혁이다. 정치 자금·공천·교육을 아우르는 구조적 지원체계를 갖춰 청년을 제도권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청년이 단순히 미래 정치의 ‘후보군’이 아니라 현재 정치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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