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 화려한 수사 뒤에 가려진 배제 구조
정당 안에선 동원과 줄 세우기, 권한은 사라졌다
젠더·연령 위계, 청년을 주변화하는 이중의 벽
세습되는 충성과 침묵의 문화, 바꿔야 할 악순환

‘청년 정치’라는 말은 특정 세대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1980~90년대부터 점차 자리 잡은 표현이다. 그런데 중년 정치, 노년 정치는 없는데 유독 청년 정치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회자되고 고유명사화된 이유가 있을까. 

사실 ‘청년 정치’라는 명칭은 청년들이 스스로 규정한 자기 호칭이 아니다. 이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그들의 시각과 잣대에 따라 청년이라는 세대를 갖다 붙여 기성 정치의 단점과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의미가 더 짙다. 

그래서 청년은 늘 변화와 미래의 상징으로 기성세대에 의해 필요에 따라 소비돼 왔다. 기성 정치권은 그들이 곤궁에 처했을 때 청년 정치를 내세워 돌파구를 마련하곤 한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청년을 버렸다.

이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청년 정치인을 만나볼 수 없었던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결국 청년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구호와 장식물로 소비돼 왔을 뿐이다. 투데이신문은 심층기획 ‘청년팔이 정치’를 통해 청년 정치가 처한 구조적 모순과 현장의 목소리에서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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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청년 정치는 흔히 ‘미래 세대의 주역’과 ‘세대교체’라는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다. 그러나 막상 정당 안으로 들어가면 그 수사는 곧장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다. 관련 연구와 인터뷰, 현장 취재를 종합해보면 청년 당원·활동가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새로운 기회가 아니라 동원, 침묵, 위계와 차별의 구조다. 

제도 밖에서는 기탁금과 선거비용 같은 돈의 장벽이, 제도 안에서는 정당의 관행과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청년을 옥죈다. 청년 정치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왜곡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정치와 민주주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김민재 연구자는 논문 <한국의 정당정치와 ‘배제된 청년’: 청년 정당 활동가들의 경험과 정치적 대안>에서 다양한 정당·지역 기반·연령·활동 기간을 지닌 청년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는 “청년 정당 활동가들은 기성세대 정치인에 의해 포섭·동원되며 동시에 젠더적·연령적 위계가 뿌리 깊은 정당 문화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은 청년 정치가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역량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제약 속에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보는 청년이 정당 문화 속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 해당 연구결과와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짚어봤다. 

 정치 무대의 조연, 침묵을 강요받다

# 네. 좀 이름 있는 정치인들이 자기 밑에 사람들을 만들고 줄 세우기를 한다고 하죠. 내 밑에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이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 국물 하나 떨어진다”, “나한테 잘 붙어서 내 말 잘 들으면 너한테 공천 줄게”, 아니면 “너한테 보좌관, 비서관 자리 줄게” 약간 이런 식으로 만들고 오히려 그런 것들을 이 앞에 사람들한테 계속 배워 왔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자기도 똑같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그걸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밑에서부터 뭔가를 요구하는 구조보다는 위에서 밑으로, 상명하복식의 문화가 더 심한 것 같아요. (청년 정치 활동가 - 여성, 20대 중반, 영남권, 약 5년간 민주당 계열 정당 활동)

청년 정치인은 흔히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로만 한정되곤 한다. 그러나 정당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 당원, 즉 청년 정당 활동가들 역시 청년 정치인이자 잠재적 후보, 정당 정치의 실질적 동력이다. 현실 정치에서 이들은 주변화되기 쉽지만 동시에 청년이 정치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김민재 연구자는 참여자들의 심층면접을 통해 청년 정당 활동가들이 기성세대들로부터 끊임없이 동원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은 평일 낮마다 이어지는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회의에 동원되지만 보상은 불투명하거나 아예 없었다. 학업이나 생업이 있는 청년에게는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한 구조다. “생업보다 정당을 우선하면 직업이 무너진다”는 활동가의 토로는 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청년이 놓인 현실은 정당 운영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에게 좀처럼 전달되지 않고 공감을 얻지 못한다. 수업과 아르바이트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한 청년은 “대학생이면서 하는 건 없고 회의만 빠진다”는 핀잔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청년이 처한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필요할 때만 불러내는 문화에 지쳐 간다고도 했다.

더욱이 정당 내 정치적 이해관계는 청년들을 직접·암묵적으로 동원하는 또 다른 굴레로 작동한다. 당내 경선에서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에게 줄을 서야 하는 구조 속에서 청년은 자율적 정치 행위자가 아니라 특정 세력의 ‘병력’으로 기능한다.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인사에서 배제되거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도 흔하다고 고백한다. 한 활동가는 “내 능력보다 어느 정파에 속해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순간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는 정당의 생태가 청년을 포섭과 배제의 대상, 즉 기성세대 정치인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당 내 기성세대 정치인들은 공천권과 인사권을 사실상 독점한 채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자리’를 당근 삼아 통제하기도 한다. 의회 보좌진이나 정당 당직자 같은 자리는 청년이 정치와 일상을 병행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지만 실제로는 ‘좋은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청년을 포섭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청년이 스스로 동원되면서도 동시에 다른 청년을 동원하도록 요구받는 구조다. 청년 활동가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또래를 강제로 끌어들이는 데 부담을 느끼면서도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었다. “내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청년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청년에게 정당은 단순한 출세의 통로만은 아니다. 스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권한을 직접 쥐고 있다는 만족감,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성취감, 공익적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의 장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 정치인의 ‘당근’은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정당을 버텨내려는 청년들의 현실적 필요가 곧 침묵의 굴레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청년이 오히려 정치적 냉담자로 변해가는 역설적 장면도 드러난다. 한 청년은 “위원장이나 대변인 같은 직책을 달아줘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결국 청년을 더 잘 부려먹기 위한 창구일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좋은 직책’은 청년 정치의 문을 열어주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한 없는 허울뿐인 자리였던 셈이다.

다만 청년 정당 활동가들은 정당 자체의 필요성과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갈등을 조직하고 정책을 생산하며 제도를 설계하는 핵심 주체로서 정당의 민주적 가치는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당 활동의 현실이었다. 청년들에게 그곳은 사회를 바꾸는 통로라기보다는 동원과 침묵을 강요받는 자리,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거의 없는 ‘투자 대비 효율이 낮은 활동’으로 다가왔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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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연령의 벽에 갇히다

# 저는 (예전부터) 사실 OO위원장에 출마하고 싶었어요. 근데 한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OO이 말도 잘 통하고 술도 남자 못지 않게 잘 마시고 강단도 어느 남자보다 강한데 우리가 같이 사우나는 갈 수 없잖아.’ 제가 그때 당시에 느꼈을 때는 성희롱인가? 아니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 막 이러면서 넘겼는데 몇 년이 지나면서 생각해본 게 제가 가질 수 없는 어떤 장벽이었던 거죠. 결국에는 성별 문제였던 거죠. (청년 정치 활동가 - 여성, 30대 중반, 호남권/수도권, 약 12년간 민주당 계열 정당 활동)

청년 정치 활동가들이 정당 안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동원의 굴레’에만 그치지 않는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청년 활동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젠더와 연령을 축으로 한 뿌리 깊은 위계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구조적 차별과 주변화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정당은 갈등을 조직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구이자 가장 평등해야 할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 내부에서는 여성 청년과 젊은 활동가들이 동등한 정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여성 청년 정치 활동가는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기성 정치인들은 악수를 건네지 않았다. 먼저 손을 내밀면 ‘아가씨 손을 잡아도 되겠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며 모멸감을 털어놨다. 그는 또 “위원장 직책을 맡아도 동등한 정치인으로 보지 않고 외모에 대한 평가나 농담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성 청년들이 정치적 능력보다 외모나 성별로 평가받는 현실은 정당 내부 위계가 여전히 성차별적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여성 청년 정치 활동가는 “같이 사우나를 갈 수 없으니 위원장으로 세우기 어렵다”는 선배 활동가의 말을 전하며 그것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성별이 정치적 기회에서 배제되는 장벽으로 작용했음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한국 정치권의 이른바 ‘형님문화’는 젠더와 세대의 위계로 얽히며 청년 여성들을 더욱 주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대식 위계와 가족주의적 코드가 결합된 구조인 형님문화는 충성과 줄서기가 관계의 기준이 되고 공천·인사·보좌진 채용 같은 자리가 보상의 수단으로 쓰인다. 이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배제와 위계가 고착화되면서 청년은 주체가 아니라 동원 자원으로 소비되고 침묵을 강요받는 현실에 내몰린다.

연령의 벽 역시 청년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한 활동가는 “중장년층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은 청년에게 떠넘겼다. 사실상 하청받는 느낌이었다”며 “뉴미디어 전략처럼 청년이 잘할 수 있는 분야만 맡으라 했지만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청년다움을 명분으로 ‘기술적 노동’만 요구하면서 권한과 책임은 분리해버리는 전형적인 연령 위계 구조를 드러내는 예시다.

전문직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또 다른 청년은 “정치권은 모든 게 나이순으로 돌아간다. 발언권이나 영향력이 나이에 따라 줄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제도를 만들려는 초당적 시도가 나이주의 앞에서 무력화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악순환 구조 바꿔야

이렇듯 정당이 청년을 전면에 내세워 ‘세대교체’를 홍보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적 자율성과 권한을 보장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년은 선거 때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정당 운영 과정에서는 여전히 권력에서 소외된 채 ‘하청’과 ‘동원’의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

결국 젠더와 연령을 둘러싼 차별 구조는 청년 정치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가 특정 계층과 세대의 전유물로 고착화되는 한 청년이 주체적 정치 주역으로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민재 연구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선거 때마다 ‘우린 가족이다’라는 명분으로 동원이 반복되고 충성 여부가 공천·인사와 직결되는 구조 속에서 청년은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자원으로 소비된다”며 “이 문화가 학습되고 대물림되면서 문제 제기가 봉쇄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당 내부의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가족주의적 줄세우기 대신 공개적 토론과 이견 존중, 동원 실적이 아닌 정책성과 중심의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이 목소리를 내도 배신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제도 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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