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하향·추천보조금…“걸음마 수준의 제도 개선”
정당 청년조직, 이름만 있고 권한은 여전히 부족
주요 선진국, 체계적 시스템으로 청년 정치인 양성
독일식 모델 ‘권한·재정·독립성’으로 변화 이끌 수 있어

‘청년 정치’라는 말은 특정 세대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1980~90년대부터 점차 자리 잡은 표현이다. 그런데 중년 정치, 노년 정치는 없는데 유독 청년 정치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회자되고 고유명사화 된 이유가 있을까. 

사실 ‘청년 정치’라는 명칭은 청년들이 스스로 규정한 자기 호칭이 아니다. 이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그들의 시각과 잣대에 따라 청년이라는 세대를 갖다 붙여 기성 정치의 단점과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의미가 더 짙다. 

그래서 청년은 늘 변화와 미래의 상징으로 기성세대의 필요에 따라 소비돼 왔다. 기성 정치권은 그들이 곤궁에 처했을 때 청년 정치를 내세워 돌파구를 마련하곤 한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청년을 버렸다.

이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청년 정치인을 만나볼 수 없었던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결국 청년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구호와 장식물로 소비돼 왔을 뿐이다. 투데이신문은 심층기획 ‘청년팔이 정치’를 통해 청년 정치가 처한 구조적 모순과 현장의 목소리에서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미지 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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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척박한 청년 정치의 토양을 일구기 위해 여러 제도적 개선이 추진돼 왔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직까지 제한적이며 여전히 청년은 정치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동안의 청년 정치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 개선을 살펴보면 국회는 2021년 12월 31일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의 피선거권 연령을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이어 2022년 1월 11일에는 정당 가입 연령을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완화했다. 같은 해 2월 14일에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청년추천보조금 제도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후보자의 10% 이상을 만 39세 이하 청년으로 추천한 정당은 추가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이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다. 단순히 연령을 낮추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는 청년의 실질적 정치 참여를 보장하기 어렵다. 영국·독일 등은 법·제도와 더불어 청년 정치인을 체계적으로 발굴·육성하는 교육·훈련 시스템을 오래전부터 정착시킨 반면 한국의 제도적 장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단순히 법령을 고치는 차원을 넘어 청년 정치가 실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한국형 청년정치 모델은 어떤 방향으로 준비되고 설계돼야 할까.

바꾸고 바꿨지만…체감은 아직

청년의 대표성과 정치입문 확대를 위한 제도적 개혁은 크게 청년 정치의 ‘유입’(참여 저변 확대)과 ‘산출’(당선·진입 확대)로 나뉜다.

박선경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는 청년 정치 활성화를 위한 변화는 어디까지 왔는가? 청년 정치 담론과 제도 개혁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일반 청년 시민의 참여를 더 많이 늘리기 위한 목적과 정치엘리트 차원에서 청년 예비정치인을 양성하고 청년 정치인의 당선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 따라 청년 정치 제도를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의 경우 투표 연령 하향, 정당 가입 연령 하향 등이 해당되고 후자의 경우 청년 공천할당제, 선거 기탁금 및 반환요건 완화 등이 이에 속한다. 박 부교수는 “이러한 변화는 과거 청년이 단발적 인재 영입 수단에 그쳤던 상황과 비교하면 진전이라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청년 정치가 활발한 해외 사례와 견주면 여전히 중요한 개혁 과제가 적지 않은데 우리 현실에서는 실현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청년을 비롯한 다양한 배경의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는 점과 IPU나 유엔개발계획은 공천과정에서 청년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강제요인도 청년 정치인 양성에 기여한다고 보고 청년할당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국내 역시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청년 정치 활성화를 위해 비례대표제 강화와 공천제도 개혁이 거론되지만, 이 같은 큰 제도 변화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짚었다.

또한 청년 정치 지원 제도를 법제화 여부로 나눠보면 현재 법제화돼 시행되고 있는 청년정치 발전기금, 청년추천보조금, 투표·출마 연령하향과 그렇지 않은 제도인 청년할당제로 나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가느냐는 점에서는 이들 모두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연구가 대다수다.

청년이 정치를 하고 싶어 정당에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정치인으로서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역시 아직까지 부족한 상태다. 

비영리 단체 뉴웨이즈가 발간한 보고서 ‘젊은 정치인 육성 및 지원을 위한 쟁점과 과제-법제도 개선방안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당헌·당규에 청년위원회와 청년당을 병기하고 청년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청년위원회를 직선제로 바꾼 정도 외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된다. 국민의힘은 2020년 ‘청년 국민의힘’을 출범시켰지만 여전히 독자적인 의결권과 사업편성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오랫동안 비교적 대학생 조직이 탄탄했던 것으로 알려진 진보정당계열(민주노동당 및 그 계보를 잇는 정당들)은 기존의 학생운동조직이 자태변환을 한 성격이 크다는 평가도 있지만 적어도 진보당과 정의당은 별도의 청년당을 두고 있다는 점은 높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에도 국내 청년 정치 제도는 부족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당의 청년 정치인 교육 및 충원 시스템 연구: -해외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 보고서를 통해 “해외에서는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활동을 통해 경력을 쌓고, 정당 내 청년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 준비된 인재가 정치 무대에 오른다”며 “단순 이벤트성 영입에 그치는 한국 정당의 청년 정치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독일·스웨덴·노르웨이·뉴질랜드 등은 청소년기부터 정치 교육을 제공하며 청년 정치인을 체계적으로 길러낸다. 이들 국가는 투표 연령을 모두 만 18세로 규정했고 정당 청년 조직 가입은 12~15세부터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만 16세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또한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정당 내 청년 조직의 지위와 위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당헌·당규에 청년 조직을 명문화하고 청년 대표가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당연직으로 참여하도록 해 공천 과정에서 실질적 대표성을 확보한다. 더불어 청년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해 자체 의사결정과 활동을 가능하게 하며 독일은 법적 지위를 부여해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미지 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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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정치교육’ 독일식 청년정당 해법 될까

특히 선진국 중에서 ‘독일식 청년정당’이 실효성과 제도화 측면에서 모범 사례로 꼽히며 국내에도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한국에서 독일식 청년정당은 불가능한가’에서도 독일 사례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발제에 나선 송지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모임 공동대표는 “독일 정당의 청년 조직은 독립 조합의 법적 지위를 가지며 당원이 아니더라도 가입할 수 있어 확장성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또 “독일의 선거권 연령은 18세이지만 당원 가입 연령은 14세부터 가능해 미래 정치지도자 양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며 “중요한 재정은 기부, 회비, 국가보조금을 통해 전달돼 재정적 자립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고 역사가 깊고 정당 내 위상이 높아 독일의 7, 8, 9대 총리를 모두 배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를 통해 발표된 설문조사(지난 7월 22~24일, 20~30대 청년 281명 대상으로 진행)에서도 청년 정치 소외 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식 청년조직과 유사한 한국형 청년정당의 설립 필요성에 대해 71.0%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매우 필요하다’ 37.8%, ‘어느 정도 필요하다’ 33.2%). 반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8.6%, ‘잘 모르겠다’는 20.4%였다. 

특히 청년들은 한국형 청년정당의 성공적 운영 조건으로는 비례대표 청년할당제(34.5%), 공천 과정 영향력 확대(19.6%), 청년정당 대표에게 당 핵심 보직 부여(13.9%), 당내 예산 일정 비율의 의무 배분(10.3%)이 꼽았다.

이러한 내용 바탕으로 송 공동대표는 ▲ 청년 정당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비례대표 공천 제도화 ▲ 정당 내 하위 조직이 아닌 독립된 구조와 국가보조금 지원 확보 ▲ 기존의 오프라인 중심을 벗어나 온라인·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시간·공간의 제약없이 참여 가능한 ‘하이브리드 정당’ 모델 구축 ▲청년이 공감하는 의제 중심의 정치 재구성 ▲ 청년 정치와 대중문화의 접목 등을 제안했다. 

송 공동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역사가 깊고 시스템이 잘 돼 있는 독일식 청년정당에 주목해 볼 만하다”며 “독일처럼 법·제도적인 보장이 이뤄진다면 우리도 청년 정치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수적으로나 영향력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기성 정치인의 공감과 동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과제를 남겼다.

이렇듯 한국형 청년정치 모델은 단순히 ‘청년을 영입하는 방식’을 넘어, 정당 내 실질적 권한 부여, 조기 정치교육 체계, 독립된 청년정당의 제도화라는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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